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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검진

2021년 06월 16일

by 천우주


연 1회 회사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는데 마지막 건강상담에서 뱃살을 좀 빼야 하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받았다.


'헐...배라니? 내가? 언제부터?'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곧이어 강한 현실 부정이 일어났지만 실은 언젠가부터 수줍듯 볼록하니 배가 나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른채 했을 뿐.

고등학교 이후 체중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3~4년 전부터 조금씩 체중이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10kg 가까이 몸무게가 더 불어났다. 그렇다고 움직임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예전만큼 몸이 가볍지는 않다.

거기다 운동을 한답시고 하는것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간단한 맨몸운동이라 사실상 체중이나 건강 관리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운동 시간을 늘리고 싶진 않다. 달리기가 좋다는 얘기도 많이들어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사실 그냥 생각뿐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달리기니 말이다. 핑계는 있다. 교대 근무가 기본인 지금의 직장 여건이나 아직까지 뚱뚱(?)하진 않다는 위로가 핑곗거리다.


없던 배도 생겨나고 몸무게도 조금씩 불어가는걸 보니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간다는게 느껴진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 예전에 비해 신진 대사도 많이 떨어졌다. 아무리 야식을 먹어도 아침에 속이 부대끼는 일도 없었고 그저 숨만 쉬며 살아도 체중이 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야식을 먹기 전 다음날 속이 부대끼는 걸 걱정해야하고 늘어나는 체중도 숨 쉬기 만으론 커버가 되지 않는다.

체력도 달라졌다. 고작 하루 밤샘으로도 전신이 노골거리고 눈알이 따끔거린다. 밤 한 번 새고나면 며칠씩 후유증이 가기도 한다. 피부의 탄력도 예전과는 다르다. 드러난 손이나 팔을 보면 어떨땐 내 몸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탄력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늙어간다는 건 1년에 한 살씩 올라가는 나이와는 또 다른 것 같다. 나이는 이렇든 저렇든 일 년에 한 살씩 꾸준히 먹어가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계기가 되면 한 번에 훅하고 늙어지는 것 같다. 노화라는 게 살아가는 이상 어떻게든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젊은 날을 기억하는 입장으로선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이럴진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 연세가 더 많으신 분들은 또 어떨까 싶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건 현실에 대한 받아들임이니 나는 또 그렇게 그렇게 내 몸과 나이와 현실과 주위를 받아들이며 나이를 먹어가야 할 것이다. 예전 어떤 노인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씀이셨다. 아직까진 그 말이 그렇게 와닿지도 않고 또, 사람이 쓸모가 없어진다는데 대한 이유모를 반발감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보다 십 년 혹은 이십 년이 흐른 후에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나 늙어가는 인생이니 노인이 된다는 것도 삶의 궤적에 어떤 의미와 쓸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쓸모'란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란 생각도 든다.


얼마 전 보았던 '찬실이는 복도 많지'란 영화에서의 윤여정의 대사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늙으니깐 그거 하나는 좋아
나는 오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그날 윤여정이 하고 싶은 일은 콩나물 다듬기였다.

쓸모.

무엇이 되었든 하루를, 지금을 잘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쓸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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