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 자학의 코미디
감독: 주성치
출연: 주성치, 오맹달, 막미림, 전계문, 진국곤, 임자총 등
러닝타임: 87분
주성치 영화는 재밌다.
말도 안 되고 장난스러우며 온갖 장르를 뻔뻔하게 섞어놓았지만 재밌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하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어딘지 모르게 울분스럽다.
그 어딘지 모르는 것들을 되는대로 한데 모아 '헤헤헤'하는 웃음으로 퉁쳐버린다.
그의 영화는 대개 이런 흐름으로 흘러간다.
능력은 있지만 불운한, 혹은 가난한 주인공이 과거의 영광을 숨긴 재야의 고수를 만나고 그러던 중 왜인진 모르지만 어쨌든 비밀과 비련이 많은(것) 같은 초라하지만 아름다운 미녀도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승승장구를 하고 그러다 욕심이 지나쳐 큰 실패를 겪는다. 그러다 각성하여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 그 가운데 신파가 들어간 씬이 등장한다. 그리고 권선징악.
주성치 영화는 플롯도 특징적이지만 등장인물 또한 특징적이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주인공인 주성치뿐만 아니라 주조연급은 물론 악당들마저도 그렇다. 도대체가 평범한 인간 하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 부적응 캐릭터 중 단연 최고는 바로 주성치 본인, 즉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누구보다 가진 것 없고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성공을 굳게 확신한다. 그 확신은 자신이 가진 비범한 재능에서 기인한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능을 가졌기에 그는 절대지존이며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기적이다. 때문에 극 중 그를 도와준 어느 누구에게도 그는 감사하지 않는다. 어떤 훌륭한 인물에게도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눈곱만큼도 가지지 않는다. 모든 건 자신의 재능 때문이지 타인의 도움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처럼 이기적이라고 걱정하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주조연 및 악당들이 이기적이니 말이다. 그의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기적이지 않은 배우는 그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미모의 배우뿐이다.
앞서 말했듯 그가 결국 성공하게 되는 건 다른 이의 도움이 아닌 오직 자신의 능력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영화의 초중반에 현실의 '루저'로 살아가는 건 일종의 부당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 부당함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멍청해서이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그는 시궁창 속 현실에서 어떤 짓을 저질러도 당당할 수 있다.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하고 남의 뒤통수를 때려도 당당하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하게 굴어도 당당하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은 그가 진정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언제나 하나, 바로 "절대강자"이다. 모두가 자신을 우러르고 모두가 자신 앞에 무릎 꿇는 절대강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것이 주성치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궁창의 현실은 그런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무시하고 조롱하기만 한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 마치 세상이 온통 미쳐버린 것 같다. 세상에 분노하고 자신에게 분노하고야 만다. 이 미친 세상, 그리고 엄청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여기서 자학이 생겨난다. 미친 사람들과 미친 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미친 자가 되려고 한다. 그 분노와 자학의 에너지가 코미디로 바뀌는 것이다. 그의 코미디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학이 기반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들을 좋아하고 재밌어하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영화 속 그가 완전히 이기적인 건 아니다. 그는 일견 선함도 가지고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들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권선징악이다. 물론 선은 주인공 본인이다. 그의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코미디와 개그가 난무하지만 유독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과 선한 사람들이 핍박을 받을 때이다. 이때만큼은 코미디의 얼굴을 싹 바꿔버리고 다큐멘터리급의 진지한 신파가 연출된다. 그런 진지한 연출로 인해 영화의 인물들, 아니 사회 전반이 주인공에게 행하는 온갖 부조리에 대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주인공의 투정에 정담함을 부여한다. 즉 그가 행하는 모든 자학과 이기적 행동에 대한 정당성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주성치의 영화들을 보면 모든 이야기가 사실 '주성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가 세상에 대고 외치는 외침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이 교훈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웃기기만을 위해 만든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코미디를 주요소로 한 코미디 영화이고 그 방면에서 그의 재능이 탁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코미디의 목적은 사람을 웃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겪는 부조리와 부당함을 알리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사람이 사회에 의해 겪게 되는 부조리와 부당함을 관객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쓰고 보니 왠지 주성치에 대해 어두운 면만을 쓴 것 같은데 어쩌면 이런 어두운 면으로 인해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만족하는지는 다른 문제인지만.
소림축구 리뷰를 한다고 제목에 적어놓고 딴 얘기만 했다.
소림축구도 주성치의 다른 영화와 별반 다르진 않다. 그렇다고 보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영화는 어느 것이나 재미있고 소림축구 역시 재미있는 영화다. 그리고 관람을 추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영화 말미에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반가운 인물이 특별출연으로 나온다.
바로 장백지와 막문위.
홍콩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이 두 배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저렇게 멋지고 기발한 남장으로 나오다니!!!
역시 주성치의 감각은 정말 탁월하다.
(이러니 그를 미워할 수가... 재능은 정말 있는 사람이다.)
주성치는 국내에서와는 다르게 홍콩 내에서는 1급의 감독이자 배우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다소 매니악한 영화의 제작자 정도의 인식이지만 그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중국 내에서는 상당한 흥행을 했다고 한다.
다소 횡설수설 이야기를 썼지만 소림축구는 재밌는 영화다,
주성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더라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괴작이 다 있나 싶을 정도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내가 주성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건 '서유기 월광보합'이라는 영화다.
혹시 주성치 영화를 재밌게 보았던 분들 중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분이 있으면 꼭 한 번 시청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안 봤던 사람도 꼭 보시라)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비디오테이프로였는데 너무 웃겨 중간중간 끊으면서 봤던 영화는 이게 최초다.
정말 미치게 웃게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그의 재능이 진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참고로 주성치의 서유기는 시리즈물이다.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
그리고 그것과 다른 스토리인 서유기 모험의 시작과 서유기 요마복요편.
이 두 가지 시리즈물을 합쳐 서유쌍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 시리즈 다 재밌지만 월광보합이 그중 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