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우에노 공원은 황량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누렇게 시든 연꽃잎과 줄기가 시노마즈 연못을 가득 메운다. 시든 연잎 아래로 통통히 살 오른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호수엔 검둥이 고방오리들이 한가롭게 떠다닌다. 수면 위로 검푸른 빛 잉어가 입을 쪽쪽 내밀고 원앙 한 마리가 먹이 사냥을 나선다. 호수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길게 곡선을 그리며 날다가 난간 위에 사뿐히 발을 내린다. 이렇게 큰 도심에서 갈매기를 만나다니, 한동안 갈매기의 날갯짓을 바라보던 신애가 중얼거린다.
아름드리 큰 나무 주변으로 밥 타러 온 이들이 길게 줄을 선다. 탑골 공원에서 보던 장면을 바다 건너까지 와서 마주한 신애는 볼을 스치는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여기도 결국 그놈의 밥이 문제인가 곱씹으며 그녀는 노숙자들에게서 애써 눈 돌리고 땅만 보며 걷는다. 시노마즈 연못 근처 벤치에는 한 남자가 밥 타러 갈 생각도 없이 팔짱을 낀 채 움츠리고 누워있다. 모자로 눈을 반쯤 가린 남자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그녀는 근처 벤치에 자리 잡고 앉는다. 남자는 미동도 안 하고 눈을 감고 있다.
어쩌면 저 사람이 머지않아 생과 사를 오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녀는 약간의 허기짐을 느낀다. 늦은 아침 로손 편의점에서 어묵을 먹은 후 지금껏 뱃속에 아무 음식물도 집어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그녀는 사는 게 참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며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난간 위엔 괭이갈매기가 외롭게 서 있고, 바닥엔 비둘기 떼가 오밀조밀 모여있다. 붉은 발에 검푸른 깃털을 가진 멧비둘기들 사이에 돌연변이같이 튀는 녀석이 있다. 온몸이 새까만 흑비둘기에게 멧비둘기 하나가 말을 건다.
“얘! 넌 흑비둘기 아냐? 천연기념물인 네가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어떻게 오긴. 날아서 왔지.”
“헐. 어디서 왔는데?”
“난 독도에서 왔어.”
“독도? 거기서 여기까지 날아서 왔다고? 믿어도 돼?”
“응. 생각보다 멀진 않더라고. 나한텐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가끔 바다 위에 떠다니는 배 갑판에서 쉬기도 했지.”
“야! 너 대단하다. 근데 독도는 호젓하니 살기 좋은 곳 아냐? 힘들게 날갯짓해서 우에노 공원까진 왜 온 거야? 여긴 하나미 때라도 되면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응. 뭔가 지겨웠어. 한평생 독도에서 썩어야 한다는 게. 다른 세상을 구경해 보고 싶었어. 밖에 나오니까 좋다. 먹을 것도 많고.”
그렇게 말하며 흑비둘기는 한 중년 남자가 지나가다 뿌린 쌀알을 부리로 쪼아댄다. 그때 잇시키 해안에서 마실 나온 괭이갈매기가 흑비둘기에게 말을 건다.
“야! 너도 배고파서 온 거니? 나도 여기 오니까 힘들게 낚시질 안 해도 길바닥에 먹을 거 많아서 그거 하난 진짜 좋다.”
“뭐, 꼭 먹을 게 없어서 온 건 아냐. 그저 내가 사는 곳에서 탈출해 보고 싶었어.”
“탈출? 난 이해가 안 된다. 독도같이 넓고 큰 바다에서 탈출을 꿈꾼다는 게.”
“응. 이것도 죽기 전에 한 번쯤 해보는 거지. 한 곳에서만 살면 재미없잖아.”
“우와! 난 너희들이 부럽다. 난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이 공원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나도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해보고 싶다.”
흑비둘기와 괭이갈매기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멧비둘기가 체념 섞인 어투로 말했다. 새들의 대화를 엿듣던 신애는 스마트폰으로 죽은 동물처럼 잠자는 노숙자를 찍었다. 여행인지 일탈인지 모를 자신의 상황과 노숙자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겨울인데 시노바즈 연못엔 오리배 타는 사람도 있고, 쪽배를 타고 노 젓는 커플도 있다. 연못가를 돌던 그녀는 문득 누군가 난간에 버려 놓은 신문을 집어 들었다. 어제 날짜가 찍힌 신문은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였다. 신문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몸이 덜덜 떨려서 한 손으로 난간을 짚어도 체구를 지탱할 수 없어 주변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이 묶인 세 명의 한국인 남자들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신애로부터 많은 걸 앗아간 영철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떨군 그는 공안에게 양팔을 꽉 붙들려 있었고, 그의 왼편으론 언젠가 쇼핑몰의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던 현수가 있었다.
중국 공안이 광저우 오피스텔과 지하 창고에서 압수한 필로폰과 헤로인은 테이블을 한가득 채웠다. 압수된 마약은 약 일억 위안에 달하며, 마약 대금으로 추정되는 백 위안짜리 지폐 백 장의 현금다발도 함께 압수됐다는 기사에 그녀는 가슴을 쓸었다. 그녀는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을 사형 집행했다는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그날 밤 꿈속에서 신애는 허깨비를 보았다. 홀딱 벗고 팬티만 입은 영철이 사이판 ‘수어사이드 절벽’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있었다. 낮에 쪼아 먹힌 간은 밤이면 다시 돋아났다. 아침 해가 밝기 무섭게 독수리가 그의 가슴께 다가왔다. 가슴에선 피가 흘러 내렸다. 고통으로 울부짖는 그가 안타까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신애는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손으로 땀을 닦는 감촉이 마치 그의 피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돈독이 오른 신애는 회사에 다니면서 영철의 이름으로 사업을 했다. 겸업이 금지된 회사 내규로 인해 그래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지독히 겪어온 가난의 고리를 자신이 끊어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그녀의 정신을 지배했다.
대학에 다닐 때 신애는 휴학을 두 번이나 하면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여성 의류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했다.
그녀는 영철의 이름으로 사업자도 내고 사무실을 얻은 건 물론 부족한 일손을 도울 아르바이트생도 구했다. 게다가 데스크톱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 등의 집기류를 모두 새것으로 구매했다. 크로마키 천과 삼각대 같은 상품 촬영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해 마네킹까지 모두 새것으로 준비하면서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희한하게 그녀의 내면에는 헌 것을 거부하고, 새것을 추구하는 미신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녀는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시장 어귀에 있는 반지하 상가로 뛰어갔다. 장사가 제법 잘돼 반년 만에 스마트스토어 3개를 운영했다. 곧이어 6개의 오픈마켓에도 입점했다. 그녀는 물량이 달리지 않게 물건 사입에 열을 올렸고,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넘보지 못하게 아도치기도 했다. 그녀는 사업 감각도 있었고, 여느 남성 못지않게 사업 수완도 좋았다. 날마다 늘어나는 주문 건수에 두 사람은 축배의 잔을 들며 기뻐했다. 그녀의 쇼핑몰은 처음 시도한 투잡치고는 가히 성공적이라 할만했다. 그녀는 영철과 데이트할 시간도 확보하지 않은 채 일에만 몰두했다. 그는 그녀 옆에 붙어서 택배 포장이나 송장 출력과 같은 단순 업무를 했다. 가끔 그녀가 영철을 중국 광둥성으로 출장을 보냈다. 직장에 나가는 그녀가 번번이 물건 사입을 직접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그녀가 시키는 일을 할 만큼 능력은 있었다. 블로거가 취미인 그의 친구 현수가 쇼핑몰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게 쇼핑몰 광고에 제법 도움이 됐다.
사업자용 체크카드가 거래 중지된 걸 확인한 건 신애가 과로로 쓰러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광저우시장에 물건을 떼러 간 영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곧이어 그의 전화번호도 없는 번호로 나왔다. 데리고 있던 알바생은 3일 전에 그만뒀다고 했다. 그녀가 날마다 출근하던 반지하 상가는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후였다. 그 모든 일이 사흘 만에 일사불란하게 처리되었다.
영철이 그토록 빠릿빠릿한 사람인 줄 처음 알게 된 신애의 침대엔 ‘절대안정’이란 팻말이 걸렸다. 그녀의 맥박 수가 분당 150회를 넘겼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그녀는 이틀간의 병원 신세를 추가로 더 지고 퇴원했다.
신애는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다. 회사에 다니긴 했으나 저녁마다 그녀는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고는 잠들지 못했다. 영철이 그녀에게서 가져간 돈은 자그마치 일억 원도 넘었고 모두 그녀의 대출금이었다. 돈을 벌어들이는 족족 사업장 확장에 사용했기에 밤새워 일한 돈을 그녀가 직접 만져본 적은 없다. 공기업에 다니는 그녀 월급이 적은 편도 아니었기에 굳이 사업자 통장에 손을 대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재산은 빚밖에 남지 않았다.
신애는 언젠가 잡지에서 본 적 있는 사이판의 ‘수어사이드 절벽’을 떠올렸다. 이왕 죽는 거 우아하게나 죽자고 사이판으로 달려가려다 그녀는 방향을 동경으로 틀었다. 사이판행 비행기표를 끊으려는데 옛날 속담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녀는 억울했다. 왜 그 사람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억울했으나 동경에 간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동경행 비행기표를 끊은 건 정말 아무 생각 없어서다. 그녀는 그저 잠시만이라도 한국 땅을 떠나고 싶었다.
꿈에서 허깨비를 본 신애는 날이 밝자마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엔 좀비, 그러니까 살아있는 시체가 있었다. 창백한 좀비 한 마리가 히죽거리며 그녀를 놀렸다. 야, 이 등신아~~
핸드폰이 울렸다. 얼마 전부터 껄떡대기 시작한 김 대리였다.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김 대리가 의미심장한 얘길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에요.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있겠지요. 다음 주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네요. 속히 돌아와요. 신애씨에게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요.’
전화를 끊고 신애는 언젠가 점심시간에 김 대리가 농담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남자 친구 있다면서요? 사귀는 거 맞아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자 김 대리가 다시 말했다.
“일주일에 며칠이나 만나요? 애인 있는 여자들은 얼굴에 ‘나 애인 있어요.’ 이렇게 쓰여있던데.”
신애는 김 대리의 송곳 질문에 얼굴을 숙이며 테이크아웃 커피 컵만 만지작거렸다. ‘만나기는 매일 만나요.’라는 말을 그녀는 차가운 커피와 함께 삼켰다.
서울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김 대리와 신애는 가까운 서해 오이도를 찾았다. 바다 입구엔 생명의 나무가 우뚝하니 섰고, 빨간 등대 위로는 갈매기들이 끼룩대며 날았다. 해변에 하얗게 내린 눈은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며칠 전까지 기승부리던 미세먼지가 걷혀 파란 하늘 아래 건너편 송도신도시 전경이 밝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수십 마리의 검은머리물떼새가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기 시작했다. 물떼새 중엔 유독 푸른빛을 띤 새 한 마리가 돌연변이처럼 섞여 있었다.
신애는 이름 모를 파랑새를 보며 우에노 공원에서 봤던 흑비둘기를 떠올렸다. 다른 세상을 구경하러 왔다는 흑비둘기가 아직도 동경 상공을 떠도는지 그녀는 궁금했다.
“우에노 공원에서 흑비둘기를 봤는데요, 아직도 그 새가 거기 있을까요?”
“흑비둘기? 그건 울릉도나 독도 같은 섬에서 사는 천연기념물 아니야? 흑비둘기가 무슨 재주로 우에노 공원까지 날아가냐? 잘못 봤겠지.”
신애는 긴가민가했다. 분명히 검은 새 하나가 자유를 찾아왔다고 했는데 아니었나? 헛것을 본 거였나? 그녀는 문득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무한의 시공간으로 날아가는 새 붕(棚)을 떠올렸다. 환상과 허상의 새라지만 가끔은 현실에도 있을 법한 착각이 들었다. 절대 자유의 경지를 찾아서 동해 공해상을 넘어온 흑비둘기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그녀는 포물선을 그리다 일렬종대로 길게 열을 맞추는 물떼새 무리에 섞인 파랑새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 파랑새가 사람의 모습을 한 게 지금 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 이 사람인가 하고도 생각했다. 창공을 가르며 줄지어 날던 새들은 다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