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으로

2022년 06월 17일

by 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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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을 내어 잠깐 여행을 다녀왔다.

흐린 날씨였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바다와 접한 하늘에 깔린 그 다채로운 무채색의 구름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무지개도 태양도 가리웠지만 그 수천 가지 무채색의 잿빛들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이란.

바람이 넘실거리는 바다는 또 어땠는가.

흰 거품과 짙은 푸른색이 어우러져 잠시도 쉬지 않고 파도를 만들고 너울을 만들어내던 그 바다는 내가 가진 우울함과 걱정 따위는 한낱 먼지보다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로지 구름과 바다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픈 그런 풍경들이 이번 짧은 여행 내내 나와 함께 했었다.


나는 어쩌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직 살아갈 날이 더 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성공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실패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의식 속에 또는 무의식 속에서 때로는 크게 때로는 눈치재치 못할 정도로 작게 내 마음속과 머릿속에 울리던 이런 종류의 갖가지 의문과 질문들은 하늘과 바다 앞에선 무의미했다.

바람이 불 때가 되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가 되면 파도가 칠 것이다.

밀물이 오면 물이 차고 썰물이 되면 물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 언젠가 인력의 법칙이 무너져 밀물과 썰물이 모두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때엔 또 그때의 법칙대로 우주는 존재할 것이다.

존재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행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뿐.


나는 돈이 많은 사람도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다.

학벌이 뛰어나거나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아니다.

성격이 좋은 사람도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사람도 아니다.


성공과 실패,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행위의 결과를 가르고 열정과 좌절을 선사하는 그 많은 것들에 대해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하나였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10을 가졌다면 10으로 하는 것이고 20을 가졌다면 20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면 인내와 성실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90과 80과 100에 대해선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나는 10을 가진 사람이지 90을 가진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을 쏟느라 내가 가진 10을 5로 만들고 1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우주의 하나의 자연인이고 자유인이다.

그리고 당신들, 그리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잘하는 것은 내가 나로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여행 중 있던 절에 들러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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