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Jan 20. 2018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

<100일 글쓰기> 3/100


* 영화 <공동정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에 스포일러라니 좀 아이러니 같지만.



  오늘의 100일 글쓰기 글감은 '자기소개'였지만, 마침 오늘이 용산참사 9주기이기도 해서 어제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는 다음 주 개봉 예정인 영화 <공동정범> 시사회에 다녀왔다. 조민수 배우가 단관을 진행한 행사였고, 서울극장 내 독립영화 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됐다.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 그리고 이번 영화에 함께 공동연출을 맡은 이혁상 감독의 GV도 예정되어 있었다.

  무료 시사회인데다 금요일 저녁 때인지라 참석률이 높진 않겠구나 하고 예상했는데 그럼에도 상영관이 거의 찼던 것 같다. 묘하게 티켓을 배부하시는 분들도,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들도, 관람객으로 온 분들도, 묘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느낌이 있었다. 상영을 시작하기 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바꿔달라는 청원에 동의해주길 호소하는 전단을 받았다. 전단을 받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로 핸드폰을 켜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https://goo.gl/6e9a9w)에 접속해 청원에 동의했다.


  106분 길이의 다큐. 영화는 9년 전 오늘 새벽, 용산4구역에서 경찰이 철거민 연대를 진압하던 과정에 망루에 화재가 발생했던 당시의 경찰 채증 영상으로 시작한다. 상가 건물 옥상에 파란색 슬레이트로 지어진 4층짜리 망루 안에 순식간에 화염이 번진다. 망루 농성을 시작한지 겨우 25시간만이었다. 용산구청이나 서울시청, 경찰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교섭 시도가 없던 차였다. 망루를 쓰러트리고 철거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대의 물대포는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화마를 진압하지 못 했고, 철거민들은 사람 몸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창문 하나로 차례 차례 탈출을 한다.

  용산 철거민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연대 동지들 중 5명, 진압하던 경찰 1명이 그 화재로 죽었다. 경찰과 검찰은 화재의 원인을 화염병이라고 지목하고 망루 4층에 끝까지 남아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을 '공무집행 방해 과정에서 경찰 공무원 1명이 죽게된 상황을 만든 공동정범'으로 기소한다. 국과수에서는 화재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했으나, 재판에서 판사는 경찰과 검사 측의 화염병에 대한 주장을 판결에 '사실'로 인용하여 5-6년형을 선고했다.

  특별사면을 받기까지 4년 넘게 복역하는 동안 참사의 진상은 세상에 밝혀지지 못한 채 모든 흔적이 급하게 철거되고 말았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소리내지 못하는 동안 용산참사는 잊혀져갔다. 그 사이 용산 철거민 연대 진압을 지시했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2013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2016년에는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경주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철거민 연대의 재판 판결을 맡았던 양승태 판사는 2017년까지 대법원장까지 역임하다 명예롭게 퇴임을 했다고 한다. 보은 인사라는 말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은 잘 살았고, 오세훈 전 시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놀랍도록 잘 살고 있다.


  영화 제작진은 살아남은 그들에게 묻는다. 참사가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사가 벌어졌던 날, 건물 최상층에서 진압대에 대항하던 사람들이 온 몸에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대포와 진압대를 피해 망루로 피한다. 교섭 없이 다짜고짜 무력 진압을 시작해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니 사람들은 겁에 질리고 만다. 망루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고공에 뜬 컨테이너 박스가 망루를 타격한다. 쿵, 쿵- 이러다 망루가 넘어가서 다 건물 밑으로 추락하겠다 싶을 정도로. 버텼더니 슬레이트 판 사이로 쑥 들어온 파이프에서 최루가스와 정체 모를 하얀 연기를 쏟아낸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서 작은 창으로 힘겹게 숨을 한 번 쉬고 나면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불이 피어올랐다.

  4층 높이의 내부를 단번에 휘감고 번진 불길에 사람들은 간신히 창 하나를 통해 정신없이 탈출한다. 핸드그라인더로 밀어 거칠거칠한 날에 손바닥이 다 찢어져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기에 일부는 그렇게라도 탈출했고 일부는 결국 정신을 잃고 안에서 타죽었다. 그 와중에도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앞 사람을 제치고 먼저 밖으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화재로 훼손된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일 수는 없어서 피하다 피하다 건물 밑으로 스스로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생존을 위해 연대하고 농성했던 사람들 중 다섯이 죽었고 나머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겨우 살아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검경과 재판부가 입을 모아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감옥에 밀어넣었다.

  출소한 사람들은 서로의 연락처조차 제대로 모른 채 힘겹게 각자의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정도와 방식은 달라도 그들은 환청, 악몽, 감정조절 불가, 대인기피증 등의 상태가 지속되고 몸을 다쳐 제대로 밥벌이를 하지 못하고 여전한 고립감에 시달린다. 참사 당일에 예상치 못하게 닥친 무서운 상황들에 대해 서로의 소회를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마음의 짐을 갖고 각자의 소신에 따라 진상 규명을 위해 뛰는 동안 연대는 무너지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며, 결국 대립하게 된다. 농성을 통한 교섭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더 저항할 수 있도록 나서서 망루 슬레이트판을 시멘트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진압을 피해 망루로 들어가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공포감에 압도되어 먼저 탈출했기 때문에, 다른 활동가 동지들을 두고 혼자 나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여 어떻게든 사회에서 빨리 목소리를 내고 싶어 혐의를 모두 부인했기 때문에... 죄책감과 사명감, 그리고 상처 받고 아픈 마음이 방어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날선 목소리를 내게 한다. 첫 번째 좌담회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고 헤어지고 만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좌담회. '첫 번째로 탈출한 사람이 누군지 안다.' '내가 첫 번째로 탈출했던 것 같다.' '그 상황에 살려면 어쩔 수 없었고 누가 몇 번째로 나갔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로부터 숨게 만들었던 진실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꺼내고 그들은 드디어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연대하기 시작했다. 고통 어린 시간을 공유하고 극복하여 진상규명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꿰어진 순간이 아니었을까. 비로소 그날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자본주의 논리 하에 국가 권력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상자를 내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다시 손을 잡는다. 그들이 줄곧 바래왔던 진상 규명을 위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진상규명을 해야한다면서 왜 서로 갈등하는 걸까, 하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왜 서로 헐뜯고 의심하게 된 걸까 싶었다. GV 시간에 한 관객이 물었다. 어떻게 보면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 되었던 특정 인물을 옹호하는 듯한 편집과 분량 할애는 의도한 것이냐고. 이혁상 감독은 끊었던 담배를 편집하는 내내 달고 살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국 이것은 '인물 다큐멘터리' 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했다고 한다. 4년 넘게 교도소에, 그것도 독방에 갇혀 지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 하고.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그만큼 이입하고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또 다른 관객은 스스로를 현재 서울의 어느 철거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라고 밝혔다. 용산참사, 그리고 철거민들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도록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 또한 이 영화로 기대하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조민수 배우가 마무리 코멘트에 말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불편해한다. 지금 당장 내 삶도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타인의 고통까지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 불편해서 피하고 외면하다 보면 멀어지고 이해할 수 없게 되며 함께 서지 못한다.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에야 연대는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국가 권력에 희생됐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청원 참여를 <공동정범> 시사회에서도 촉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국가인권위에서는 200명 단관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더 많은 정부 부처들이 용산참사를 잊지 않고 그들이 권력에 부당하게 희생 당했던 것에 함께 분노하고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위해 함께 목소리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탐나는 문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