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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1. 2018

정글 속에서 집 짓기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회사 설립의 과정


익숙한 곳과 어느 정도 결별을 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부터는 정글로 들어가 정말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정글 속에서 스스로 먹고사는 삶을 살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의 실무 가운데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우리가 비비고 살 곳인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이다. 회사 간판을 만들고 신장개업 이란 문구를 문 앞에 큼지막하게 붙이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 법적인 절차를 밟아 회사 설립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회사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나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파란오이를 창업했다. 구체적인 과정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소개해보겠다.

파란오이는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사실 절차와 순서는 회사 성격과 본인의 창업준비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개인사업자와 법인의 차이


일단 회사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다. 크게 보자면 개인사업자와 법인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개인사업자를 살펴보자. 개인사업자는 말 그대로 개인이 스스로 소규모의 회사나 사업장을 만들어 이윤을 창출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사업자는 법인과 비교해 법적 구속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다. 법인보다 각종 상법이나 세법 상의 규제를 덜 받는다. 해마다 재무제표를 만들 의무도 없다. 불법적인 상황에 연루되어 국세청이나 검찰 같은 사정기관이 회사 계좌를 털지 않는 이상 외부감사를 받지도 않는다. 구조상 외부에서 회사를 들여다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내부정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법인은 반대다. 법인의 모든 경영행위들은 외부에 드러나기 쉬우며 회사의 주주들이나 이사들에 의해 견제를 받기도 한다. 창업자이자 대표였던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것도 당시의 그가 회사 운영을 그르쳤다고 판단한 주주들이 결정한 것이다. 이런 법인의 속성 때문에 대표가 독단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개인사업자의 대표는 주주나 이사 체제가 없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회사를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회사의 행위를 통해 발생한 이윤을 대표가 쉽게 독점할 수도 있다. 세법상 매출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지 않으면 세금처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뜨악할 노릇이긴 하지만 매출이 수십억이 되는 회사가 비밀유지와 경영상의 이점들을 이유로 법인 전환을 하지 않고 개인사업자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본 적도 있다. 회사의 상호와 사업장 주소지를 세무서에 방문하여 신고만 하면 되기에 법인보다 회사의 설립이 매우 간편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식당이나 카페 같은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개인사업자 형태의 창업을 선호하고 스타트업의 상당수도 개인사업자로 시작한다.     


법인은 특성상 다시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된다. 대부분 창업의 주된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를 띤 영리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리법인에는 주식회사, 유한회사, 합자회사 같은 것들이 있다. 특수한 목적이 아니라면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사 상호의 앞뒤에 ㈜OO전자, OO식품㈜라고 붙은 것을 본 적이 있을 텐데 바로 괄호 안의 ‘주’ 자가 주식회사를 의미한다. 유한회사의 경우 (유)OO무역 이런 식으로 표기된다. 회사의 대표를 사장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사장의 정확한 의미는 주식회사의 대표 혹은 회사의 경영진인 여러 이사들 중 대표 즉 '장'을 지칭하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대기업 재벌 총수의 회장은 주주와 경영진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수장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내 회사인 파란오이는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 설립 경험을 기준으로 이야기해보겠다.     


법인은 사람과 유사한 권리를 인정받는 법적 인격체

법인은 말 그대로 사람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사람과 유사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받는 단체를 의미한다. 이 경우 법인의 대표는 마치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반려동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긴 하지만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대신 반려동물의 주인이 반려동물과 관련된 주변 일들을 처리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을 진다. 마찬가지로 법인 자체가 스스로 사고해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대표는 법인의 일들을 처리해주고 대신에 법인에 대한 무한책임과 연대보증을 지게 된다. 법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대표가 마음대로 법인을 좌지우지해서 해를 끼친 것을 배임죄라 한다. 배임죄는 대기업 재벌 총수의 단골 범죄이기도 하다. 법인 통장의 돈은 법인의 것이기에 대표가 내 호주머니 마냥 자유롭게 꺼내 쓰면 그것은 배임죄라는 범법의 영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회사 계좌는 늘 바닥이기 때문에 수시로 대표가 개인 돈을 집어넣다 뺐다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하고 통장은 너덜너덜해진다.      


회사가 대표에게 특정한 목적 없이 집행하는 돈을 '가지급금'이라고 한다. 반대로 회사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대표가 임의로 회사에 집어넣는 돈을 '가수금'이라고 부른다. 창업 초기에는 가지급금과 가수금이 서로 널뛰기를 하며 회사와 대표통장 사이를 오가는데 회사의 경영과 자금사정이 안정되면 반드시 이 짓을 멈추어야 한다. 가지급금과 가수금이 해마다 차곡차곡 쌓이면 부채 형태로 노출되어 재무제표도 지저분해지고 국세청의 표적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세청이 보기에 정당하지 않은 자금흐름이라고 판단되면 회사나 대표 모두 막대한 세금을 물을 수 있다.     


회사의 경영은 준법과 범법 경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행위다.

고백하건대 회사의 경영은, 준법과 범법 경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행위라는 것을 창업하면서 깨달았다. 다양한 경영행위를 총괄하는 대표가 긴장하고 각성하지 않으면 범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인 형태로 회사를 설립할 목적이라면 회사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아들, 딸을 낳아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운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편하다. 물론 창업자 대다수는 법인과 본인을 일심동체 동일시 여기겠지만 말이다.     


내가 회사의 형태를 법인으로 원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고등사고행위가 경영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순히 주먹구구 식의 구멍가게 운영이 아닌 정식으로 회사라는 틀을 만들어 경영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한 해 동안의 입출금 자금흐름이 회계와 재무제표를 통해 정리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주식을 가진 주주와 이사라는 경영진 신분으로 회사의 다양한 경영행위를 진행한다는 것도 재미있어 보였다. 또 추구하는 사업이 일반인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기업이나 공기관 등을 상대하는 B2B, B2G 형태가 주가 될 거라고 판단했기에 불투명한 구조의 개인사업자보다는 외부에서 회사를 신뢰할 수 있도록 회사의 정체성을 갖추는 것도 필요했다.    

 

대표이사, 감사, 주주 등으로 구성되는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은 회사 설립의 절차와 회사 핵심구조가 한국 최고의 회사 삼성전자와 차이가 없다. 삼성전자와 파란오이는 상법상 똑같은 구조의 회사고 그렇기에 나는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와 파란오이의 대표이사는 직급 상 하등의 차이가 없고 다이다이로 맞먹을 수 있는 레벨이라고 감히 주장해보겠다. 2011년 9월 회사 설립 후 삼성과 주식회사 대 주식회사로 서로 견줄 수 있다며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만족감에 혼자 실쭉 웃었다.     



회사 이름을 파란오이로 짓게 된 사연


회사를 만든다고 하면 당연히 상호 즉 회사 이름을 정하는 게 먼저다. 내 회사의 첫 이름은 파란오이필름이었다. 회사 이름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이름이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 왜 이름이 파란오이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다. 파란오이는 사실 20년도 더 된 역사를 가진 나의 PC통신 아이디다. 지금은 아이디를 접속하는 사이트마다 지긋지긋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로 통하던 PC통신 시절에는 하나의 아이디만 만들면 어디든 접속이 가능했다.


그런데 왜 그런 괴상한 이름을 짓게 되었냐고? 음... 사실 별 의미는 없다. 아이디를 지을 당시 오이를 먹고 있어서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편집증 환자라는 의미를 가진 ‘paranoid’라는 단어도 있고 직접 '破亂吾利'라는 한자들을 조합해 ‘어지러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이로움을 취하는 곳이다’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회사 이름을 만들었다고 포장을 한 적도 있었다. 현재는 파란오이필름에서 파란오이로 회사의 이름이 바뀌었다. 필름이라 하면 영화를 만드는 곳으로 정체성이 한정되는 느낌이고 회사의 영상 제작 주재료는 디지털인데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산물인 필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도 생각했다. 또 말 그대로 화학필름을 만드는 회사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해 작년에 상호변경을 신청해 지금의 회사로 바꾸었다.     



주력사업, 목적 구체화하기


회사의 성격과 형태, 그리고 사업의 목적 같은 것도 꼼꼼히 정리해야 한다. 회사를 설립하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작업에서 결정된 회사의 형태는 사업자등록증과 보통 법인등기부등본이라고 부르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에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일단 회사의 형태는 광범위하게 두루 포괄해서 정리하는 게 좋다. 회사라는 것은 상황과 시류에 따라 핵심사업이나 BM을 얼마든지 바꾸고 턴오버, 피벗팅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언제 간판 내리고 다른 간판으로 바꿀지 모르는 일이 회사란 것이다. 너무 좁고 자세하게 회사의 성격과 목적을 규정해버리면 나중에 회사의 핵심 영역이 바뀌는 경우 번거롭게 등기소나 세무서를 들락거릴 일이 많게 된다.     


사업자등록증에 기입되는 사업의 종류 항목에 들어가야 하는 이른바 ‘업태’와 ‘종목’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 업태는 사업의 형태를 말한다. 보통 제조업, 서비스업, 건설업, 금융업, 임대업 등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바로 업태다. 종목은 사업의 종목 즉 업태 안에서 다시 구별되는 세부적인 사업의 카테고리를 칭한다. 서비스업이라면 디지털 콘텐츠, 소프트웨어 개발 등이 종목에 해당될 것이다. 내 경우 업태는 정보서비스업 종목은 영화 관련 기타 제작으로 설정했다.  업태의 종목의 설정은 통계청의 통계분류 포털의 한국표준산업분류 검색 코너에 들어가 진행하면 쉽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키워드를 검색어란에 넣고 검색하면 색인어들의 나오는 데 그중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을 고르면 된다. 포털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kssc.kostat.go.kr:8443/ksscNew_web/index.jsp#


법인등기부등본 안에는 '사업의 목적'이라는 정보공시란에 있고 이 안에 회사가 하고자 하는 것을 기입하게 된다. 나는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영상, 오디오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

2.영화제작 및 공급업

3.홍보, 광고영화 제작 및 공급업

4.3D 입체영상 콘텐츠 연구 및 제작기술개발업

5.융복합콘텐츠 연구 및 제작기술개발업

6.융복합콘텐츠 연구 컨설팅업

7.디지털 스토리텔링 및 스토리마이닝 연구 컨설팅업

8.스토리 창작 개발업

9.스토리 개발대행 및 컨설팅업

10.뉴미디어 영상기획 및 개발업     


스스로 깔때기를 한번 꼽자면 7년 차인 지금도 파란오이는 위에서 언급한 목적과 동일한 일을 구사하고 있다. 내 혜안에 스스로 무서울 따름이다.      



발기인 모으기


회사의 형태를 규정하는 일이 끝났으면 더 중요한 게 남았다. 회사의 경영자인 대표이사, 임원에 해당하는 사내이사, 감사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이들을 발기인이라고 부른다. 보통 스타트업은 당연히 창업자가 대표이사를 맡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혹은 지분이나 역할 등을 고려해 창업자는 대주주나 이사로 남고 경영에 능력이 있는 동업자가 대표이사를 맡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식회사는 감사라고 해서 경영자가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감사라는 직책을 두어야 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보통 엄마나 동생 같은 가족, 친한 지인을 감사로 두는 경우가 많다. 벤처캐피털 즉 VC의 투자를 받은 경우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이유로 창업자가 알지 못하는 외부인의 선임을 요구받기도 한다.


참고로 회사를 많이 많이 만들고 많은 이들이 창업해 나라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뜻에서 현재 상법상의 회사 설립 요구조건이 과거에 비해 매우 완화되었다. 예전에는 자본금이 일정 금액이 되어야만 법인 설립이 가능하기도 했다. 지금은 자본금 제한이 완전히 풀렸고 회사 설립 후에는 대표를 1인 이사로 두고 나머지 이사나 감사를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자본금 총액이 10억 원이 넘거나 회사 규모가 일정 규모로 커지면 다시 이사와 감사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도의 규모가 되어서 이사나 감사를 선임해야 하는 정도라면 외부에서 대규모 자본금 투자가 들어왔거나 회사의 매출이 커져서 사실 해피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자 이제 회사 이름도 짓고 회사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장밋빛 그림도 그려보았다. 그렇다면 어서 도장집에서 가서 법인인감도장을 파자. 인감도장은 계약서나 인감증명서 같은 회사와 관계된 공식문서에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 회사를 하게 되면 정말 엄청나게 많이 도장을 찍게 된다. 너무나 도장을 많이 찍어서 내용도 안 보고 대충 도장을 찍는 직인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연히 내용도 잘 살펴보지 않고 도장을 찍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직인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인감을 몰래 훔쳐가서 가짜계약을 맺은 사기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이따금 들리기도 한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회사는 인감의 외부 반출을 엄격히 다루며 전용 금고에 별도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회사의 도장은, 직원이 지방에 출장 가서 계약을 진행할 때, 혹은 세무사가 재무제표를 위한 연간 결산원장을 작성할 때, 퇴사한 직원의 경력증명서를 떼줄 때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수시로 이용된다. 그래서 인감도장 원본 이외에 별개의 도장을 여러 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도장을 사용인감이라고 한다. 오리지널 법인인감의 복제 클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시로 인감도장이 사용되는 경우를 감안해 인감을 1,2개 정도 더 파서 사용인감을 추가로 가지고 있는 게 효율적이다.     



창업자금의 자본금 전환


이제 정말 중요한 게 남았다. 그건 바로 창업자금이다. 스스로 벌어놓은 저축이든, 은행빚이든, 부모님이 준 유산이든 돈이 있어야 회사는 굴러간다. 주식회사는 창업자금을 자본금으로, 자본금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의 경우 자본금은 1천만 원으로 시작했다. 여기저기 돈을 끌어모아 창업자금을 만들었다면 하나의 계좌에 일괄적으로 예치한 후 은행에 달려가 "현재 내 통장에 이만큼의 돈이 들어있어요."라는 것을 증명하는 잔고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예전에는 법인 설립 요건으로 5천만 원 이상의 자본금을 요구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았다. 현재는 법인 설립요건이 완화되면서 통장에 100만 원만 있어도 자본금 인정이 되어 얼마든지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만약 회사를 먼저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면 수중에 있는 돈만을 가지고 빨리 법인 설립절차를 밟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사무실 구하기


그다음에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할 장소, 사무실이 필요하다. 세무서나 법원등기소에 가서 회사 설립을 신고하는 게 먼저가 아니고 사무실을 우선순위로 구해야 하는 이유는 회사 설립을 신고하려면 사업장의 소재지가 필요하고 소재지에 대한 증명은 부동산 임대계약서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계약 시에는 계약서의 명의가 반드시 회사 이름이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빨리 회사를 만들고 싶었기에 사무실을 먼저 구하지 못했고 대신에 내가 살고 있던 투룸 주택의 임대계약서를 세무서에 들이밀었다. 내 경우 세무서 직원이 내 집에 방문해서 진짜 회사를 만드는 게 맞는지 사기를 치는 건지 확인까지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면서 얼레벌레 승인이 되었다. 단 어서 빨리 정식 사무실을 구하라는 조건부 승인이었다.   



법무사, 세무사 사무실 방문


자 어쨌든 사무실을 구하고 임대계약서도 나왔다. 이제 법인 설립의 지난한 나날을 거쳐 후반전에 돌입했다. 그러면 다음 스텝은? 법인을 정식으로 설립하려면 법원에 가서 등기를 해야 한다. 또 자본금을 주식 형태로 전환 후 사업장 소재지의 관할 세무서에 가서 주식의 소유자와 주식의 수를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법률지식이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라 당연히 우리 대부분이 세부내용에 까막눈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결국 법인 설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률서비스를 대행하는 법무사나 변호사를 찾아가야 하고 주식 형태로 전환된 자본금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이를 대리해 줄 수 있는 세무사나 회계사를 찾아가야 한다.     


법인 설립 대행에 대해 살펴보자. 법무 대행을 맡기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돈이 엄청 들어갈 것 같고 위압감도 생긴다. 말 그대로 심리적인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그러면 법무사를 찾아가면 된다. 사실 나는 변호사는커녕 법무사 사무실도 평생 가본 적이 없었고 주변에 법대 나온 사람도 드물어 다리 건너라도 아는 법무사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대충 집에서 가장 가까운 데를 찾아갔다. 당시 내 집은 일산의 백석동에 있었는데 도보로 10분 거리에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이라는 법원이 있었다. 법원 앞에는 언제나 변호사, 법무사 사무실들이 바글바글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적당히 검색해서 사람들이 매긴 평점과 반응이 괜찮은 데를 골라잡아서 갔다. 나중에 양재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이후에는 주거래 법무사 사무실이 너무 멀어서 다른 곳으로 바꾸어야 했는데 이때도 네이버 지도를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고 가장 가까운 데로 정했다.  

   

이 방법은 의외로 편리하다. 사실 법률서비스 대행료, 수임료라는 게 어느 정도는 공시가로 정해져 있어서 각 법무사 사무실마다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반찬값도 아니라 깎아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좀 모양 빠지는 일이다. 자신이 원래 알고 지내던 법무사 사무실이라 할지라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이라면 굳이 거기까지 찾아가는 일이 번거로울 수도 있다. 자본금 증자나 사업장 소재지 같은 회사의 정보가 바뀌어 등기를 하게 되면 인감도장을 들고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로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내 경험 상 소재지가 가까운 곳을 추천한다.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법인 설립과 법원 등기를 의뢰할 때는, 법원이 법인 인격체의 후견인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니 나의 개인인감과 주민등록등본 같은 것도 가져야 하고 이사와 감사를 설 사람의 개인인감과 주민등록등본도 챙겨가야 한다. 번거롭더라도 잔고증명서, 사업장이 들어설 부동산 임대계약서 같은 회사 설립을 준비하면서 발생한 문서들은 죄다 챙겨서 들고 가자. 내 경우 서류 하나를 실수로 빠뜨려서 먼 걸음이 헛걸음이 된 적이 있었다.



회사 정관 만들기


법인 설립의 요식행위 중 하나는 회사 정관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의 정관에는 회사의 상호, 회사의 목적, 소재지, 주식정보, 주주총회 방법, 이사와 감사의 선출 및 의무, 회계처리방식 등 회사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회사 운영에 대한 종합적인 지침 등이 기록된 일종의 회사용 규약집이다. 보통은 법무사가 템플릿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템플릿을 바탕으로 신설법인의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한다. 만약 창업자가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특약사항이 있다면 법무사에 요구를 해서 새로 만드는 정관에 포함을 시켜야 한다. 내 경우 일단 법무사가 가지고 있는 정관 템플릿을 그대로 수용해 내용을 만들었고 나중에 사항들을 4차례 변경하였다.      


파란오이 설립초기시 만들어진 정관의 일부다.



사장님. 이런 거 할 시간에 사업 더 잘 할 고민 하셔야지요!

물론 법무사를 통하지 않고도 법인을 설립하는 법 같은 것을 써놓은 블로그 같은 것을 뒤져서 스스로 법인 설립과 등기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나도 돈이나 좀 아껴보려고 직접 해볼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을 접고 법무사를 찾아간 것이다. 스스로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법무사가 찍으라는 문서에 도장을 다 찍고 법무사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인터넷 보니 직접 하는 경우도 있던데요? 요새는 그렇게도 많이 하나 봐요?”     


그러자 법무사는 이렇게 답변을 했다.     


“사장님. 당연히 젊으신 분인데 직접 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거 할 시간에 사업 더 잘 할 고민 하셔야지요.”     


법무사의 답변에 무릎을 딱 쳤다. 대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시간은 금이라고 당연히 돈으로도 환산 가능한 게 시간이다. 괜히 돈 아낀다고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쏟으면 되려 낭비가 될 수 있다.  회사를 어떻게 잘 이끌어갈지를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를 행동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법인등기 같은 작업은 잘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안 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니 법률상의 오류로 인해 다시 등기를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첫 등기부등본부터 말소 사항을 의미하는 삭제줄들이 잔뜩 들어가 내용만 지저분해질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획기적인 일이 발생했다. 온라인법인설립시스템이라고 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법인 설립을 인터넷으로 쉽고 간소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이런 행정편의 시스템을 만든 기저에는 역시 현재 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니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열심히 창업을 합시다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www.startbiz.go.kr        


법무사의 법인 설립 대행비용은 자본금을 얼마로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50~100만 원 사이라고 보면 된다. 대행비용 안에는 법인등록세, 교육세. 인지세, 교통료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정성껏 도장을 찍은 서류를 들고 법인 설립절차를 진행한 법무사는 3~7일 정도 걸리는 등기 진행이 완료된 후에 A4 각봉투에 등기부등본 2장, 정관, 대행료 영수증 등을 넣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나는 봉투를 뜯고 등기부등본을 받아 든 순간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아 이제 내가 사장이 되었구나!

“아 이제 내가 사장이 되었구나!”     


그 어렵다는 임원별을 달았다. 회사에 평생을 있어도 불가능할 대표이사. 그 자리를 한방에 초고속 승진했다.


2013년에 발급된 파란오이필름의 법인등기부등본 앞장이다. 사업의 목적 란을 보면 오타들이 발견되는데 법무사가 실수를 한 것이다. 지저분해질것 같아 재등기를 하지않고 놔뒀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이제는 세무사나 회계사를 찾아가서 주식으로 전환된 자본금에 관해 관할 세무서에 신고처리를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1주당 금액은 일반적으로 5,000원으로 책정된다. 주식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주식회사의 경우 대다수가 보통주라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법인 설립 과정에서부터 VC(벤처캐피털) 투자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VC 투자를 등에 업고 설립된 법인의 경우 자본금의 주식전환 과정에서 보통의 법인 설립보다 더 복잡한 셈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차후에 설명하겠다. 


하여튼 나는 자본금 1천만 원이 전환된 2,000주나 주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배가 불렀다. 그러면 뭐하나 별 값어치가 없는 소기업 비상장회사 주식에 회사가 망해버리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휴지조각인 것을. 그래도 이 휴지조각 같은 주식도 증빙이 필요해서 관련 정보들 즉 주주명, 주식의 종류, 주식의 수, 주당 금액 등이 정리된 공식문서인 주주명부라는 것도 반드시 만들어놔야 한다. 이 주주명부는 실소유주, 대주주와 경영진 간의 관계 파악, 자본금의 증자, 세금처리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세무사나 회계사를 만나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기장이란 것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법인은 1년 동안의 매출과 매입 등의 자금흐름을 투명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고 이를 총 결산해서 매년 재무제표를 만들고, 3개월 단위의 분기별로 부가세 신고라는 것을 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일들을 기장이라고 부른다. 좁은 의미에의 기장은 회계장부 상에 현금흐름을 기입해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업무에 대한 수임료를 기장료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법 전문가도 아니고 내부에 회계전공자들로 구성된 총무팀을 별도로 둘 수도 없다. 당연히 회계 기술을 이용해 회사의 자금흐름을 기록하는 서비스를 대행해 줄 외부의 전문가를 두어야 하는데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하는 이가 세무사나 회계사다. 작은 회사들은 보통 회계사보다 세무사에게 의뢰해서 한 달에 얼마씩 기장료를 지불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장료는 매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억 미만의 매출을 하는 회사의 경우 월 기장료로 10~30만 원 사이가 책정된다. 기장서비스에는 단순히 기장만이 아닌 매월 임직원들의 세후 월급여를 산출한 급여대장을 발급하고 사업소득자 신고나 4대 보험가입자 신고 등을 대신 처리해주는 업무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연말정산처럼 각종 소득공제 방법에 대해 자문을 얻을 수도 있다. 창업을 한 후 회사의 공식적인 조력자 중 가장 많이 전화통화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는 법무사가 아니라 세무사다. 그러니 세무사 사무실에 박카스 한 박스 들고 찾아가 친해지는 것도 매우 좋다. 


그렇다면 세무사는 어떻게 고를까? 보통 창업 후 법인등기를 하면 어떻게 사업장의 정보를 알았는지 세무사무소의 브로셔들이 수시로 사무실로 날아온다. 나는 브로셔의 내용이 가장 상세하게 잘 적혀있고 역시 집에서도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골랐다. 작년에는 회사가 서초구 양재동으로 이전하면서 세무사를 어쩔 수 없이 바꾸게 되었다. 매우 친하게 지내는 대학 선배가 있었는데 자신의 친구가 서울에서 회계사를 한다며 나에게 회계사 한 분을 소개하여 주었고 말씀을 나눠보니 나와도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 고향 선배라 반갑게 생각하고 그분에게 기장을 의뢰하였다.  이때의 선택은 학연, 지연이 되어버린 셈이다.  


관할세무서 방문


아직 몇 가지가 더 남았다. 법인창업의 실무는 이렇게 복잡하다. 그렇지만 이제 정말 끝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무서에 가서 미리 정해둔 업태, 종목을 고르고 사업장 주소지를 등록하는 절차를 밟아 사업자등록증이라는 것을 발급받아야 한다. 사업자등록증은 회사 간의 매출, 매입거래를 국세청에 신고하기 위한 세금계산서의 발급 용도로 다른 회사와 주고받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스캔을 뜬 복사본을 보통 사용하고 원본은 소중하게 보관해야 한다. 사업자등록과 등록증 발급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국세청의 민원 및 세제업무를 전담하는 사이트인 홈택스라는 곳에서 진행할 수 있다.


집에서 계약한 사무실로 주소를 변경한  두번째 발급받은 사업자등록증이다.


홈택스는 세금계산서의 발급, 연도별 재무제표나 국세완납증명서 같은 민원서류의 열람 조회 및 발급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계담당자를 별도로 두지 않은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스타트업의 동반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홈택스 시스템의 기능과 구조에 최대한 신속하게 친해져야 한다.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www.hometax.go.kr


자 이제 이 정도면 회사 설립을 위한 요식행위들이 어느 정도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낮은 고개를 하나 정도 넘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난이도가 더 높은 레벨의 차원으로 진입해야 한다. 각종 스트레스나 분노, 불면증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다양한 악당과 그 졸개들이 스테이지 안에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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