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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22일

by 천우주

무더위가 푹푹 찐다.

냉수로 끝까지 돌린 샤워기에서 뜻뜨미지근한 물이 쏟아진다.

순간 레버가 온수 쪽에 가있나 싶었는데 아니다. 물탱크가 달아올랐다.

그래도 미지근한 물이라도 뒤집어쓰면 좀 낫다.


에어컨은 틀지 않고 있다.

회사 근처 숙소인 이곳은 건물 방향이 서쪽이라 다행히 아주 더운 건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여름에 덥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집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 여기도 덥긴 덥다. 지금은 온도가 27도 정도지만 곧 장마가 끝나면 기온이 더 오를 테니 그때쯤엔 에어컨을 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어컨을 틀지 않는 건 에어컨이 더러워서다.

작년 이곳 숙소에 처음 왔을 때 시험 삼아 에어컨을 틀어봤는데 곰팡이 냄새가 너무 많이나 바로 꺼버렸다.

덮개를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게 에어컨인지 곰팡이 집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청소를 해볼까 했지만 그때는 9월 중순이라 에어컨을 안 틀어도 그럭저럭 지낼만했기에 그냥 놔두었었다.

사실 곰팡이와 씨름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날이 더 더우면 아마도 용기를 내 청소를 해야 하지 싶다.


저번 주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들이 차올라 며칠을 좀 우울하게 보냈다. 그렇게 우울하고 신경질적으로 며칠을 보내다 문득 언젠가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내가 보증할게. 그러니 기죽지 마"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간혹 내게 그런 말들을 했었고 나는 그때마다 '너도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주곤 했다.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나는 나를 비련의 주인공쯤으로 놓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자괴감으로 우울한 요즘, 푹푹 찌는 무더운 방에 앉아 문득 그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구나'


힘이 나고 기분이 밝아졌다. 신기했다.

실수투성이에 후회하는 일을 밥 먹듯 하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감사했으며 힘이 났다. 그 말을 해 준 친구가 새삼 참 고마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 떠올린 그 말이 힘이 되었던 건 아마도 그 친구가 진심으로 해 준 말이라서 그럴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말은 내 기억 속 어딘가 숨어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생명을 얻은 듯 마음에서 살아났다. '위로'란게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들었던 어떤 말들은 때가 되면 생명을 가지게 되는가 보다. 예전만큼 그 친구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그 친구를 보거나 연락하게 되면 꼭 말해줘야겠다.


고맙다고.

너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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