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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19. 2018

탐나는 문장

<100일 글쓰기> 2/100


  지난 주에 로건이 김동식 작가의 단편 소설집 1-3권을 보여주셨다. 어느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 연재되던 단편들인데 인기를 얻고 팬층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님이 깊은 인상을 받고 출간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고교 졸업 직후 성수동 공장 동네에서 아연을 녹여 장신구를 만드는 일을 10여년 했다고 들었다. 어디서 제대로 배우거나 문체를 익힐만큼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글쓰는 방법을 검색했다고 한다. 문장은 짧게, 접속사는 적게- 간단한 팁 몇 가지와 독자들이 맞춤법을 교정해주는 댓글만 가지고 일을 하며 생각한 것들을 썼다고 한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그야말로 소설 쓰는 걸 '글로 배웠어요' 다.

  글쓰기 팁을 익혔다고 해봐야 등단 소설 내지는 출간 작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문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서툴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것의 문장들은 군더더기 없고 쉽게 읽힌다. 단기간에 다작까지 했지만 결코 한 편 한 편 쉽게 쓰였을 수는 없는 글들이었다. 왜곡된 사회 구조와 그에서 기인한 비인간적인 현상들을 다소 비현실적인 세계관과 설정으로 투영한다. 단순한 서사 구조와 평면적인 인물들, 시니컬한 반전이 있는 결말은 몇 편 읽다 보면 예상 가능한 수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옮길 의지, 일반적인 소설의 문법에서 다소 벗어나있어도 독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했다.


  김동식 작가의 활동 배경이나 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보다는 그의 문장이 탐났다.

  한창 블로그가 붐이었던 고교 시절, 나의 입문 블로그 서비스는 티스토리였다. '글로 배웠어요'로 블로그 스킨 html과 css를 수정했고, 치기 어린 시절의 감정과 사소한 사건들을 적어내려갔다.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나 과잉된 감정을 처치하지 못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잊지 않기 위해 자주 기록했다. 스물이 넘은 후로는 에세이 외에도 허구를 가미한 단편 소설을 쓰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독자는 친구일 때도 있었고, 가족일 때도 있었고, 애인일 때도 있었으며, 아주 가끔은 일면식도 없는 웹상의 사람들이었다. 조악한 글이니만큼 감상이나 비평 같은 걸 하기에는 좀 민망하고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직설적인 코멘트를 주는 건 역시 가족 중 sis와 애인이었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은 문장이 길어 호흡이 좋지 않고, 허세가 많다는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누군가는 내게 '글 쓰는 사람 중에 허세 없이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라고 위로를 건네긴 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부분인데 타인의 입으로 들으면 유난히 몸이 따가웠다. sis나 애인 외의 대개의 사람들은 '아, 얘는 적절한 문장 구사를 못 하는구나.' 또는 '겉멋 든 글이네.' 하고 지나갈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나의 신경은 줄곧 불필요한 수사나 어려운 표현은 덜고 간결하게 쓰는 연습을 하는 데에 집중됐다.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이나 유려한 문체는 그 후에 요리하면 될 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후 정해진 시간만큼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임경선 작가 또한 가족들이 각자 회사와 학교로 나간 후면 즐겨 찾는 카페에 가서 매일 글을 쓴다. 글 쓰는 것이 업이 아닌 내게도 조금 더 나은 문장-을 위해선 그러한 규칙이 필요했다. 그것이 100일간의 글쓰기를 약속한 이유였다.


  어제 처음 쓴 글은 평소보다 급하고 쉽게 쓴 문장으로 가득하다. 애인은 평소 글보다 잘 읽히더라며 "말하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같은 느낌이었어" 라고 코멘트했다. 쉽고 간결하게- 나의 2018년의 시작. 매일 한 발씩 자박자박 나아가다 보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며.



* 김동식 작가님 브런치 링크도 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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