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향어의 눈동자

by 지혜

몇 해 전 우리 부부는 남편의 친구와 함께 경기도 가평으로 낚시 여행을 갔었다. 가평에 낚시터 주인장과 친한 지인이 있어 명당 자리를 예약해 둔 우리는 전날부터 술과 안주, 간식거리 등을 바리바리 준비했다. 아침 일찍 남양주에서 출발해 낚시터에 도착한 우린 좌대에 자리를 정리한 후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이고 술판을 벌였다. 일단 술이 한 잔 들어가야 잘 낚일 것 같아 아침 겸 점심으로 종이컵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앞산을 덮은 아까시나무에서 퍼져 나오는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남편은 삼겹살에 햇반을 먹는 틈틈이 낚싯대에 글루텐 떡밥을 걸어놓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낚시터에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다.

조사들은 저수지에 낚싯대를 던져놓은 채 명상에 잠긴 듯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오전에는 고기를 낚았다는 환호가 거의 들리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점심때가 지나 일을 마친 지인도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우린 매점에서 술을 더 사 와서 마시기 시작했고 남편 친구는 거의 만취한 상태로 변했다. 그때쯤 낚시터 주인장 측에서 보트를 타고 저수지를 돌면서 잉어와 향어, 붕어 등의 물고기를 방사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물고기를 푸는 시간이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지인의 소개로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후자일 확률이 높다.

나는 원래 낚시를 할 줄 모르는 데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남자들의 손놀림만 구경했다. 남자들이랄 것도 없이 가평 지인은 술을 마시고 있고, 남편 친구는 술이 떡이 되어 있고, 남편만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낚싯대를 잡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물고기가 걸릴까 봐 남편 옆에 뜰채를 갖다 놓은 채 낚싯대 끝에다 시선을 고정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나, 귓가로 한 줄기 바람이 스치면서 낚싯대가 흔들리는가 하더니 물 밑으로 낚시찌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걸렸다! 잉어다!”

나는 낚싯바늘에 물고기가 걸리기만 하면 꼼짝없이 다 잡힌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물고기의 힘이 그렇게 센 줄은 몰랐다. 팔 힘이 좋은 남편이 완강한 힘으로 낚싯줄을 끌어당겨도 잉어는 쉬이 딸려 오지 못하고 저만치서 버티고 있었다.

“어? 이놈 힘이 센데!”

체격이 좋은 남자 팔뚝만한 잉어가 안 딸려 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고기가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 보았다. 저런 미물(微物)에서 어찌 저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남편은 있는 힘껏 낚싯줄을 당겼고, 뭍으로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뜰채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내가 잉어를 확 낚아채었다. 술에 취해 벌러덩 누워있던 남편 친구가 달려오더니 잡은 잉어와 함께 사진을 찍고 환호를 지르더니만 잡은 물고기를 어항에 담가 놓았다. 남편은 다시금 미끼를 꿰어 낚싯대를 던졌다.

그 후로 우리는 향어 한 마리와 잉어 한 마리를 연달아서 더 잡았다. 그리고 네 번째로 남편이 이번엔 나더러 한번 해보라면서 내게 낚싯대를 넘겨주었다. 우리 자리가 확실히 명당이었는지 낚싯대를 넘겨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고기가 걸려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걸려든 물고기는 앞에서 잡은 물고기보다 훨씬 덩치가 좋은 누런빛의 향어였다. 향어의 힘이 너무 세서 체구가 작은 난 물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 같았다. 물고기 한 마리의 힘이 40킬로그램을 조금 넘는 내 전체 몸무게를 훨씬 능가하는 듯, 낚싯대를 든 내 몸이 잠시 휘청거려 나도 모르게 무서워, 하고 소리쳤다.

남편이 뒤에서 내 어깨를 꽉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덩치 좋은 남자 허벅지만한 향어에게서 그런 마법 같은 힘이 나올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섬뜩했던 건 향어의 분노에 찬 눈동자였다. 물속에서 나를 쫙 째려보는데 사람 눈빛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주어 간신히 향어를 잡아당길 수 있었고 남편이 뜰채로 향어를 낚아채는 순간 향어의 눈빛은 분노에서 체념으로 바뀌었다. 향어도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지녔다는 걸, 나는 물고기의 눈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뜰채 속에 든 향어는 가히 월척이었다. 가평 지인은 술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향어가 든 뜰채를 뺏어다가 춤을 추었고, 남편은 연신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몇 컷이나 찍었다. 나는 향어가 살고자 하는, 죽기 직전의 절대적인 저항의 힘과 분노의 눈동자, 그리고 울고 싶으나 울 수 없는 체념의 눈빛, 그러한 것들을 목격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잠시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잡았다 다시 놔준다곤 하지만 그걸 놀잇감으로 삼는 인간의 잔인함을 느꼈다고나 해야 할까. 뭔지 모를 복잡한 심경이었다.

잠시 후 남편은 우리가 잡은 잉어 두 마리와 향어 두 마리 모두를 어항에서 꺼내어 방생해 주었다.

“잘 가라!!”

우리가 잡은 네 마리의 물고기는 모두 안도의 눈빛으로 힘차게 헤엄치며 물속으로 돌아갔고, 어느덧 우리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는 잡히지 말아라.’ 속으로 되뇌며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내려와 저녁 술을 먹으러 낚시터 아래의 매운탕 집으로 갔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방생한 물고기들이 낚시꾼들에 의해 또 잡힐 것을 생각하니 콧등이 시큰거렸다. 우린 쏘가리 매운탕과 수제비 사리를 시켜 또다시 술판을 벌였다. 남편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오늘 진짜 많이 잡았어! 네 마리나 잡았어! 아까 그 향어 말야, 그렇게 큰 놈은 내 평생에 처음 본다, 하하하!”

남자들은 핸드폰으로 낚시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 향어 가져와서 끓여 먹으면 안 될까?”

“흙냄새 나서 못 먹어. 먹으려면 일주일 동안 어항에 가둬놓고 물갈이 해줘야 해.”

남자들끼리 잡은 물고기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마지막에 잡힌 향어의 또렷한 눈동자만 떠오른다. 어쩜 그리 사람과 똑같이 생겼는지. 조물주가 생명체를 창조한 게 맞긴 맞는가 보다. 안 그러면 그리 똑같을 수가 없지 않은가.

매운탕에 어죽까지 한껏 배불리 먹은 우리는 대리운전을 불렀다. 대리기사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우리는 각자의 방향대로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향어가 나를 바라보던 분노와 체념의 눈빛이 아른거렸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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