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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Oct 08. 2023

[住] 슈퍼마켓

주(住)에 대하여

  우리 집 앞에는 슈퍼마켓이 있다(이하 '슈퍼'). 슈퍼의 2층과 3층은 슈퍼 아주머니의 가족이 지냈다. 그때는 24시간 항상 문을 열고, 물건을 판매하는 편의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슈퍼는 언제 열고, 닫는 약손된 시간이 없었다.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싶은 시간에 문을 열어 장사를 했다. 때로는 늦게 문을 열어 닫쳐 있는 유리문을 두드렸다. 유리문을 두드리며, "아주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2층에서 내려와 가게 문을 열고 물건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문을 열면, 가게 앞 커피 자판기 옆에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앉아 있으셨다. 하루 종일 CCTV처럼 슈퍼 사거리 앞에서 오고 가는 이웃의 안부를 물었다. 슈퍼 아주머니는 지루하게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문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늦은 밤 10시에 집을 나섰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살으셨다. 낮에는 퇴근하고 잠만 주무셨다. 그렇게 하교를 하고 와도 자고 있는 아버지는 저녁을 먹을 때야 일어나셨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는 서둘러 출근을 하셨다. 깨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저녁시간이 전부였다. 그렇게 늦은 밤 출근하기 5분 전에 항상 내 손에 만원을 쥐어주셨다. 그러면, 그 만원을 받아 들고 동생과 집 앞 슈퍼로 달려갔다. 잠옷 바람에 달려 나간 슈퍼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 왔다. 주로 나는 닭다리 과자를 집었고, 동생은 미쯔를 집었다. 그 외에도 양손 가득 군것질 거리를 집었다. 아마도 슈퍼 아주머니는 밤 10시가 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마 9시부터 잠옷을 입고 뛰어오는 남매를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를 반겨줬기 때문이다. 얼마나 반가웠을까.


  작은 손으로 잔뜩 군것질 거리를 사도 3,000원을 넘기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출근 전 마시던 삼각 커피우유는 고작 250원이었다. 슈퍼에서 한 껏 사냥하고 돌아온 남매는 부풀어진 잔돈을 어머니 손에 쥐어 줬다. 나는 과자가 있으니 더 이상 이 잔돈은 필요 없다고. 아마 만원에서 줄어든 잔돈을 생활비로 쓰셨을 것이다.


  하루는 동생과 작정하고 그 만원을 다 쓰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군것질 거리를 만원 어치를 사 온 날 아버지는 놀라셨다. 그 돈을 다 썼느냐고. 어머니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두 분의 놀란 표정을 커피 우유와 과자로 가려드렸다. 눈치 빠른 동생 덕에 그 뒤로는 만원을 꾹꾹 채워 군것질 거리를 사 오지 않았다. 군것질 거리를 많이 사 왔다고 혼나지는 않았지만, 무언의 약속이 그날 밤 오고 갔다. 잔돈은 어머니에게 꼭꼭 찔러 주겠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슈퍼에서 사 온 250원짜리 삼각 커피우유를 마시고 출근을 했다. 마지막 전철을 타고 가서 한두 시간 비릿한 곳에서 기다렸다 일을 시작하셨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출근하러 가기 전 안 주머니에서 꺼내 주던 비릿한 만 원을 기다렸을 뿐. 아버지에게는 의식이었을까. 내일도 내가 사다 주는 커피 우유를 마시기 위한.


  아버지는 비릿한 향을 머금고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셨다. 그것도 남들이 출근할 시간. 아침의 지하철은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가히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그 지옥 속에서. 비릿한 향을 머금고 돌아와도 낮에는 잠만 자는 잠만보 아버지에 불과했다. 그때는 꼬깃한 만원에서 나는 비린, 돈의 냄새를 몰랐다.


  지금은 커피 우유를 찾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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