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2023
아주 오래전 기억인데도 생생한 것들이 간혹 있다. 어릴 적 처음으로 엄마와 치과에 갔던 기억이다. 이가 아파서 갔던 건지, 유치를 빼지 못해 덧니가 자라 이를 빼러 갔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진료받으며 의사 선생님, 엄마, 간호사 언니와 실랑이했던 것만 기억난다. 너무 무서웠고 아파서 엄청 울었던 것, 그리고 울면서 발길질하던 거, 엄마와 간호사 언니 손을 뿌리치며 땡강 부리던 꼬마가 기억에 있다. 간혹 엄마가 웃으며 그 얘기를 하곤 하셨다. 의사 선생님을 막 발로 차고 해서, 이런 아이는 처음 본다며 무슨 이런 아이를 병원에 데려왔냐며 화를 냈다는…그 이후로 어른이 되어 내 발로 가기 전까지 치과는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치아 건강도 오복 중 하나라던데,.. 다행히 치아는 건강한 편인 듯하다. 어려서부터 충치도 없고 지금도 치아에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사실 성인이 되고도 치과에 정기적으로 가진 않았다. 치과 진료는 비싸고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치료가 한정적이라는 것도 있었고, 이가 아플 때에나 가는 곳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 후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긴 건 회사를 다니며 당연하게 가입한 치과 보험 때문이다. 미국은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탓에 직장에 다니면서 의료 관련 3가지 보험에 자연스레 가입하게 되었다. 일반 의료보험, 치과 보험, 안과 보험. 매월 돈이 나가는 상황이다 보니 보험에서 커버되는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고 정기적으로 치과에서 체크업을 받고 클리닝-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스케일링-을 받는 것은 무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아이의 유치 발치 역시 무료다. 무료라는데 보험료 내는 만큼은 챙겨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우선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걸 계기로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치과에 간다.
벌써 10년 넘게 치과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치과라는 곳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다. 주말에 진료 예약 확인 문자를 받은 후부터 가지 말까라는 유혹을 느꼈으니까. 그래도 스케줄대로 어제 치과에 다녀왔다. 역시 별다른 문제는 없단다. 단지 왼쪽 어금니에 금이 가 있는 것이 있는데 자면서 이를 앙 다물고 자는 습관 탓인 듯하단다. 당장 치료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통증이 느껴지면 치과에 와야 한다고… 취침 시에 마우스피스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마우스피스라니… 복서도 아니고, 게다가 잠잘 때 이에 무언가를 물고 과연 잠이 올 것인가 싶다. 그래도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면 고려는 해봐야겠지.
진료 의자가 눕혀지고 클리닝이 시작되면서 나도 모르게 양손을 모으고 긴장한다. 간혹 통증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도 잘 견뎠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치과 진료 역시 나를 돌보는 일이다. 치아도 내 몸과 같이 노화되고 있을 거고 잘 돌봐야 늙어서도 내 이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당분간은 치과에 갈 일은 없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