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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21. 2018

과메기와 맥주

<100일 글쓰기> 35/100


 과메기철이 되면 sis의 학교 동문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과메기를 주문한다. 예전에는 과메기-라고 하면 비리고 딱딱한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그 가게에서 배송 받는 과메기는 비린내가 없고 부드러운 편이다.

 배송이 오면 고대로 종이호일에 몇 마리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그리고 먹기 전날 꺼내서 해동한 후 껍질을 벗긴 다음 검지 두 마디 길이로 어슷하게 자른다. 유리로 된 반찬통에 종이호일을 깐 뒤 차곡차곡 담아 냉장실에 보관하면 일주일쯤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가족들 중에 느끼한 맛에 대한 역치가 가장 높다. 가족들은 마른 김에 씻은 묵은지와 생마늘, 청양고추를 넣고 초고추장을 찍어서 몇 입 먹고 마는데 나는 끝장을 보는 편이다. 김에 쌌다가 깻잎에 쌌다가 번갈아가며 먹다가도 그냥 묵은지에 두 조각쯤 얹어서 한 입에 넣기도 하고, 초고추장도 찍지 않고 그냥 입에 넣고 맥주를 들이킬 때도 있다. 덮어놓고 먹다 보면 꽁치 두 세 마리 먹는 건 일도 아니다.

 sis와 둘이 살 적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얘는 앞에 랩톱을 펼쳐놓고 커뮤니티를 돌며 이런 저런 소식을 들려주며 말을 걸고, 나는 의자에 다리 한 쪽을 올린 채 무릎에 팔을 걸치고 과메기를 먹었다. 맥주 한 캔을 거의 비워갈 때쯤이면 sis는 '언니 진짜 잘 먹는다. 안 느끼해?' 하고 매번 똑같이 물었다. 나는 괜찮은데?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새로 꺼내서 따곤 했다. 젤리처럼 어금니에 살짝 달라붙다가 느슨하게 늘어지는 식감,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얹으면 그제서야 고개를 내미는 비릿한 맛, 금세 쌉쌀한 홉의 향이 그대로 모든 걸 납치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철마다 과메기를 챙겨 주문해주던 sis는 출가를 하였고, 오늘은 어린 사촌동생이 방문했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데도 빈곤한 냉장고 때문에 해줄 게 없어서 라면 한 봉지 끓여주고 말았다. 올림픽 경기 중계가 나오는 채널을 틀어주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괜히 마음이 허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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