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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Oct 08. 2023

[衣] 갈색 점퍼

의(衣)에 대하여

  가을옷을 꺼내려 옷장을 보다, 웃음이 났다.


  '아나바다' 요즘도 '아나바다 운동'이라는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떼의 그 시절, 그때는 중고거래 플랫폼이 없었다. 지역 사회도 거들어 중고물품을 나누는 운동을 장려했다. 때문에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중고 물품을 나누는 바자회를 열었다. 그렇게 나는 갈색 점퍼를 만났다.


  갈색 점퍼는 중학교 바자회에서 만났다. 학교 체육관에 파란색으로 된 천막을 빼곡하게 깔고는 그 위에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옷이나 잡동사니를 앞에 널어놓고, 판매를 했다. A4용지에 천 원, 이천 원 적어놓고, 안 입는 옷이라던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책 그리고 게임 CD 등이 놓여 있었다.


  바자회를 핑계로 평소 받던 용돈보다 조금 더 얹어 넉넉하게 주머니를 채워 갔다. 대부분의 물품들은 오천 원을 넘지 않았다. 중고 물품이다 보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도, 싼 가격에 여러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갈색 점퍼는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한창 초콜릿 색에 빠져, 컨퍼스 운동화 색도 갈색으로 신고 다니던 때였다. 그렇게 운명처럼 이천 원을 주고 사온 갈색 점퍼는 아빠옷을 물려 입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 후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잘 입고 다녔다. 대학생이 되며 아빠옷을 물려 입은 모양새가 부끄러워 더 이성 찾지 않게 되었다.


  십여 년이 흘러 옷장에서 만난 갈색 점퍼는 반가웠다. 아직 살아 있었다. 내 옷 장 속에서. 이제는 제법 아빠옷을 물려 입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맞지 않던 옷이 제법 어울렸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어려 산 옷이 이제 맞는 듯했다. 이 옷 값이 이천 원이라는 것에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이천 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탕후루만 해도 삼천 원이 훌쩍 넘는데.


  그동안 스쳐 지나간 옷 중, 오랫동안 옷장에 남아 있던 것을 생각하니 반가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번 가을은 갈색 점퍼를 입을 거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갈색 점퍼에서 낙엽 향이 났다. 나는 낙엽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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