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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22. 2018

좋은 세상이 오도록

<100일 글쓰기> 36/100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정문정 작가님의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 함께 받은 증정품 '무례함 옐로우카드' 8장을 팀원들과 나눠가졌다. 그 중에 나는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 라고 적힌 빨간 카드를 골라 회사 책상 모니터 바로 옆에 붙였다. 잘 보이는 곳에, 하루에 한 번쯤은 꼭 보게 될 곳을 골라서.

  여러 카드 중 굳이 고른 것은 스스로가 조금 더 매사에 민감하고 경계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감정 상하기 싫어서, 머리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신경쓰거나 행동할 잉여 에너지가 없어서,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라서- 등 무뎌질 핑계와 유혹은 너무나 많으니까. 실상 나는 유혹에 약한 사람인데다 체력이 좋지 않아서 코 앞에 주어진 일 외에는 곁눈질조차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기로에 서서 '타협'이라는 선택지를 택하곤 한다.

  일상적으로는 업무 협의를 하다가도 은연 중에 스스로의 짬이나 낄끼빠빠를 생각해서, 또는 언쟁으로 불거져버린 상황에 지쳐서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하게 될 때가 간혹 있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금이야 곁에서 조언을 주고 생각 정리할 기회를 주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 하는 의심이 들 때면 머리 한켠에서 집중력을 좀 먹고 끙끙 앓게 된다.

  최근에 가장 힘들었던 건 조직 구조가 변경된 후 소위 '의사결정권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호한 키워드로 과제를 던져주고 애매한 스탠스를 보였던 부분이다. 매 회의 때마다, 진행 중인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속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데도 충분히 의견 피력을 하지 못 했다. 조직 전반적으로 바뀐 의사결정 프로세스나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눈치를 봤고, 아직 신뢰가 부족한데다 의견 수렴이 잘 되지 않아 반쯤은 포기한 것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나는 더 세게 '아니에요' 라고 말했어야 한다. 니가 뭘 안다고-라든가 니가 말해서 달라질 것 같으냐-라든가 하는 시선을 가진 사람도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물론 그런 시선을 의식하는 것부터가 나약한 마인드라는 반증일지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너도 나도 눈치보고 방치하다가 산으로 가고 말았고, 지지부진 시간도 까먹었다. 아아악.

  또 요즘 들어 야근하는 날이 많아졌으니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포괄임금제'에 관한 것이다. 업계 특성상 우리 회사도 연봉에 몇 시간 정도의 야근을 할 수 있다-라는 가정을 하고 포함에서 계약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야근을 그보다 훨씬 적게 할 수도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이 할수도 있는데 포괄임금제는 이미 연봉계약서에 포함된 그 '야근'에 대해서는 눈 감아준다. 적치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야근했다고 해서 다음날 지각에 대한 사유로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야근을 많이 해서—사람을 갈아 넣어서프로젝트를 오픈했다고 해서 특별휴가를 주는 건 어느 정도 급 이상 되는 조직장의 권한이라 빡빡한 리더 밑에선 달리 보상 받을 방법도 없다. 정부에서 한창 포괄임금제 폐지를 이야기할 때는 프로젝트가 몰아칠 시기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이제는 리더들이 데드라인을 코 앞에 걸고 낸 과제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야근을 할 때면 속이 보글보글거린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지만 비교적 쉽게, 일상적으로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타협의 순간은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구매 결정을 할 때다. 내 지갑이나 통장이 화수분이 아닌 이상 예산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 갑질 등의 논란으로 비난을 받았던 제조사에서 만든 제품도 그렇게 지갑 사정 고려해서 가성비를 따지다 보면 '아 씨...' 속으로 욕을 짓씹으면서도 카트에 넣을 때가 있다. 그제서야 내가 그놈의 포괄임금제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한 야근이 몇 시간인데...! 따위의 하릴없는 후회 같은 걸 하는 것이다. 무슨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전래동화도 아닌데 타협하거나 선을 그었던 것들이 돌고 돌아 나비효과처럼 내 뒤통수를 타격하고 간다.


  <미생>에서 오상식 차장이 '미생' 장그래에 대해 표현하기를 "취해있지 않다" 고 한다. 관례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날 것의 상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아 새로운 시각에서 이슈를 살펴보고 아직 두려움을 몰라 더 과감하고 용감해질 수 있는 것. 아니, 시간이 많이 흐르고 경험이 쌓인 뒤라도, 풍파에 닳고 닳아도 여전히 취해있지 않을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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