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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19. 2019

떠난 사람들

처음엔 많이도 울었다

서비스 오픈 준비를 할 당시에는 팀 규모가 기획, UX, 디자인, 개발까지 해서 20명이 넘었다. 그리고 만 4년을 채워가는 지금은 딱 그 절반 규모로 줄어있다. 새로 온 팀원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이 떠났다.

제각각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 한다. 어렴풋이 들은 바로, 누구는 더 이상 근무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떠났고, 누구는 이 서비스 또는 조직이 자기 계발과 역량 개발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떠났고, 누구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 떠났고, 누구는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하여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처음엔 많이도 울었다. 겸직 발령을 받아서 왔던 UX 설계 담당 엠버가 돌아갈 때는 회식자리에서 얼굴이 시뻘게질 만큼 울었다. 워낙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해줬던 사람이라 감정적인 아쉬움이 컸던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입사 후 최초로 같이 일하던 팀원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급작스럽게 밀려왔던 탓이다. 회사 사람은커녕 회사 밖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조차 노력하지 않는 나였는데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협업한 경험이 내겐 상당히 귀중했던 것 같다.

그 후에 떠난 사람들은 대개 개발자였다. 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아니, 자리를 잡는 게 가장 중요한 시기일수록 플랫폼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운영, 안정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프로모션 전략을 펼쳐나가기 마련이다. 필요한 개발 리소스의 절대량도 자연히 줄고, 새로운 언어와 실험적인 기술을 시도하거나 난이도 있는 미션을 수행할 기회 또한 줄어든다. 어설프게 손 비는 시간이 늘어나고 소소한 작업과 급한 CS 위주로 작업하다 보면 지금 하는 일들이 장기적으로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고민과 성과 평가에 대한 고민도 자연히 들 것이다. 나는 그들이 떠날 때마다 울었다. 눈물이 터졌다. 'OO에선 개발자가 할 일이 딱히 없어'라는 코멘트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못내 아쉽고 속상했다. 가장 많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상대들이었으니까 더 그랬다. 같이 남겨진 팀원들은 엉엉 우는 나더러 우스갯소리로 '나 갈 때 우는지 지켜볼 거야'라고들 했다.

입사 때부터 같은 팀에 있었던 기획자 티거는 회사를 떠나기 전에도, 떠날 때도, 떠난 후에도, 앞으로 내가 포털 기획자로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 나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한 사람의 IT 기획자로서,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오랜 시간 공들여 청사진을 그리던 티거는 시원섭섭한 얼굴로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엠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주 회사를 떠났다.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의 많은 팀원들과 이별하는 동안 누군가는 내게 '다른 데 갈만한 배짱도 없지?'와 같은 조롱을 하기도 했고, 간혹 팀 트랜스퍼나 이직을 권하기도 했다. 떠난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이유가 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지금의 팀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앞으로 할 수 있을 일에 대해 생각했다. 상위 전략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직에 적응하는 것, 낯선 팀원과의 합을 맞추는 것, 경험이 쌓일수록 새로이 요구되는 미션을 잘 수행하는 것 등등 이별과는 별개로 아직 할 일은 많고 배울 것도 많고 시도해야 할 것도 많았다.

이제 눈물샘은 꽤 이성적인 척 군다. 무뎌진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 꽤 견딜만하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다. '일'과 '팀원'을 정말 딱 그만큼으로 여길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여전히 함께 일하는 팀원이 개인의 역량개발과 커리어를 살펴서가 아니라, 서비스나 조직 또는 회사에 대한 기대를 잃어서 떠나려는 결심을 할 때 잠시나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 좋음'을 추구하는 이별이었으면 좋겠다. '나쁨'을 피하는 이별이 아니라.


오- 아무래도 아직은 맡고 있는 서비스나 속한 조직에 애정이 있나 보네, 나.




애인에게 '회사에서의 이별은 뭐가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그간 떠난 팀원들의 이름을 쭉 적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러면서 짓궂게 단체 사진 같은 거 찍은 적 없냐, 사진도 넣고 그 중에 누구 누구가 떠났다고 표시해라 이런 제안을 했다. 모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탈락자 사진을 흑백으로 노출한다는데 머릿속에 오버랩되면서 헛웃음이 터졌다.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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