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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Jan 25. 2018

회사의 본질이란?

소기업의 창업과 운영에 관한 좌충우돌 생존기

회사의 본질
냉혹함과 낭만성 사이에서 격렬하게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

회사의 본질 - 냉혹함


창업 7년 차가 되면서 알게 된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회사의 본질이다. 자본주의의 맨 앞단에 서서 무자비하게 발휘되는 냉혹함과 그 냉혹함을 가리기 위해 멋지고 환상적인 일터로 포장된 낭만성이 교묘하게 혼재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냉혹함과 낭만성 사이에서 격렬하게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바로 회사의 본질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다면 회사 안에서 대표의 주된 업무는? 낭만성과 냉혹함이 마주한 시소 위에 아슬아슬 올라가 넘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우선 냉혹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처음에는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맹렬하게 공격하던 부르주아, 내 배만 불리려는 탐욕스러운 돼지가 바로 나라는 것을. 경제활동을 통한 돈을 벌기 위한 행위 즉 이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회사와 자본주의는 완벽한 자웅동체다. 창업을 한 이상 좋든 싫든 간에 나는 이제부터 자본주의의 화신일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주장하는 공동체주의자 혹은 체 게바라를 동경하며 모든 것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공산주의자라 할지라도 창업을 하고 회사를 만든 이상 이제부터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움직이는 첨병이자 공격수인 것이다.      


경제학에서 전통적으로 정의하는 회사는 경쟁시장에 들어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윤은 기업이 벌어들인 총매출에서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구현하면서 투여된 비용들을 뺀 순수한 금액을 말한다. 직원의 임금, 제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구입비 등이 비용에 속한다. 이윤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이윤 = 총수입 - 총비용     


창업을 했다면 자본주의 첨병의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제부터 이윤의 추구에 지독하게 골몰해야 한다. 창업을 한 대표가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없다면 그 기업은 창업을 한 다음 날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온갖 비즈니스 모델을 짜고 밤을 새워서 열심히 노력해도 회사에 제대로 축적되지 않는 것이 이윤이다. 오고 가는 매출과 매입 흐름을 대표가 대충 어림짐작해서 "이번 달은 1,000만 원 정도 이윤이 남겠네"라고 생각하면 경험상 실제로 통장에 남는 것은 고작 100만 원 정도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돈이란 건 쌓이기는 어려워도 이것 떼고 저것 떼고 하면서 얇디얇은 종이처럼 술술 날아가기는 쉬운 것이다. 그만큼 이윤을 남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기업 재무회계의 관점에서는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이 일종의 이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매출액 대비 10% 이상의 영업이익, 순이익을 가져가는 회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경쟁시장 진입 - 피자판 자르기


스타트업, 소기업의 창업자는 회사 안에 잔고가 지속되도록 만드는 일. 즉 이윤을 만들기 위해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쟁시장(Competative Market)에 들어가야 한다. 창업자의 주특기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사람들이 사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은 기존시장과 신규시장 두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기존시장은 말 그대로 현재 존재하는 시장을 말한다. 대표는, 값이 싸다든지, 성능이 뛰어나든지 뭐든지 간에 개발한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최대한 어필해서 시장 안에서 기존의 경쟁자들과 박 터지게 싸워가며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조금씩 이겨나가면 이윤이 축적되기 시작하고 회사가 커지면서 점점 신바람이 나지만 이기는 싸움보다 지는 싸움이 많아지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당하게 되고 종국에는 폐업신고 절차를 밟고 간판을 내려야 한다. 반면 신규시장은 일종의 블루오션을 뜻하는 것으로 경쟁자가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기존에 없던 형태의 시장을 말한다. 이 경우 창업자는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 즉 없던 니즈를 발굴하거나 간질간질 북돋아서 새로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일단 기존시장을 비좁고 들어가는 행위는 남이 확보한 시장을 빼앗는 비정한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시장은 일종의 커다란 피자판으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쟁자 혹은 경쟁기업은 피자판을 둘러싼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은 피자판이 도착하면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자연스럽게 커터를 이용해 피자를 조각조각 잘라먹곤 했다. 그런데 새로 창업을 한 회사의 대표는 그 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군침을 흘리며 한 점이라도 차지하겠다고 외치는 판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리 안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피자판은 커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한 조각 먹겠다고 거듭 우기면 기존 사람들의 몫은 어쩔 수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다음 피자의 이름은 한국의 경제다. 한 나라의 경제 크기를 특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의미하는 GDP를 생각해볼 수 있다. GDP를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 한국의 GDP 성장률이 좀처럼 3%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니 경제는 성장하지 않고 정체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즉 바꾸어 말하면 이 말은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피자판의 크기가 매년 배달할 때마다 커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우리가 창업을 해서 한국의 경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늘 크기가 변함이 없는 피자판에 손을 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국경제라는 관점에서 창업은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야 했던 이윤을 어쩔 수 없이 직간접적으로 빼앗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기존의 피자판을 갈라 빼앗는 약탈자가 되지 않고 아예 본인의 기술을 발휘하여 새로운 피자를 만들어 미래를 여는 것 즉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없던 레시피를 개발해서 새로운 피자를 만드는 것이 당연히 어려운 것처럼 고객에게 없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해서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시장이라는 것이 정말로 만들어지는 게 가능할까?
기존시장을 좀먹은 일부가 새로운 시장으로 환골탈태한 게 아닐까?

경영학자 크리스텐슨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와서 아예 없던 시장을 만드는 개념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말한다. 주로 스마트폰이나 에어비앤비, 태양의 서커스 같은 것들이 파괴적 혁신의 훌륭한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나는 이 제품과 서비스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데는 수긍하지만 기존 시장을 갉아먹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탄생시켰다는 말에는 100%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하늘 아래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이라는 것이 정말로 만들어지는 게 가능할까? 기존의 시장을 좀먹고 좀먹은 일부가 새로운 시장으로 환골탈태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덧붙여 현재 성장률이 거의 정체된 선진국의 경제형태를 닮아가며 완숙으로 삶아지고 있는 한국경제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많은 이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테마들 VR, 사물인터넷, 전기차 같은 것들이 마치 새로운 시장 가나안을 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착시일 확률이 높다. 내 회사 역시 VR기술이 적용된 콘텐츠를 주력해 제작하고 있지만 VR이 기존에 없던 신규시장을 연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에서 수요 공급되었던 콘텐츠가 VR 콘텐츠로 대체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VR이라는 화려하고 혁신적인 시장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피자판에서 정말 교묘하게 조금씩 양을 빼서 제 몫을 확보했던 것이다.     


결국 회사가 존속 유지하고 창업자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행위 즉 이윤의 추구는 다른 이가 먹어야 할 피자 조각, 남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만 가능하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인정해야만 한다. 나의 행복이 커질수록 타인이 불행해지는 이 기막힌 반비례의 모순은 충격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창업을 하고 회사를 유지시켜야만 한다. 악착같이 이윤을 축적해서 나와 직원들이 월급을 받아야 한다. 그 월급으로 아내는 장을 봐야 하고 아기의 기저귀를 사야 하며 직원들은 그들의 소중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이 극악하고 처절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 활동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창업자의 하루하루는 눈에 명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경쟁업체와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다. 그 아찔한 과정 속에서 싸움의 패자, 먹어야 할 피자 조각을 빼앗긴 어떤 이름 모를 기업은 서서히 굶어 죽어간다고 봐야 한다. 파란오이의 경우 3D 입체영상의 거품이 꺼진 후 경쟁하던 소기업들이 옆에서 도산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회사를 만들고 생존하기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목격한 이 냉혹한 상황들은 내가 창업 7년 차를 통과하면서 겨우 알게 된 진실이었다.




회사의 본질 - 낭만성


2015년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에세이다. 저자는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빵집을 하는 자영업자다. 그는 자그만 빵집 운영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는 독창적인 발상을 적용한 자신만의 사례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핵심은 빵을 만들기 위해 부패하는 균처럼 자본도 멈추지 않고 다양하게 순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빵집을 운영하면서 기업행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이윤의 극대화를 포기하고 되려 최소화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뺨이 얼얼해있던 나는 따뜻한 허브차 한잔과도 같은 온기를 느꼈다. "기업도 대표의 뚜렷한 주관이 있다면 이런 따뜻한 회사가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골빵집 주인 이타루의 이상과 달리 대부분의 회사는 낭만성을 순수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글의 서두에서 회사의 냉혹한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멋지고 환상적인 일터 즉 낭만성의 기업이 갖는 본질과 냉혹함과 낭만성의 시소 위에서 대표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회사 경영과 관련하여 최근에 이슈가 된 것 중 하나는 ‘착한 회사’라는 것이다. 한국에도 몇 개의 IT계열 중소기업이 대표적인 착한 회사로 소개된 적도 있고, 내가 아는 대표적인 착한 회사 중에는 일본의 ‘미라이공업’이라는 중견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한국의 방송에도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는 직원들에게 연가휴가 140일, 정년 70년, 야근 금지를 보장했다. 미라이공업을 아는 사람들은 이 곳이 ‘회사들의 유토피아’, ‘샐러리맨의 천국’이라 묘사한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꼽는 구글도 선한 이미지로 유명하다. 정말 순하고 착한 회사라 그런지 실제 이 회사의 모토는 ‘사악해지지 말자’다. 멋지고 안락한 사무실, 일급 셰프가 요리하는 맛있는 점심, 다양하고 풍부한 복지혜택으로 유명한 이 회사는 전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고 있다. 취준생들은 당연히 이런 회사들에 입사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소기업의 대표들도 대부분 이런 회사들을 꿈꾼다. 나도 이런 회사들의 사례를 바라보면서 내심 부러움이 생겼다. 나도 회사가 커지면 반드시 이렇게 회사를 운영하리라 마음먹었다.     


기업의 냉혹한 행위들에 달콤한 설탕을 풀어 물타기를 하고 이를 통해 낭만성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 회사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정치행위를 구사하는 것은 아닐까?      

낭만성의 이면


그런데 연식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자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못된 청개구리 심보가 싹을 틔우고 의심병이 발동했다. 대다수의 창업자들과 샐러리맨들이 이런 착한 회사들을 동경하는 이 시점에서 잠시 민망한 훼방을 놓겠다. 우리가 이런 회사들을 꿈꾸기 이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회사가 지닌 낭만성의 기저에도 역시 회사 행위의 본질적 가치 즉 이윤추구가 교묘히 숨어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따분할 정도의 전통적인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일반적인 회사들과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말 그대로 이윤추구의 방식이 매우 교묘하다는 데 있다. 기업의 냉혹한 행위들에 달콤한 설탕을 풀어 물타기를 하고 이를 통해 낭만성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 회사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정치행위를 구사하는 것은 아닐까?      


미라이공업의 경우 직원들을 우대하는 직장문화를 만들고 다양하고 풍부한 복지혜택을 주는 것을 중요하시지만 사실 복지 자체에 회사 경영의 목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미라이공업의 주된 제품들은 첨단기술에 기반한 생산과정에서 탄생되는 것들이 아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생산직이고 이들의 업무는 원자재의 가공이나 부품 조립 형태의 단순 반복적인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직원들이 일을 하다 보면 일에 대한 매력이 급속하게 떨어질 수 있고 매너리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이러한 노동 생산성의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미라이공업은 높은 대기업 수준의 연봉, 해외여행 같은 복지 당근을 직원들에게 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높여 회사를 존속시키는 것이 미라이공업의 핵심적인 경영전략이라 할 수 없다. 회사가 지속하려면 이윤을 만들어야 하는데 미라이공업은 그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직원들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피해를 보는 이들도 생겼다. 미라이공업은 신입사원을 좀처럼 많이 뽑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기존 직원에 대해 종신에 가까운 고용정책과 재직년수 때문이다. 나이 50이 넘은 직원들이 바글바글한 터라 이 곳에 입사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업무방식과 복지혜택은 그 자체로 회사의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직원들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고 업무효율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구글이 이윤을 창출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블레이드 러너에서 묘사된 타이렐 기업과도 같은 엄청난 초다국적 기업을 완성하려면 엄청난 이윤이 축적되어야 할 텐데 그 이윤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현재의 경영방침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라는 유명한 모토 안에는 ‘(사악해지지 말자), 고로 돈을 번다’라는 문장 하나가 사실 숨어있는 것이다. 구글이 구글만의 경영정책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과정은 겉보기에는 매우 평화롭다. 칭기즈칸처럼 전 세계에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정복지를 피로 물들인 것처럼 공격적인 경영을 하는 것보다 지구인들을 사로잡는 크고 작은 경영상의 낭만적 행위들이 세계에 구글 제국을 전 세계 방방곡곡에 건설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전략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제국이 건설되는 와중에 야후,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같은 경쟁자들이 사라져갔갔고 야금야금 야금야금 먹어치운 파이가 이제는 혼자 모든 양을 먹는 것이 가능해진 일종의 독점구조가 되어버렸다.      


최근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 카레 등을 만드는 오뚜기가 비정규직을 최소화하고 하청업체에 갑질을 하지 않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네티즌들은 이런 오뚜기의 경영을 갓뚜기라고 부를 정도다. 그런데 나는 오뚜기 관련 기사를 읽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외면 상으로 선해 보이는 몇 개의 행위들 그 자체가 오뚜기의 본질이 아니다. 오뚜기 경영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오고 회사를 존속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포장된 낭만의 회사를 만들기 위해 발생하는 부작용들도 있다. 나는 그것을 낭만성의 효율화가 낳은 비극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연봉과 복지를 온전히 보존하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고심하다 보면 쉬운 해결책으로 아웃소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하청기업 직원의 임금은 발주를 준 직원 연봉의 1/2, 1/4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 애플의 엄청난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이 직원들에게 월평균 임금 400달러를 주는 아웃소싱 업체 폭스콘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풍부한 복지와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이 3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며 주말마다 외식을 하고 1년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동안 하청기업의 노동자는 전셋집을 전전하며 힘들고 빠듯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에겐 희극이지만 희극을 만들고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다른 이에겐 비극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람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냉혹함과 낭만성의 시소 위에서

 

창업자가 자본주의 화신인 회사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그다음으로 냉혹함과 낭만성 시소 사이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람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다. 우리는 적절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 남의 피자를 뜯긴 하지만 허기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만 뜯어가는 것에 회사의 목표를 잡는다면 적어도 괴물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의 시골빵집 주인 이타루가 추구한 최저의 이윤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다양하고 복잡한 성격을 지닌 현대의 회사들, 소기업, 스타트업에도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 오히려 지속 가능한 소기업, 가늘고 길게 가는 스타트업을 만들려면 모두가 납득이 가는 적절한 이윤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설령 적절한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회사 운영이 잘못되어 망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괴물은 되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만 이로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도덕을 교란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특정한 가치가 아닌 단지 이윤의 극대화가 회사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스타트업을 운영할 자격이 없다. 저잣거리의 장삿꾼처럼 단지 눈 앞의 이익만을 쫒는 창업자라면 공생을 통한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자 하는 스타트업의 근본정신과는 애당초 궁합이 맞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방식의 회사운영은 오히려 회사를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장자가 겪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루는 밤나무 길을 걸었다. 밤나무에 앉은 커다란 새 한마리를 발견했다. 커다란 새 옆에는 매미가 한 마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새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옆에 사마귀 한마리가 있었다. 알고보니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고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를 잡아보려고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곰 한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후 나는 몇개월간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장자 외편, 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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