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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18. 2018

동업자와 조력자, 그리고 나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한 애국자?

글을 쓰면서 눈을 감고 천천히 헤아려봤다. 그동안 내 회사를 거쳐 지나간 이들의 얼굴들을 그려보았다. 보자... 꽤 많은 이들이 이 작은 회사를 거쳐갔다. 두 손을 꼽아도 모자란 걸 보니 족히 20명은 넘는 것 같다. 고용인원의 숫자를 두고 누군가는 "지금 청년실업이 사회에 크나큰 문제인데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한 애국자시네요"라고 칭찬해줄지도 모르겠다.      


애국자라고? 택도 없는 소리다.      


“내가 직장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왔구나. 구성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이든, 월급이든, 그 어떤 보상이나 심리적인 만족을 주지 못해서 그들이 날 떠나갔네. 내가 참 못난 사람이네...."     


이런 생각에 쓸쓸함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회한에 잠긴 영화 대부의 돈 꼴레오네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황량한 겨울의 분위기와 맞물려 쓸쓸함은 더 커져만 갔다. 나무 잎사귀들이 몸을 숨겨버린 겨울 한복판에서 이번엔 사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창업과 경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동업자와 조력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의 일생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 시작해서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 끝난다. 신생아는 눈을 처음 뜬 순간 엄마와 아빠를 맞이한다. 학교에 가서는 친구를 만나고 사회인이 되면 직장동료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결혼을 하면 반려자를 만나고 반려자의 가족을 새로운 식구로 받아들인다. 병든 노년이 되면 낯선 의료진과 자주 만날 테고 수명을 다해 죽음을 맞이하면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비로소 사람 만나는 일을 멈추게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하긴 법인이 '법적인 인격체'의 준말이니 사람하고 똑같을 수밖에. 검사들이 수사는 생물이라고 그러던데 마찬가지로 회사의 창업과 운영도 생물이다. 어디로 어떻게 물꼬가 나아갈지 그 변화를 예측하기도 어렵거니와, 흥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소멸된다는 점에서 사람의 일생과도 비슷하다. 나름대로의 삶을 회사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창업자는 보통의 사회인이 그러한 것처럼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어찌 보면 사람을 만나고 관리하고 응대하는 일이 회사 운영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요새 유행하는 것 중에 1인 창조기업이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생계형 창업이 아닌 주로 지식서비스 분야에서 혼자만의 독보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창업해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말한다. 컴퓨터와 자동화 시스템, 각종 산업인프라가 발전하면서 과거 10명이서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1인 창업은 프리랜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프리랜서는 자신의 회사가 없는 상태로 움직이는 이라면 1인 기업가는 어찌 되었든 회사명의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랜서든 1인 창업이든 본인이 직접 일을 끌어오거나 스스로의 영향력으로 일이 발생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과 자질이 매우 뛰어나야 한다. 1인 창업은 창업자의 주도로 모든 일들이 100%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을 모으고 뽑고 꾸리는 일에 그다지 힘을 쏟지 않는다. 물론 창업은 생물이기에 1인 창조기업이라도 회사가 자신도 모르게 커져버리면 자신의 일을 나눠줄 수 있는 누군가를 직원으로 뽑아야 하고 그러면 1인 창조기업의 정체성은 무너진다.



단독창업과 공동창업


소기업의 경우 경영의 구동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표 이외에도 회사의 핵심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인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들을 동업자와 조력자로 지칭하고자 한다. 만약 디지털콘텐츠 개발 회사라면 콘텐츠 제작과 관리가 가능한 인력이 있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 모바일 게임의 개발사의 대표가 기획자라면 구성원으로 개발자, 디자이너가 필요할 것이다.     


회사를 창업하는 방식은 경영권이나 지분의 분배 유무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단독창업과 공동창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독창업은 창업자 1인이 본인의 역량을 이용하여 주도적으로 창업하는 것이다. 당연히 창업자가 모아둔 돈을 회사 자본금으로 몰빵했기에 지분도 100% 일 테고 경영권도 안정적으로 소유한다. 내 경우는 단독창업에 해당한다. 혼자서 회사 경영 상의 책임을 떠안기에 리스크는 크지만, 반대로 회사에 대한 완벽한 장악을 했기에 회사를 통해 벌이들이는 이윤도 떳떳하게 독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단독창업은 창업자의 역량이 1인 창조기업의 창업자만큼 전방위로 뛰어나야 하고 본인이 A부터 Z 모든 것을 커버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두루두루 광범위하게 알아야 한다. 창업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해당 부분을 대신 맡아줄 수 있는 조력자를 임원이나 직원으로 두게 된다. 나는 창업 초기에 콘텐츠 제작, 기획관리를 해 줄 수 있는 두 사람을 뽑았다. 한 명은 대학 동기였고 다른 한 명은 대학 동기의 친구였다.(내 인재관리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두 사람 다 현재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 않다)     


공동창업은 2인 이상이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나눠 맡고 창업을 한 경우를 이야기한다. 회사라는 한 지붕 아래 동등한 파트너로서 일을 하기에 회사의 다양한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잘만 굴러가면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처럼 각자의 장점과 역량이 서로 뭉쳐져서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단점은 명확하다. 동업자와의 관계가 경영상의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초기엔 미래를 낙관하며 서로 으쌰으쌰 밤을 새우고 추운 겨울을 견디는 동료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회사가 업력이 쌓이고 발전하면 서로 간에 적당한 매너리즘이 생기고 수익이나 경영권의 문제로 하나둘 다투게 된다. 결국 한 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이들이 막판에 가서는 서로 멱살을 쥐게 되고 소송절차를 밟기도 한다. 회사가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어도 다툼은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 파이팅 넘치던 활력은 점차 사라지고 무엇을 진행해도 잘 안되기 때문에 늘 기운이 빠지고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붙는다. 잘되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인 것이다.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봉합되지 않고 되려 눈덩이처럼 불어나 종국에는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공동창업의 경우 마치 예정된 비극이었는지 결국 10에 6~7은 서로 남남이 된 것 같다. 록밴드를 살펴보면 공동운명체의 결말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아일랜드의 록밴드 U2나 한국의 자우림처럼 멤버 변화 없이 오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지극히 드문 케이스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싸우고 으르릉대다가 해체라는 파국을 맞이한다. 리더십이 뛰어났던 존 레넌, 작곡에 뛰어난 폴 메카트니의 다툼으로 인해 해체한 비틀스, 아직도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며 두 핵심 멤버가 다투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가 대표적인 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통장에 제법 돈이 들어오면 창업자들은 배프고 추웠던 올챙이 시절은 까먹게 된다. 회사가 점점 더 커지면 경영과 금전 문제로 주도권 다툼이 생기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파워게임이 발생하고 권력을 잡은 이는 한때 형제보다 더 진한 관계였던 동업자를 내쫓게 된다. 특히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등 회사의 전면적인 변화가 착수되는 상황이라면 기존 직원들에 대한 평가와 구조조정이 우선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공동창업자라 하더라도 회사 비전에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쫓겨날 수 있다.     


그렇다고 단독창업이 사람 간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동업자 수준은 아니지만 회사 초기, 회사가 안정적인 기틀을 쌓을 수 있게 도운 소중한 조력자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회사 운영과정에서 경영자와 조력자 간에도 갈등이 생긴다. 보통 경영자는 회사가 잘되면 자신이 경영을 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회사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거나 이익을 독식하고자 하는 욕망이 싹튼다. 그사이 조력자들의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반대로 회사가 좋지 못한 상황이라면 경영자는 조력자들을 자주 다그치고 조바심을 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력자는 경영자의 경영능력을 점점 더 불신하고 임금체불이 빈번해지는 회사에 애착을 버린다. 사람 간의 갈등은 단독창업, 공동창업 모두에서 일어나는 공통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의 왕조가 탄생되는 개국 과정과 너무나도 유사한 회사의 성장과정

그런데 우스운 건 회사가 커져가는 과정의 본질이 본래 그렇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하나의 왕조가 탄생되는 과정 즉 개국(開國)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성계와 형 아우를 칭하며 돕던 개국공신들은 노비와 전답을 받으며 노고를 보상받았다. 하지만 왕조가 안정적인 기틀을 갖춰가면서 어제의 공신들은 오늘의 역적이 되어 하나둘씩 제거되었다. 심지어 이성계 자신의 아들들까지도 말이다. 이번엔 애플의 회사 초창기를 살펴보자. 사실 애플의 초창기는 스티브 잡스가 회사 성장에 불필요한 이들을 냉혹하게 제거해나간 숙청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애플의 브레인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던 개발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퇴출은 회사를 장악하려는 잡스의 욕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비정해 보이겠지만 회사는 생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회사가 성정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제거한다. 경우에 따라선 회사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경우에 창업자 본인도 쫓겨날 수 있다.     


이 냉혹한 숙청은 당연히 창업자가 수행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하고 따뜻한 품행과 덕성을 지닌 이라도 창업자가 된 순간 자기 손에 시뻘건 피를 묻히게 되는 숙명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창업자는 자연스레 사람을 잃게 되고 주변인들은 하나둘 떨어져 나가게 된다. 다 잘 먹고 잘살려고 회사도 창업한 것인데 이렇게 갈등하고 친한 이들과 척지고 살려고 회사를 한 것인지 자괴감이 든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며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창업자에게는 도통 틀린 말인가 보다.     


왕위에 오르지만 혈육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오이디푸스! 정해진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 그리스 비극 같은 상황이 창업자의 운명인 것인가? 경험자들은 이런 복잡하고 난감한 상황들을 대비해 창업 초기에 동업자나 조력자 간의 관계를 잘 정리를 해놓으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공허한 결과론에 불과한 이야기다. 이런 상황들은 창업자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 막기가 불가능하다. 반복해 강조하지만 회사는 생물이기에 어느 방향으로 회사가 나아갈지를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심지어 창업자 본인도 1년 뒤 5년 뒤의 회사 상황을 절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연에 그런 갈등 원인을 100% 제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전벨트가 교통사고를 예방하진 못하지만 부상 위험은 줄일 수 있다!
 


지분 문제에 대해


안전벨트가 교통사고를 예방하지 못하지만 사고가 나면 부상 위험은 줄여주듯이 우리도 충격 완화요법은 쓸 수 있다. 창업 초기에 동업자 혹은 조력자들과 회사의 운영과 비전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의사소통한 후 계약관계나 지분을 반드시 <주주 간 계약서> 같은 공식문서로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가령 ‘내가 대표이사를 맡을 테니 대신 네가 월급을 많이 50% 가져간다’, ‘지분을 내가 51%, 네가 49%를 가지되 나는 콘텐츠 개발을 너는 경영을 책임진다’ 이런 식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불편하더라도 서로 간의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문서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정관의 개정이나 공증 같은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도 있다. 만약 사후에 분쟁이 생기면 미리 교통정리를 해둔 문서들이 법적 판단의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에 소송까지 치닫는 최악의 상황들이 되려 덜 발생한다.


주주 간 계약서를 만들 때 가장 신중하게 생각할 것은 지분이다. 아파트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목숨 걸고 시작하는 이들이 창업자다. 이들의 입장에 기울어 이야기한다면 지분을 단 1%라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단 1%라도 외부인의 지분이 있다면 회사가 향후 외부의 투자를 받거나 성장하는 데 있어서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지분관계가 지저분하고 복잡하면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도 해당 회사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창업 구성원 2명에게 이사직을 주고 지분의 10%를 양도한 적이 있다. 대신 이 회사를 퇴사하면 지분을 다시 반환하는 식의 계약을 했었다. 지분은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지키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흔히 공동창업을 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간의 지분을 50:50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나중에 갈등이 생기면 서로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게 되는데 지분이 똑같아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자충수에 빠지게 된다.      


양도한 지분을 다시 회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동업자와 니 탓이니 내 탓이니 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마당에 그 상황에서 지분을 다시 넘긴다는 내용이 담긴 주식매매계약서에 인감도장 찍어라라고 요구하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이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사전에 권리 간의 내용을 정리한 계약문서를 작성하거나 법적인 절차를 완료해놓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창업 후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동업자 혹은 조력자와 갈등하여 어쩔 수없이 바이 바이 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들과 최대한 쿨하게 헤어져야 한다. 회사만 아니었다면 사회에서 만나 형님 좋고 아우 좋고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을 사이였을 것이다. 향후 이들은 경영에 다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갑의 위치인 클라이언트로도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사람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오늘은 인간사의 비정한 모습들을 회사를 통해 이야기한 것 같아 마음이 허하다. 그러나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사람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창업을 하면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을 청하게 되는데 회사 운영의 생리상 이들과 소원해지는 일들이 발생하기 쉽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회사가 잘되면 당연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회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에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행동이 회사의 이익과 상충하게 되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친구의 입장을 헤아려 줄 수가 없다. 친구의 해사행위를 거절하면 친구는 그동안 내가 도와준 게 얼마인데라고 일갈하며 상처를 입은 채 창업자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창업자의 삶은 외롭고 고독한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자주 척을 지고 인연을 끊어가면서 인간관계가 계속 좁혀지는 창업자와 그 회사에게 미래를 기대하긴 힘들다. 아직 우리는 젊기에 소원해졌던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피를 나눈 동지들을 잃고 함흥에서 뒷방 늙은이가 된 이성계의 처지는 되지 말자.




됐고요. 일단 여기서 작업 멈춥시다. 다시 연락드리죠.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012년 2월, 회사 제품을 소개하는 모션그래픽 기반의 영상작업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자막도 촌스럽고 이미지가 움직이는 게 너무 이상해요. 지금이 몇 번째예요. 수정 정말 제대로 안 되나요. 이거?”

“죄송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다시 고쳐드릴게요.”

“됐고요. 일단 여기서 작업 멈춥시다. 다시 연락드리죠.”    

 


조력자 구하기 - 직원 채용


통화가 끊겼다. 나는 구겨진 얼굴로 이 작업의 실무를 진행했던 신입사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직원은 창업 후 처음으로 잡코리아나 사람인 같은 구직구인 사이트에서 뽑은 20대 중반의 친구였다. 5개월 뒤 이 직원은 안타깝게도 업무 미숙이라는 판단 하에 내 손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글의 전반부에 동업자와의 창업자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후반부엔 조력자, 직원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 스타트업, 소기업이라고 창업자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구인을 해서 회사를 도울 인력을 채용하거나 스카우트하여야 한다. 인재를 섭외하는 건 쉽지 않다. 유능한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데 적당한 사람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채용 스트레스는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스타트업 대표가 평생 함께할 고질병이다.     


그런데 입장 바꿔서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일처리가 뛰어나고 스펙 좋은 인재가 돈도 많이 주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가지 왜 미쳤다고 스타트업에 가겠는가? 아니 그렇게 유능하고 일을 잘하면 본인이 직접 창업해서 자기 회사를 하지 왜 남의 밑에 들어가서 일하겠는가? 당연히 소기업, 스타트업 주변에는 유능한 인재가 드물다. 이로 인해 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안타깝게도 늘 만성적인 구인란에 시달린다.     


적당한 사람을 채용하지 못하면 창업자는 급한 마음에 가제트 만능 팔처럼 일단 혼자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한다. 능숙하지도 않은 포토샵을 끼적이거나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을 하기도 한다. 일 중간중간에 사업계획서도 작성하고 제안서도 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할 일을 혼자서 도맡으면서 사무실에서 밤을 홀딱 지새우는 날이 많아진다. 어느 순간에 집은 그냥 옷을 갈아입고 눈을 잠깐 붙였다가 나오는 간이숙소로 용도 변경된다. 그렇다고 천년만년 언제까지 일인다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우리를 도울 사람을 뽑아야 한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회사라는 것도 유기적으로 굴러가려면 특정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각자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을 뽑아야 할까?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내 경우 일단 학연, 지연 기반의 지인 카드를 많이 활용했다. <3화 학벌 세탁의 전형>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인문, 예술, 공학 기반의 대학을 3개나 다녔기 때문에 학연 기반으로 사람을 수소문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다. 학교 후배를 직원으로 데리고 온 적도 있고 또 강사로 출강하는 대학교의 내 수업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을 섭외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양하게 다녔던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렇지만 지인 카드를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의 인적 네트워크가 구인구직 사이트보다 넓을 리 없으며 특히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는 당연히 연결선을 닿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예술계열의 학교를 다녔다면 개발자를 알기가 쉽지 않고 공대를 나온 친구가 디자이너들과 친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이 고질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회사가 대기업이 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대기업은 회사 자체의 평판도, 연봉, 복지 등 인재를 끌어당길 수 있는 다양하고 강한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사하고자 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대기업과 비교해 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사람을 당길 수 있는 자석은 거의 없다. 오로지 비전, 즉 성장 가능성과 성장과정에서의 성과공유 정도만을 간신히 어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회사 비전에 대한 대표의 어필은  "이 주식은 5년, 10년이 지나면 엄청나게 올라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어느 주식투자자의 공허한 외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이 고질병을 관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대표가 창업 관련 모임이나 인접 업계 등을 부지런히 발품 팔아 교류해서 사람을 찾아 헤매야 한다. 유사업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자리와 모임을 찾아가 보자. 오랫동안 대기업이나 기존 기업에 다녔는데 큰 기업의 조직문화에 신물이 난 이가 발견되면 적극 공략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원래 하던 일이 재미없어 퇴사를 했고 현재 직업의 전환에 관심이 있는 이를 미팅 후 섭외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이들은 연봉이나 회사의 수준보다는 전환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경험치를 쌓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대표가 스스로의 인간적인 매력을 어필하던가 아님 회사의 비전을 잘 포장하고 뻥튀기를 해서 장밋빛 꿈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면 이것만으로 유인동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얇은 월급봉투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경제성장률 7,8%의 개발도상국 시기가 아니다.

그런데 원하는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막상 채용 후에는 부족한 살림 때문에 매월 나가야 할 월급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어럽게 채용해서 뽑아놓은 직원이 막상 생각만큼 일을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을 더러 본 적이 있다.      


“한 번에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실수가 많아.”

"클라이언트만 만나면 만날 싸우고 들어와."

“전화를 잘 안 받아. 통제가 안돼”

“농땡이만 치고 일을 제대로 안 해..”     


불만을 들어보면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래서 한 번은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연봉이 얼마나 돼요?”

“자금 사정도 안 좋은데 2,000만 원이나 주고 있어요.”     


2,000만 원이라. 없는 살림에 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2천만 원은 사실 매우 큰돈이다. 그러나 2,000만 원을 12개월로 쪼개면 166만 원 정도의 월급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현재 시점에서 최저임금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직원에게 이 정도의 임금을 주면서 일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채용에 대한 고민 이전에 우리가 전제할 것은 사람은 본질적으로 받은 만큼만 일하려는 경향이 있고 월급과 능력은 어느 정도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은 얇은 월급봉투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경제성장률 7,8%의 개발도상국 시기가 아니다. 박봉에도 모두가 앞뒤 재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에게 마치 대표처럼 회사와 일심동체가 되어 온몸을 바쳐서 일을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나머지의 시간은 개인의 삶의 질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거대기업의 나이 먹은 오너들이 시무식에서 올 한 해도 회사와 나를 혼연일체 한 몸처럼 여기고 열심히 일하자고 외치는 신년사가 언론 기사로 나가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직장과 개인의 삶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현시대를 읽지 못하고 매우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장도 흡족해하는 능력자는 회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여기저기 다른 회사에서도 모셔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자기의 몸값을 높게 베팅하기 마련이다. 공을 잘 치고 타율이 높은 타자가 평범한 타자보다 연봉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연봉이 낮은 사람은 경력이 풍부하지도 않고 나이도 어린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회사 안에서 시행착오하며 배워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 초년병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건 오버다. 또 나이가 많고 경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낮은 연봉에 입사했다면 업무능력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즉 월급을 적게 책정하면 여러모로 능력이 부족한 이가 올 확률이 높고 능력자들은 연봉이 높기에 회사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된다. 이것이 현실이고 조력자를 찾는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채용의 딜레마다.     



소기업은 가장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소기업의 효율성


내 경험으로 소기업은 회사의 BM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핵심적인 인원 이외에 가장 가볍게 가는 것을 권장한다. 대표 이외에 추가적으로 1~2명 정도만 유지하는 극도의 긴축정책을 쓰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콘텐츠 개발 전문 기업이라면 대표가 사업의 기획과 재무 등을 맡고 콘텐츠 디자이너를 조력자로, 대표가 디자이너라면 핵심인력으로 개발자를 데리고 있는 것도 방법이다. 더불어 모자라거나 비어있는 파트와 인력은 협력업체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서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즉 다른 업체에 외주용역을 주거나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소기업 대표의 아픔은 당연히 같은 소기업 대표가 알기 마련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일단 회사의 핵심 BM에 관한 실적과 포트폴리오가 필요하기 때문에 적은 비용에도 의외로 일을 수락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소기업의 구인란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려면 소기업만큼은 고용의 형태나 노동의 유연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이를 일시적으로 고용해서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가능한 노동환경이면 많은 스타트업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중심의 회사들은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회사의 업무 사이클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베이스로 채용과 해고를 할 수 있는 체계가 조금 더 쉽게 구축된다면 스타트업과 소기업은 당연히 회사 운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 대규모의 콘텐츠 개발 작업을 유치했을 때 30명이 되었다가 개발이 완료되면 개발인력들은 빠져나가고 핵심인력 3~4명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창업자가 회사를 훨씬 탄력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 이러한 유연한 노동 요건이 완성되려면 정규직 근로자와 모든 노동조건이 동등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구축되어야만 한다.


연착륙 같은 퇴사 과정을 만들자

직원의 퇴사 과정


직원이 회사나 대표에게 불만을 가져서 혹은 창업자가 직원의 업무에 만족을 하지 못해 퇴사가 발생하는 경우 창업자는 동업자와 관계와 마찬가지로 직원과 최대한 마무리를 잘해 쿨하게 헤어져야 한다. 먼저 창업자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창업자가 퇴사 과정에서 직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잔무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10에 9는 잔무들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끝나야 윤곽이 드러난다. 콘텐츠를 특정 전시공간에 설치했다면 전시 과정에서 유지보수가 발생할 수도 있고 콘텐츠 안에 포함된 간단한 자막을 수정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잔무들은 조력자가 실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대표가 자세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퇴사한 직원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읍소 하듯 일을 부탁해야 한다. 또 유사한 프로젝트가 차후에 발생할 경우 퇴사한 직원을 다시 불러 섭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디자이너나 개발자 풀은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모로 창업자와 직원은 입사와 퇴사 과정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로 직원 입장에서도 부드러운 착륙 같은 퇴사가 중요하다. 퇴사 이후에도 경력증명서나 보험료의 세액공제를 받기 위한 용도의 해촉증명서 같은 것을 떼기 위해 회사에 연락할 일들도 발생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를 하기 위해 대표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퇴사 과정에 잡음이 발생해 대표 면전에 침 뱉고 나간 사람에게 대표가 그런 것들을 제때에 잘해 줄리 없다.     


차라리 비관론에서 출발한다면 회사를 유지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창업자가 부처 같은 성격을 지녀서 동업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특성상 낮은 임금과 처우를 벗어나지 못하면 퇴사와 입사가 수시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호텔의 회전문처럼 사람들이 드나드는 과정 속에서 창업자는 쉽게 지치고 피로해진다. 대기업의 평균 근속연수 10년이라는 숫자는 소기업과 스타트업 앞에선 지극히 현실감이 떨어지는 난감한 스코어다. 수시로 밖에 나가 하이에나처럼 적절한 조력자를 찾아 헤매는 것이 창업자의 숙명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애당초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무리한 욕심은 버려야 한다. 또 어찌어찌해서 사람을 간신히 구해 입사를 시켰어도 업무능력에 무리한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비관론에서 창업자가 출발한다면 회사가 앞으로 전개할 상황들이 더 멀리 보이면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기초체력의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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