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의 컴퓨터를 켜고 만난 윈도우 배경 화면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모니터는 이국적인 침엽수림을 물들인 울긋불긋한 단풍과 그 앞으로 펼쳐진 청록빛의 호수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인 데다 오묘한 물빛에 사로잡혀 재빨리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댔더니 구글 사이트에서 중국의 ‘구채구 오화해’라고 설명해 주었다. 산과 물이 만나는 곳을 좋아하는 나는 대륙의 웅장한 산맥과 옥빛의 맑은 물빛에 이끌려 그대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신적으로 침잠해 있던 내게 오화해는 묘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끌림은 블랙홀 안의 중력처럼 변해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가을이 짙어가던 날, 난 결국 택시를 타듯 급히 중국 성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산병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비상약을 준비했지만, 첫 일정인 모니구 풍경구에서부터 눈앞이 하얗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일행 중에 첫날부터 고산병 증세를 나타내는 이는 내가 유일했다. 해발 2,150m 지점에서 가이드는 고산지대가 처음이어서 그렇다고, 내일쯤엔 적응되어 점차 괜찮아질 거라 했다. 다행히 저지대로 내려가면서 증상은 점차 호전되었고, 저녁 식사로 질긴 야크 고기를 구워 먹는 동안 어느 정도 회복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첫째 날부터 해발 2,000m에 있는 숙소에 묵었기 때문에 나는 밤새 몽롱한 듯하면서도 약간 어지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험준한 고지대까지 이끌었는가에 대해. 형편이 여유롭지도 않은 내가 무작정 컴퓨터 화면 하나에 이끌려 비싼 여행상품을 결제한 데에는 필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던 듯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사실상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뜨는 순간에 가장 강렬했다. 이륙하는 동안 귀가 먹먹해지는 것과 함께, 공중 부양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지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주변이란 다른 무수한 요인들도 있겠지만 아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기계 같은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다음 날 아침, 컴퓨터 화면에서 보던 오화해 앞에 섰을 때, 가슴속에선 한 줄기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리저리 치인 내 마음에 위로를 주는 듯, 투명하고도 푸르른 물빛은, 그렇게 편안했다. 영롱히 빛나는 비취빛의 호수는 막혀 있던 마음 한구석을 시원히 뚫어주었고, 호수 아래로 쓰러져 석회화된 나무들은 선명히 살아있는 듯했다. 거울같이 투명하여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화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으나 가이드는 서둘러 이동할 것을 재촉했다. 데크를 따라 걸으며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수정군해와 깊은 수심이 나를 빨아들일 것 같은 노호해, 물방울이 톡톡 튀는 진주탄 폭포를 보면서 나는 떠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들의 언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현지인들의 말소리가 밝고 경쾌하여 내 마음도 덩달아 들뜨게 되었다. 그러나 평소에 워낙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지 고도가 올라갈수록 고산병 증세가 심해졌다. 해발 3,100m인 장해까지 왔을 때는 속이 매슥거리고 머리가 무거워졌고, 허리가 끊어질 듯하기도 했다. 진통제를 꺼내어 삼키면서 삶이 녹록지 않은데 산골 오지는 왜 찾아왔냐며 자신을 타박했다. 다행히 진통제는 미미하게 효능을 발휘했고, 정상의 만년설을 비롯해 민산산맥의 장엄한 비경이 어지러움을 잊게 해주었다.
고산병의 최고조는 다음날 고도가 3,500m를 넘어가는 황룡 가는 길에서 겪었다. 히말라야산맥의 끝자락인 황룡까지 버스를 타고 오르는 산악도로가 험준하여 멀미한 탓도 있을 것이다. 홍경천이라는 현지의 고산병약도 먹고 에프킬라같이 생긴 간이용 산소통을 들고 다녀도 효과는 미미했다. 해발 4,000m가 넘는 황룡 정상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과 함께 나는 고산병의 절정을 경험했다. 낯선 땅에서 쓰러져 행여나 헬기를 타고 중국 병원으로 실려 가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견뎠다. 깨질 듯한 머리와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으며 버티는데 내 눈에 가장 강렬하게 들어온 건 정상과 맞닿을 듯이 붙은 쪽빛 하늘이었다. 하늘은 흔히 알고 있는 크레용의 하늘색이 아니라 짙은 군청색이었다. 진한 남색 하늘 아래로 황룡의 커다란 몸뚱이가 굽이치고 있었다. 염료를 풀어놓은 듯이 하늘빛을 발하는 황룡의 석회수에 가만히 손을 담가 보았다. 물의 감촉은 차갑고도 청량했다. 멀리 설산과 황룡의 금빛 개펄이 조화를 이루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나는 산소통의 산소를 아껴 마시며 스펙터클한 풍광을 감상했다.
황룡을 떠나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산길에서 말로만 듣던 야크를 보았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으나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대륙의 산을 누비는,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노니는 블랙과 화이트의 야크들을 보며 나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진정 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자연에서 방목하는 야크였는지 모르겠다. 튼튼한 뿔과 커다란 눈매와 달리 지극히 온순한 표정을 짓는 야크는 일상의 터널에 갇혀 탈출구가 필요했던 내게 뇌를 깨워주는 도파민 이기도,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엔돌핀이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내려오며 멀미와 고산병 증세가 뒤섞인 나는 휴게소의 유료 화장실에서 결국 구토하고 말았다. 쓰촨성 고지대의 화장실은 말로만 듣던 또랑물이 길게 내려가는 측간이었고, 이민족의 대소변이 떠내려가는 변기에 토악질을 해대는 그 순간 진심으로 여행에 대해 후회했다. 형편도 여유롭지 않은데 왜 비싼 값을 들여 티베트 자치구 장족 마을까지 흘러 들어와 고생하냐며 스스로 질책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이곳을 다시 찾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다. 살다가 어느 날 형편이 여유로워져도 내 돈 주고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까지도 생각했다. 고산병을 지독히 앓았던 기억이 뇌리에 깊이 박혔던 때문인 듯하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가 되었다. 고생스러웠지만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젊은 날의 경험은 무료한 일상 중에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돼 주곤 했다. 언젠가 시간과 각도에 따라 빛깔이 다섯 가지로 달라지는 해발 2,995m 오채지의 신비한 물빛이 그리워지면 다시 한번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