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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18. 2018

조금 늦게 돌아보는 2017년

<100일 글쓰기> 1/100


얼레벌레 한 살 더 먹었으니까, 더 까먹기 전에 곱씹어 보는 2017년.



1. 건강

  나이를 몇 번 곱씹기도 전에 한 살 더 먹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 한 살 더 먹었으니 그래도 조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부쩍 나이를 타는 체력이 걱정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헬스장에 가는 거였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와 강인한 체력을 꿈꾸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껍데기만 그럴싸하고 속은 물러터진 의지로 4개월짜리 이용권을 끊었다. 트레이너들의 영업에 못 이겨 거금을 들여 PT도 16회나 끊었다. 4월까지 나름 죽을똥 살똥하면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점심 때 운동을 다녀온 날에는 급하게 물로만 헹궈서 온 몸에서 스스로가 더 찝찝해할만한 땀내가 났다.

  일과 운동, 운동과 일. 폭풍같은 4개월을 그래도 중도 포기 없이 버텨냈다. 이후엔 바쁘다는 핑계로 두 달여를 쉰 후 역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 학원에서 3회 체험 레슨을 받았다. 헬스를 할 때에 비해 근육이 붓거나 아픈 감도 없었고, 몸이 뻣뻣한데 속근육이 잘 붙는 몸인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월급으로는 택도 없는 수준의 투자를 해야만 할 수 있는 고급 트레이닝이라는 생각을 하자 내 결심은 껍데기마저 희미해졌다.

  운동은 그렇게 바이바이...


2. 면허

  꽤 오랫동안 나는 '면허도 없는 어른'이었다. 2016년 여름에 급하게 필기 시험과 기능 시험을 봤었다. 당시 기능 시험은 기어를 'D'로 놓고 50m 직진만 하면 다 붙는 그런 류였다. 기능 시험이 다시 어려워진다는 소식에 겁을 먹고 급하게 찾아갔던 거였다. 퍽 저렴한 학원비를 내고, 한 번 학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뜨겁고 눅눅한 여름을 헤치고 시험장에 찾아갔던 게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에는 '주행 연습' 딱지를 커다랗게 붙인 소형차를 끌고 빈 도로를 기었다. 우회전을 하는데도 보도에 올라갈랑 말랑 하는 나 때문에 동석했던 가족들은 모두 기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면허를 땄던 동생은 주행 연습 중에 접촉사고를 당했고, 덩달아 겁 먹은 나는 이런 저런 핑계로 남은 시험을 차일피일 미뤘다.

  연습 면허를 발급받고 만 1년, 결국 난 학원에서 도로주행 시수도 못 채웠고 연습 면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 어렵다는 기능 시험도 다시 봐야하는 것이다. (주위에선 오히려 잘 됐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쉽게 면허 따서 도로의 무법자가 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3. 이사

  섬으로 발령을 받기 전부터 살던 집은 70년대인가 80년대인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빌라의 1층이었다. 동네가 전체적으로 오래되고 낡은데다, 건물간 간격도 아주 촘촘해서 볕이 잘 들지 않고 곰팡이가 잘 생겼다. 단열 능력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얇은 벽에선 매 겨울 우풍이 불어들었다. 동거인과 나는 구석진 방 하나에 같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쪼그려 있어야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동네의 다른 (비교적) 신식인 건물의 2층에 있는 매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조금 더 대출을 받아서 계약을 했고, 이제 우리는 햇빛이 들어오는 밝고 청결한 집에 살 수 있었다.

  ...만 그렇게 힘든 이사는 처음이었다. 가구 규모상 짐이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고, 고작 해야 1층에서 2층으로, 그것도 걸어서 3분 거리의 건물로 이사를 간다니 우리는 모두 방심했다.

  용달차 한 대, 같이 짐을 날라주실 중년의 남자분 둘이 오셨다. 장마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비만 안 왔지 다소 습하고 여름의 볕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이사갈 집이 실상은 3층 높이의 2층집이었던지라 사다리차도 없이 짐을 나르느라 30분도 안되서 다들 눈이 풀렸다. 이마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땀 때문에 서로 민망하고 미안하고 야속하고. 어수선한 짐더미들과 남겨진 채 나는 다음날까지 쓸고 닦고 정리한다고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4. 책

  사용하는 것보다는 갖고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음악도 스트리밍보다는 MP3 다운로드, 그보다는 CD 구매. 실물을 가져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성미. (그러니까, 고난의 이사를 하게 된 원흉은 내 물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이사 후부터 소유하고만 있던 수많은 책을 비로소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거의 3시간에 육박하는터라 가능한 부분이었고—이사 전에는 왜 안 읽었는지 모를 일이다—소설책은 1-1.5일, 인문서는 3-4일 정도면 모두 읽어냈다. 읽는 양과 속도로만 따지자면 사실상 그것은 "읽어 치운다"에 가까운 감각을 느끼게 했다. 어쨌든, 많이 읽고, 많이 처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읽기 싫은 책도 읽어봐야지-하는 마음에 독서모임에도 한 시즌 참석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독후감을 쓰고, 타인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선 평소의 유희적인 책 읽기가 아니라 사유하는 책 읽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책의 실물을 소유하는 것에서, 경험하고 재생산하는 쪽으로. 내게는 낯선 전환이었고, 2017년에 가장 의미있었던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과연 2018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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