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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어느 날

일상의 삐끗거림

by 천우주

혼자 거실에 나와 멍하니 앉아 있으니 문득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 하나가 생각이 난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그렇다.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설고 낯선 곳에 오직 나만을 벗 삼아 훌쩍 떠나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에 매료되고 고독 속에 새로운 나를 찾아 달라진 나, 나아진 '나'가 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아직 그 소망을 이루진 못했다.

모든 걸 뒤로한 채 낯설고 낯선 곳으로 한 번도 홀로 떠나본 적 없다.


요 근래 혼자 있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늘 바라왔고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지만 막상 이런 시간이 오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내 곁엔 늘 아내가 있었다.

때때로 서로의 날 섬을 견뎌내고 두 존재의 삐걱대는 부자유를 맞춰가며 그렇게 오래 지내왔다.

세월은 각각이 자라난 두 나무의 줄기를 엉키며 자라게 해 어느새 아내의 부재가 나의 '부재'가 되어버리게 했다.

엉킴은 자유였고 평범이었고 일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상이 삐끗거리고 있다.

공허란 이런 것인가.


하지만 어쩌랴.

나는 지금 혼자고 그렇게 지내야 한다.

오래전 잊었던 감각을 다시 되살리고 새로운 감각들을 다시 익혀야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조금씩 해보고 있다.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보지 못한 영화와 시리즈도 보고 있다.

우선은 그렇게 하고 있다. 뭐라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간이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새롭게 갖춰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에도 혼자서도 잘 헤쳐보라는, 혼자서도 잘 지내보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지낸다고 믿는다. 더 많은 사람과 건강한 관계로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한다.

사라진 공간을 채우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몸을 움직여 내 일상을 다시 새롭게 천천히 채워갈 것이다.

그래서 좀 더 흔들리지 않는, 좀 더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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