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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Feb 01. 2018

창업자금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창업자금의 세 가지 방법


창업 준비 막바지가 한창이었던 2011년 8월 말, 수중에 있던 통장들을 정리하고 예금을 한계좌로 모았다. 마지막으로 통장에 찍힌 잔고를 살펴보았다. 0의 개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한번 더 0의 개수를 세보았다. 역시나 같았다. "그깟 0이 뭐라고 더도 말고 0이 하나면 더 있으면 좋으련만" 더 이상 숫자가 늘지 않았다. 2,000만 원. 내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의 전부였고 이 돈은 고스란히 창업자금으로 부어졌다.     


열 손가락 중에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창업 역시 모든 과정이 다 소중하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우선순위는 있는 것 같다. 자동차가 구동을 하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은 창업을 추동하는 기름 역할을 하는 장사 밑천 즉 창업 자금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창업은 동업자나 사무실이 없어도 심지어 돈을 벌고자 하는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도 일단 시작은 할 수 있다. 법인 등기 같은 복잡한 절차도 일단 뒤로 미뤄놓고 시작해도 된다. 그런데 창업의 구성요소 중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창업자금이다. 물론 최근에는 무자본 창업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일단 사업 아이템만 있으면 무일푼으로 창업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템을 실현화시키려면 역시 자금이 들어간다. 인풋을 넣지 않았는데 아웃풋을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자가충당하기


그렇다면 창업자금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자가 충당 즉 창업자가 스스로 사재를 터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 창업과 관련된 정부기관의 창업지원금도 창업자금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세 번째, 은행 같은 금융권에 대출을 받는 방법도 있다. 우선 자가 충당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가 충당은 다시 여러 가지의 종류로 나뉜다. 창업하기 전에 기존에 다니던 회사의 월급 일부를 적금으로 차곡차곡 붓던 것을 깨서 창업자금으로 만드는 것이 자가충당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창업자금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나는 창업이 아니라면 뒤돌아 보지 않겠다.”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배수의 진을 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던 기존 아파트를 팔고 평수를 줄여 이사를 간 후 그 차액을 창업에 투자하는 이도 봤다. 이 경우도 창업자가 보유한 자산 일부를 창업자금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업자금은 아니지만 다른 유사한 예로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장편 독립영화를 찍겠어보겠다고 전세금, 보증금을 빼는 경우를 몇 번 봤다. 그렇게 고생해서 어디 해외영화제도 나가고 영화제 개막식 포토존에서 서서 기자들 카메라 플래시도 받고 나아가 비평계의 주목도 받고 궁극적으로는 충무로 메인스트림으로 점프해서 CJ나 롯데의 투자를 받아서 장편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거듭나면 좋으련만,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기는커녕 영화제 예심에서 연거푸 떨어지고 영화를 보여줄 채널도 마땅치 않게 되면서 영화가 점차 생명력을 잃게 되고 결국 사장되는 운명을 밟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흥행에 성공하거나 비평계에 주목을 받는 영화가 열에 둘은 될까 싶을 정도로 성공사례는 드물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창업도 그렇다. 냉정하게 말해 성공할 확률이 낮다. 창업하기 전의 나는 밑천이 변변치 않았다. 일 년에 연봉이 1,000만 원이 채 못 되는 이들이 수두룩한 영화판에서 일을 했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지 2년밖에 안된 시점이니 수중에 모아놓은 돈이 얼마나 있었겠나? 2009년 대학원을 졸업 후 대학 강의도 다니고 3D 콘텐츠 제작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진행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아둔 것을 꼽아보니 그나마 그럭저럭 2,0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2011년 창업을 한 해에 한국 나이로 서른세 살이 되었는데 전재산이 2,000만 원이었던 것이다. 창업자금으로는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돈이다. 당시 나는 미혼에 30대 초반 꽃다운 청년시절이라 중형차도 사고 해외여행도 수시로 나가고 하면서 욜로족마냥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돈을 쓰던 시점이었다.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축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도 들었지만 수중에 들어있는 현재의 돈이 나의 창업자금이니 그 현실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창업자금의 유형 중 아버지의 퇴직금, 어머니의 쌈짓돈, 형제자매가 돈을 빌려준 경우,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친한 측근, 지인의 투자 등도 자가 충당의 성격을 지닌다. 내 경우에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고맙게도 창업에 보태 쓰라며 500만 원을 줘서 감사히 사무실 보증금에 집어넣었다.


부모님의 돈을 빌린 창업은 정말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집에 여윳돈이 많거나 금수저로 태어나서 아낌없이 몇억을 쉽게 자식에게 내줄 수 있는 집이 아니면 솔직히 부모님의 돈을 빌려 창업을 하는 것은 정말 권하고 싶지 않다. 생각해보자. 사실 그 목돈은 본래 창업자금이 아닌 부모님이 노후자금이나 혹은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한 것일 확률이 크다. 그 와중에 자식이 창업을 하겠다고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아낌없이 쌈짓돈을 내놓은 것이다.     


창업은 냉혹한 현실이다. 창업은 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창업을 하고 2년이 지난 후에도 회사가 망하지 않고 존속할 확률이 통계적으로 30%가 되지 않는 도박장이 바로 창업계다. 자식에게 보태준 자금이 유용하게 쓰여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가 망해버리면 자식 잘 되라고 선뜻 내놓은 그 거금은 휘발될 확률이 높다. 이윤이 났을 때 그것이 본래 누구의 투자금에서 창출된 것인지 냉정하게 따지는 곳이 회사지만 정작 회사가 망해버리면 그 돈이 사실 누구의 것이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곳도 회사다.  


결혼할 때 부모님이 신혼집 구하는데 보태 쓰라고 주는 목돈은 고스란히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에 돈이 날아갈 위험이 없는 안전자산이다. 반면 창업자금으로 내놓은 돈은 주식투자처럼 정말 본전도 못 찾고 날아갈 수 있는 고위험 투자다. (생각해보니 법인 형태의 창업은 창업자금이 주식 형태로 전환된 자본금으로 쓰이니 정말 주식투자가 맞겠다) 창업해서 일이 잘 풀리면 나도 좋고 투자한 부모님도 기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보자.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기에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이만저만 태산인 부모님은 자식이 창업자금을 다 까먹고 망해버리면 속이 심지처럼 타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다. 노후대비를 하려고 준비한 목돈이 없어졌기 때문에 부모님이 앞으로 노후생활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훗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식이 하는 일에 아낌없이 자신들의 통장을 내놓으신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그런 분들이다.     


부모님의 지원을 원칙적으로 안 받는 것이 당연히 최고다. 받더라도 부담이 적은 금액만 받는 게 낫다. 그래야 망하더라도 심적으로 고생이 덜하고 빠른 시간 안에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다. 물론 수억의 투자금이 들어가야만 진행가능한 창업이 있다. 보통 생산시설, 원자재 등의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한 제조업 기반의 창업은 많은 투자금이 들어간다. 프랜차이즈 기반의 자영업도 인테리어나 사업장이 필요하니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금만큼은 보수적인 내 사고방식에 비춰보건대, 수억 단위의 초기 투자금이 들어가야만 하는 창업은 본래 그 정도의 밑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맞다. 도박장과도 같은 창업계에서 가족의 전재산을 무리하게 베팅하는 것은 본인과 부모님, 주변인 모두를 헬조선으로 가는 지름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수억의 밑천이 필요한 창업이라면 차라리 창업하지 말고 그냥 기존에 다니던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것이 낫다는 게 내 판단이다. 더구나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지식서비스 기반의 창업 즉 IT, 디지털 콘텐츠 분야의 창업이라면 억 단위의 창업자금은 불필요하다. 물론 예외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인이 금수저라면 부모님의 투자를 끌어와서 제대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준 돈이 다른 이유는?

형제자매에게서 자금지원을 받는 것도 자가 충당이라 볼 수 있다. 보통 형제자매의 경우 비슷한 또래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수천, 수억이 되는 목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기에 소액투자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경우 부담 없이 형, 동생에게 투자를 권유할 수도 있다. 반면 수천만 원 이상을 투자받는 경우라면 받기 전에 곰곰이 잘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아낌없이 돈을 퍼주는 부모와는 다른 관점에서 형제자매를 이해해야 한다. 친동생을 설득해 구슬려서 동생이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 잡고 몇천만 원을 형의 창업에 투자했다고 치자. 회사가 창업에 성공해서 이윤이 나는 회사가 되면 좋으련만 창업에 실패해서 회사가 망하면 그 돈도 없어질 확률이 크다. 내가 보고 들은 주변 사례를 하나 이야기하겠다.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다들 비슷한 직간접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인에게 결혼한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 동생이 형에게 카페 창업에 보태 쓰라고 수천만 원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업수완이 변변치 못해서 1년도 못가 장사를 접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동생은 아내, 즉 제수씨와 사네, 못 사네 하면서 서로 이혼도장을 찍고 말았다. 당연히 가정불화의 여파가 형에게도 미쳤다. 동생의 이혼 후 형과 동생은 크게 다투었고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평생 얼굴도 보지 않겠다며 갈라져 살고 있다. 선뜻 돈을 내어줄 수 있는 부모님과 달리 저마다 독립적인 삶을 꾸리고 있는 형제자매의 투자는 만약 투자가 크게 실패할 경우 짊어질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배우자나 자식 등 그들이 독자적으로 보유한 사회관계망이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투자의 실패가 연쇄작용이 되어 형제의 가정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지인의 투자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잘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지만 회사가 망해버리면 사이가 소원해지게 마련이다. 돈을 빌려준 이는 내 돈을 사업에 제대로 쓴 것이 맞냐고 따질 것이고 창업자는 왜 나를 못 믿냐고 하소연할 것이다. 소원해지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다툼이 커지면 회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책임소재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고 소송건으로 진행되면서 창업자와 지인이 법원을 드나드는 상황으로 발전해버린다.   


물론 창업자금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에 있어 정답은 없다. 주식투자를 할 때 단순히 자기 돈만 가지고 하는 것보다 신용대출까지 들어가고 레버리지를 크게 올려야 주가가 올랐을 때 큰 돈을 버는 것처럼 창업자금도 마찬가지다. 대자본을 투자한 하이리스크가 성공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하이리턴이 돌아온다. 사람마다 각자 창업자금에 대해 생각하는 지점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창업에 실패한 이가 재도전을 하기에 한국의 창업여건이 여전히 척박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대보증으로 인해 금융거래 상의 불이익을 받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다시 회사를 한다고 해도 회사 운영에 행정상의 규제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리스타트업을 꿈꾸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도박판에 들어가 전재산을 베팅할 정도의 배짱은 없는 것 같다.   


     




정부지원금으로 창업하기


모아놓은 돈이 변변치 않다면 정부지원금과 대출금으로도 창업할 수 있다. 우선 정부지원금부터 살펴보자.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경제 어젠다로 잡은 문재인 정부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금의 정부는 청와대 안에 상황판까지 만들어놓으며 창업에 사활을 건 상황이다. 정부가 창업에 올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큰 효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업의 활성화는 침체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놓고 산업을 혁신시켜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창업은 여러모로 국가에 큰 도움이 된다. 1980년대 일본에 최강대국 위치를 위협받던 미국이 실리콘 밸리를 동력삼아 압도적인 경제력을 재창출한 근거와 창업 선진국이라는 이스라엘, 핀란드의 성공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이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도 창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창업과 일자리 분야는 여야,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집권했던 과거의 모든 정권이 실리콘 밸리의 창업모델을 한국에 이식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예 창업만을 전담하는 기관인 창업진흥원이 만들어졌고 예비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쓰일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창업자금 전용기금을 별도로 조성했다.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아래 사이트에 가면 정부차원에서 진행하는 창업지원과 관련된 풍부한 정보들을 살펴볼 수 있다.     


http://www.k-startup.go.kr     


K스타트업은 창업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관인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창업관련 포털이다.


이외에도 창업과 관련이 큰 부서인 중소기업벤처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도 산하기관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창업자금제도를 운용하며 창업자를 지원하고 있다.      



창업자금 중에 가장 땡큐는 당연히 정부지원금이지만...

창업자금 중에 가장 땡큐는 당연히 정부지원금이다. 창업자가 정부지원금을 받았다면 적금을 깨지 않아도 되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의 노후자금을 빌렸다고 마음속으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갚아야 할 의무도 없고 회사가 망했다고 변제할 이유도 없다. 창업자 입장에서 가장 해피하게 회사를 시작하는 상황이 바로 정부지원금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은 건 남들도 다 안다. 정부지원금이 해피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돈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나랏돈이 눈먼 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옛날 말이다. 이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적게는 수대 일 많게는 수십대 일의 지원사업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창업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별도의 사업계획서, 제안서를 써야 하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스티브 잡스 마냥 PT도 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사업계획서가 부실하거나 창업자가 창업을 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창업자 면전에서 부정적인 멘트를 속사포로 날린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는 수모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자 어쨌든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정부지원금을 받았다고 치자.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을 걷어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공공자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창업자가 사적으로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고 자금이 정상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언제든 투명하게 내용을 공개할 의무가 있다. 쉽게 말해 자금을 지원한 기관에서 “지금 우리가 준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라고 요구하면 깨끗하게 통장정리를 해서 집행 증빙서류와 함께 기관 담당자들에게 완전히 까야만 한다. 또 자금의 집행과정 자체와 방식도 까다로워서 창업에 소요된 비용들이 모두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인정이 가능한 돈과 불인정되는 돈으로 구분이 된다. 비용을 지출했으면 일일이 신고도 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2017년 도입된 <E나라도움>은 정부가 지원금의 집행을 통제하고 업체의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집행내역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일종의 1984의 빅브라더다. 정부지원금의 일부는 반드시 E나라도움을 사용해야만 집행이 가능하다. E나라도움이라는 빅브라더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신 분은 아래 사이트를 살펴보시라.     


http://www.gosims.go.kr     


이럴 바엔 내가 내 돈으로 사업하고 말지...

사업을 하다 보면 다양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발생하고 그런 일들에 당연히 돈이 나갈 텐데 정부지원금의 경우 애당초 사업계획서에 정해놓은 항목에만 자금이 집행되게끔 하다 보니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갑갑한 게 아니다. 다른 항목으로 돈을 전용해서 쓰려면 사전에 변경 신청을 해야 하고 또 사업자금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페이퍼 워크가 만만히 않아서 내가 아는 어떤 회사는 아예 정부지원금 집행을 전담하는 직원을 채용할 정도다. 또 해당부서의 담당자들 중에는 공무원의 특성상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라 이럴 바에는 "내가 내 돈으로 사업하고 말지"하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하는 창업자들도 여럿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금을 가지고 창업을 하는 것은 매우 해피한 경우다. 그러나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다. 나도 창업 초기 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정부사업에 두 차례 지원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금은 스타트업 창업자금 지원의 기준이 되는 창업일 기준 3년 미만을 넘어버리면서 결국 정부지원금 성격의 창업자금과는 영원히 바이 바이를 하고 말았다.     



금융권 대출로 창업자금 만들기


은행 같은 금융권을 통해 대출을 받아 창업자금을 만들 수도 있다. 대출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누군가 입보, 즉 보증을 서야 한다. 한 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신용불량자가 된 어느 연예인의 예능프로그램 웃음 소재로 활용되는 그 악명 높은 보증 말이다. 보증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대출을 받는 방식이 나뉜다. 우선 창업자가 은행에 가서 직접 대출을 받는 경우 당연히 창업자가 연대보증을 서야 한다. 창업자가 통장잔고 같은 금융자산이나 아파트나 상가건물 형태의 부동산 같은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해당 재산을 담보 잡힌 채 보증을 선다. 은행은 창업자에게 웃으면서 돈을 빌려주지만 자칫 회사가 망하고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조울증 환자처럼 돌변해서 금융자산을 차압하거나 부동산을 법원 경매에 넘겨버리는 채권추심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다.     


대표가 20~30대 젊은 청년이라면 보증을 서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수억의 금융자산이나 아파트 같은 부동산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대출받아서 창업도 못한단 말인가?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부는 창업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드라이브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보증지원기관의 지원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우리가 신보라고 부르는 신용보증기금이나 기보라고 부르는 기술보증기금이 개인을 대신해 금융권에 보증을 서주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나도 받았다. 나는 청년창업 활성화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만 39세 미만의 창업자들에게만 가능한 보증상품인 청년창업 특례보증이라는 것을 신용보증기금에서 받았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섰기 때문에 은행은 3천만 원을 순순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주었다. 수중에 가진 2,000만 원과 3,000만 원, 동생이 준 500만 원이 더해져 5,500만 원의 창업자금이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보증기금을 통한 대출도 받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우선 보증지원기관에 전화를 해서 심사관과 상담예약을 잡은 후 방문해야 한다. 기관에 들어서면 직원들의 무표정한 모습과 금융기관 특유의 단조로운 사무실 분위기에 숨이 딱 막힌다. 그런데 대출이라도 받아서 창업을 해보겠다고 나 같은 신세의 사람들이 줄지어 상담을 하는 뒷모습을 보고선 갑갑함은 곧바로 동병상련의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상담해야 할 사람들이 나 말고도 줄지어 있기 때문에 상담은 대충 10분 미만으로 끝난다. 심사관은 보통 "돈을 얼마나 쓰려고 하세요? 어디 어디에 돈을 쓰려고 하세요? 창업해서 하시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을 던진다. 상담은 찰나지만 이후로는 영겁의 시간 같은 기나긴 심사절차가 들어간다. 우선 사업계획과 자기소개가 담긴 평가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창업자가 사업에 대한 구체성이 있는지, 연간 매출 계획은 무엇인지, 창업에 대한 역량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창업과 관련된 공부와 경력, 유통망과 거래처, 마케팅 계획 등등 수십 페이지가 되는 내용을 직접 작성해야 한다. 작성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 혼자 투덜투덜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과정이 이해가 갔다. 채권자가 돈을 꿔주려면 이 사람이 꿔 간 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아봐야 하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계획하는 일이 무엇인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서류 검토가 끝나서 1차 승인이 되었다면 담당 심사관과 미팅 약속을 잡는다. 심사관은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 실사평가를 진행한다. 창업자는 사무실을 방문한 심사관에게 자신과 회사를 최대한 어필해야 한다. 내 경우 심사관에게 직접 3D 안경도 씌워주고 그동안 제작한 콘텐츠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관련 분야를 쓴 책도 언급하며 잘 보이려고 최대한 애를 썼다. 보증기관과 상담예약을 잡고 서류평가, 실사 방문, 최종 보증승인을 받은 후 실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까지는 넉넉잡아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나 말고도 창업자금에 목을 맨 이들이 줄줄이 대기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지난한지라 보증처리와 대출을 받아준답시고 이 과정을 대행해 뜯어먹고 사는 브로커 업체들도 존재한다.     


창업이 엄청 힘든 건데 그냥 삼성 같은데 들어가서
편하게 일하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심사관이 실사를 마친 후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 이쪽 경력도 다양하고 책도 쓰시고 대학원에서 이 분야 공부도 하셨는데 왜 삼성 같은 데 안 들어가셨어요? 창업이 엄청 힘든 건데 그냥 삼성 같은데 들어가서 편하게 일하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심사관의 질문은 진짜 대기업에 들어가 취업하라는 말은 아니고 단지 오고 가는 빈 말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창업을 하려고 돈을 빌리자는 건데 되려 취업을 권유하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어쨌든 이자율도 2~3%로 상대적으로 낮고, 망하지 않고 사업만 진행한다면 상환기간을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금융권 대출보다는 한결 숨통이 트이는 돈이다. 그렇지만 이 돈 역시 정부지원금은 아니기에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돈이다. 만약 대출을 해야 한다면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반면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서툴거나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이 보증기관에서 지원하는 분야와 무관하다면 어쩔 수 없이 은행이나 신용금고 같은 금용기관을 방문해 개인신용이나 담보를 잡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돈은 이자율도 높고 상환기간도 분명해서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신용보증기관을 거치든, 금융기관을 직접 방문해서 진행한 것이든 대출 자체는 등에 무거운 짐을 하나 짊어지고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상환의 부담이 아예 없는 자가 충당이나 정부지원금이 아닌 반드시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중한 부담감이 되려 책임감으로 바뀌면서 어떻게든 회사를 진행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아니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자기 위안을 해보자.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하다. 회사가 잘되어서 대출금을 일부라도 먼저 상환하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나위 없이 크다는 것!



고정비용을 통제하자


창업 초기 창업자금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별로 얼마가 고정비용으로 나가는지 즉 현금의 흐름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각했던 금액 이상으로 나가는 것을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 창업자금으로 확보한 1억 원이 통장에 들어있더라고 하더라도 그 돈은 수개월이 지나면 벌써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창업 초기에는 아래와 같은 비용들이 고정비용 등을 지출되는데 아래 표에 적힌 비용은 내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모아 대략 적어본 것이다.


3명 정도의 소규모 스타트업의 매월 고정지출 비용은 대충 이정도 안팎일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고정비용이 매달 발생한다면 1억이라는 창업자금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10개월이면 '엥꼬'가 된다. 고정비용 이 외에도 예측하지 못한 돈들이 수시로 통장을 스쳐서 빠져나간다.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홈페이지, 회사 카탈로그 제작비용 같은 것들도 발생할 것이다. 작업에 필요한 노트북도 사야 하고 사무실을 얻었다면 책상이나 의자 같은 사무용 가구도 사서 넣어야 한다. 동영상을 제작해야 하는 일이라면 카메라 같은 장비를 렌털하고 장비를 다룰 수 있는 프리랜서 인력비용이 나갈 것이다. 또 프로그래밍 개발 형태의 작업을 진행하는데 개발자가 내부에 없다면 협력업체로 외주비용이 발생할 테고 클라이언트가 지방에 있다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출장비가 나갈 것이다. 창업자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업자금을 만들었다면 현금흐름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불필요한 비용들을 틀어막아 창업자금이 소진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창업자의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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