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21일
오늘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하지이다.
보통은 저녁을 먹고 바깥을 슬쩍 쳐다보면 어스름 하늘을 감상할 수 있지만 이맘때엔 먹은 저녁이 소화가 다 되어갈 무렵에나 그 광경을 볼 수 있다.
내가 지내는 숙소는 서쪽에 가까운 북서 방향에 있어 편안히 방에 앉아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가 길고 기온이 올라가는 요즘 계절엔 그 어느 때보다 일몰이 가까워질수록 뜨겁고 밝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여름은 유독 길게 느껴진다.
다행인 건 이때만 지나면 선선하다는 거다. 덕분에 올여름은 에어컨을 별로 틀지 않고도 그리 덥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덥다고 에어컨을 켜는 집도 있지만 여기는 선풍기 한 대면 한 여름도 웃으며 날 수 있을 것이다.
길었던 낮의 시간이 지나고 서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열어놓은 창 밖으로 어스름지는 하늘을 보며 차가운 바닥에 팔을 괸 채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지와 더위와 추위를 두서없이 떠올린다. 그러다 차가운 겨울의 생각이 지나갈 때쯤 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중학생 무렵이었을 거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에 엄머가 시장에서 옷을 한 벌 사 오셨다.
솜으로 꽉꽉 채운, 그러나 별로 두껍지 않은 진한 주황색 츄리닝 한 벌. 그래 츄리닝이다. 트레이닝복이란 멋드러진 이름이 있지만 나는 왠지 츄리닝이란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말을 쓰던 습관 때문이리라.
그렇게 사 온 츄리닝은 아빠의 옷이었다. 갈색에 가까운 독특한 주황색에 검은 선으로 마구잡이 패턴을 집어넣었던 그 옷은 흡사 파리의 이름 모를 패션 디자이너가 초현실적 문양을 넣어 만든, 지금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의 옷이었다. 그럼에 나는 분명 아빠가 그 옷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빠는 그 옷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얇고 가볍고 따뜻하고 멋지다 생각해서다.
솜을 꽉꽉 채워넣었음에도 얇았고 거기다 가볍기까지 한 그 옷은 굉장히 따뜻했고 나일론 겉감엔 코팅까지 되어있어 옷 스스로 자신을 새것이라고 뽐내었다.
아빠는 아래위로 그 옷을 한 번 입어보더니 벗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추운 한 겨울에도 런닝과 팬티 위에 달랑 그 옷 하나만 걸친 뒤 자랑스레 동네를 돌아다녔다. 춥지 않냐고 걱정스레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빠는 자신에 찬 얼굴로 하~~~~ 나도 안 춥다고 얘기했다. 독특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 했다. 평소엔 조용조용하던 분이 어찌 그리 튀는 디자인은 좋아하셨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대개의 남자가 그러듯 자신의 신체에 관한 조금은 유치한 자기 자랑을 하곤 했다. 힘이 세다, 아프지 않다, 빠르다, 강하다, 나는 밥만 먹어도 건강하다, 주먹이 강하다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체격과 골격이 남달랐던 분이라 나름의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셨을 것이다. 아빠가 그런 자랑을 할 때 으레 짓는 표정이 있다. 온몸에서 올라온 자부심이 얼굴에 번져 자신만만한 미소로 마무리되는 그 표정. 그때, 유난히 추웠던 한 겨울,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새 츄리닝 세트 하나만 걸치고 찬바람을 맞으며 '나는 이거 하나만 입으면 하나도 안 춥다' 하실 때도 바로 그 표정이었다.
아빠가 그 옷을 왜 그리 좋아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새 옷을 입은 게 그렇게 기분이 좋으셨었던 것 같다. 아이처럼 말이다. 그 옷 하나만 입고 추운 바깥을 용감히 나선 것도 자랑을 하고 싶으셔서였을 것이다. 추위 따윈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본인의 강함도 좀 어필하면서 말이다.
창문 앞에 팔을 괴고 모로 누워 흥얼거리다 겨울과 함께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내 나이가 그때의 아빠 나이랑 비슷해져서이리라, 당시의 나는 아빠가 왜 그런 자랑을 할까 하고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새 옷이 그렇게 좋으셨을까?
그렇게 좋으셨나 보다. 아이처럼 좋으셨나 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아빠는 엄청난 비밀과 지식들을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어른이었지만 지금에 생각하면 아빠도 그저 평범하고 아이 같은 어른이었다. 어른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강하고 싶고 가족들을 지켜주고 싶고 잘살고 싶은, 그러나 살아보지 않았기에 어찌할 바 몰랐던 사람이었다. 아이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때때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것은 오래된 슬픔이다.
오래된 슬픔이란 그런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덤덤하다가도 어떤 순간 어떤 계기로 어떤 일들이 문득 떠오르면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과 함께 훅하고 떠오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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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은 잠든 자신의 아들을 보며 이렇게 얘기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되고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 서로의 눈으로 바라본다'
(You will see my life through your eyes, as your lkife will be seen through mime. The son becomes the father, and the father becomes the son.)
나는 이제 아빠의 눈이 무엇을 보았는지 짐작하지만 아빠는 내 눈이 무엇을 보았는지 아셨을까?
아니면 모르셨을까?
문득 의문이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