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의 기록
오랫동안 가계부를 써왔다. 특별히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자라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습관적으로 기록을 남겼다.
자본시장의 호황기였던 덕에 퇴사 후 1년간은 경제적인 걱정없이 시간을 보냈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라면 크게 무리없이 풍족한 은퇴생활을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공급망 이슈, 거기에 더해 코로나 극복을 위한 돈풀기 등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자본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내 자산도 그에 따라 줄어갔다. 거의 바닥에 다 와간다는 말이 들리면서 거의 30% 가량의 자산이 사라진 상태이다.(물론,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이 현실화 된 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이제 딸아이의 입시 준비가 시작되면서,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가고 있다. 학교 공부는 스스로 잘 해 나가고 있지만, Art-Design쪽을 고려하고 있는 딸아이가 미술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10학년에 들어오면서 시작하다보니 늦은 감이 있고, 덕분에 미술학원 수업을 늘려서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작년 말에 올해 예산을 항목별로 잡아두었는데, 다른 항목들은 예산을 넘어서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교육비는 이미 예산 초과이다.
딱히 파이어족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 적은 없으나, 이런 경제적인 상황 변화에 맞물려 은퇴 생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린 결론은 소비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최근 들어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거기에 한 몫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은 급여를 받아왔고, 수입의 증가에 맞춰 소비가 늘어갔다. 소비에 대해 특별히 경각심을 갖지 않았고, 원하는 것들을 구매하고 외식을 하고 여행을 다녔다. 은퇴를 결심한 상태이니, 자본소득 외에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생활할 수는 없는 거다. 생활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선, 가계부를 좀 더 꼼꼼히 체크했다. 월간 예산과 그에 맞춰 소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여보고,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월 결산과 반성도 해 나갔다.
식비/외식비: 외식은 최소로 하고, 장보기 전에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할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했다. $1,500까지 쓰던 비용을 현재 거의 $800-$900 사이로 유지하고 있다. 외식을 월 1-2회로 줄였고, 과자 대신에 과일을 사기로 했다. 세일 정보에 좀 더 민감해졌고, 한꺼번에 많이 구매하기 보다는 적정량을 구매하려고 노력 중이다.
미용관련: 색조 화장품은 퇴사 이후 구매한 적이 없고, 기초 화장품류도 스킨/수분크림만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Trader Joe's 에서 수분크림을 $9정도에 구매했는데 만족도가 높다. 굳이 비싼 화장품을 써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거기에 더해 염색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매월 $80정도 지출하던 미용실 비용도 절약하고 있다.
의복: 11월 현재까지, 청바지 하나와 면티 한 장을 구매했다. 이 부분도 사실 꼭 필요한 구매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옷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탓에 옷장에는 아직도 옷이 가득하고, 당분간은 옷 구매없이도 충분히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 많은 옷 중에서 주로 입는 옷은 정해져 있으니, 비워내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내년에는 한 벌도 구입하지 않는 걸 목표로 할 생각이다.
건강/운동: 헬스장을 그만 다니기로 했다. 워낙에 걷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5년 넘게 해 온 요가도 혼자 충분히 가능해 LA Fitness Subs를 해지했다. 대신 격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산책을 하고, 요가소년 유튜브를 보면서 1시간 가량의 요가를 하고 있다.
그 외에 장볼 때 할인상품을 구매한다거나, 대량 구매가 이익인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경우에는 코스트코를 이용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높아진 휘발유값을 감안해 외출을 자제하고 있고, 각 마트에서 제공하는 Reward App을 적극 활용해 적립금을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매에 앞서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구매하는 습관을 들여가고 있다.
너무 구두쇠가 되어 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주로 나를 위한 지출에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고 필요한 부분에는 적절하게 쓰고 있다.
소비습관의 변화만으로 모든 부분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렇더라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이라믿는다.
자본소득을 늘려갈 수 있도록 투자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과하게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줄여나갈 생각이다.
남들이 보는 나보다는, 내가 보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믿는다.
나를 위한 시간이 충분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은퇴생활이 될 수 있도록 하나씩 실천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