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소설)설해목(雪害木)

by 지혜

첫눈에 폭설이 내렸다. 허공에 틈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쏟아져 내려와 쌓였다. 아파트 입구에서 큰길로 내려가는 길의 소나무들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수분을 흠뻑 머금은 습설을 맞은 탓에 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꺾였다. 꺾이다 만 가지들이 간신히 몸통에 매달려 금방이라도 곤두박질할 듯 위태로운 데다 소나무 몇 그루는 몸통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허옇게 드러난 줄기의 속살에서 쓰리게 내뱉는 신음이 공기 중에 묻혔다.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길이 통제됐고 마을버스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의 입구가 두 군데여서 망정이지 한 곳이었으면 출근하지도 못할뻔했다. 도로의 차들은 힘겹게 쌓인 눈발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러다 급기야 도로 한복판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빙그르르 도는 차도 있었다. 나 또한 아찔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고속도로를 이용해 출근하는 나는 평소처럼 나들목으로 통하는 길로 빠지려 했는데 야광조끼를 입은 남자가 길을 막았다. 손에 경광봉을 든 그는 팔을 내저으며 다가오는 차들을 밀어냈다. 남자가 선 뒤쪽의 언덕 위를 올려다봤더니 도로 가장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들이 처참히 쓰러져 있었다. 다급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네비게이션을 켰더니 한참 우회하는 길로 안내했는데 일터까지 무려 서너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길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이왕 길을 나섰으니 가는 데까지 가보자, 가다 보면 길이 뚫릴 수도 있지 않겠냐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체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빙판길에 핸들이 말을 안 들어 위험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러느라 두 시간을 길에서 소비한 후에 차 안에서 기진맥진해 버렸다. 결국엔 그날 출근하지 못하고 핸들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도 물론 쉽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누워버렸다. 시곗바늘은 벌써 정오에 다가서고 있었다. 아침도 안 먹었으나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쳐서 한참 누워있는데 머릿속은 온통 아침에 보았던 모가지와 허리가 꺾인 나무들로 가득했다. 떠올릴수록 그 광경은 처참했다. 그렇게 많은 나무가 쓰러진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첫눈이 온 지 엿새 만에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8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은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고, 야당은 계엄은 명백한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했다.

나라 안팎은 칠팔 년 전쯤 대통령 탄핵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어수선해졌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아파트 입구와 큰 도로의 갓길에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설해목이 상처를 드러낸 채 쓰라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시청에선 원활한 교통 통행을 위한 최소한의 정비만 했을 뿐 나무들이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려면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했다. 눈의 무게에 내려앉은 소나무 줄기를 톱으로 잘라 그 잘린 부분을 가져가지 않고 흙 위에 일렬로 죽 늘어놓았다. 잘려서 토막만 생뚱맞게 남은 기둥들, 몸통에서 분리되어 차디찬 흙바닥에 누워 처분만 기다리는 줄기와 솔잎들이 도심 한가운데 버려진 듯 쓸쓸한 풍경을 만들었다.

계엄 발표를 기점으로 날이 추운데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단체 카톡방마다 하야 반대 청원 링크를 만들어 돌리는 이도 있었다. 칠팔 년 전의 상황이 재현되었고 마찬가지로 집안 분위기도 다시 삭막해졌다.

2017년 봄,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핵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탄핵을 기점으로 국민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차벽을 기준으로 반으로 갈린 광화문광장에서 찬성파는 촛불을 들었고, 반대파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나는 양손을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번갈아 넘나들며 관조의 눈빛만 던졌다.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난 지금 왜 여기 있는가, 왜 구경만 하는가, 정체성이 흔들리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나 도무지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무엇이 이 나라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는지 그게 궁금할 따름이었다. 양측의 삼엄한 분위기는 총칼만 안 들었을 뿐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한쪽이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면, 다른 한쪽은 대통령을 총살하라고 외쳤다.

그들은 반대 진영을 증오했는데 그 풍경은 집회가 끝난 후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주 볼 만했다. 중년의 여성 둘은 처음 보는 사인데도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했다. 한쪽이 “야 이 빨갱이! 그 촛불 내려놓지 못해? 북한이 그리 좋으면 이북으로 가버려!”라고 하면 다른 한쪽은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무슨 주책이래? 쑤구꼴통은 죽어야 정신 차리려나!”라며 맞받아쳤다. LED 촛불과 태극기로 서로를 겨냥하며 몸이 엉겨 붙을 때쯤이면 남자 역무원이 여자 화장실에 들이닥쳤고, 여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화장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자 화장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대략 네 개의 계파가 생겨났는데 크게 촛불과 태극기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 또는 좌와 우로 나뉘었다. 진보와 보수의 안 좋은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선별해서 수용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른바 중도라는 새로운 파를 결성했다. 진보와 보수와 중도,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만사에 관심 없는 부류는 무당층으로 불렸다.

직장의 회식 자리에선 이런 파벌을 두고 이른바 파 논쟁이 불거졌다. 진보와 보수 쪽에선 서로 자기네가 대파고 상대측이 쪽파라며 놀렸다. 우리 편이 왕 중의 왕, 파 중의 파인 대파고 상대편이 속 좁은 쪽파라고. 대파와 쪽파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이 나는 아무 파도 아닌 중도라니까 누군가가 그럼 너는 물 건너온 양파라고 했다. 저쪽 구석에서 술은 안 먹고 안주발만 세우던 사람이 나는 국에 든 파도 안 먹는다고, 파 자체를 안 먹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어떤 이가 그럼 너는 실파 하라고 했다.

파 논쟁을 듣는 게 지겨워진 L과 나는 슬그머니 회식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밤거리를 걷는데 L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몇 해 전 중소기업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후 3PL 물류업을 시작한 그녀 남편이 근래 들어 부업으로 유튜브를 찍기 시작했는데 그게 신경 쓰인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사업장을 홍보하고 물류사업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취미 삼아 하는 일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닌 듯하다고 했다.

언젠가 무심코 남편의 유튜브 채널을 눌렀는데 가만히 보니 남편은 물류업에 관한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과 정치논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유튜브 촬영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됐는데 어느새 구독자는 만 명 가까이 육박해 있었고, 생방송 도중 시청자가 유튜버에게 송금할 수 있는 슈퍼챗까지 가동하고 있었다고, 실시간 채팅창과 방송을 들여다봤는데 보수 쪽에 선 남편이 진보 편에 선 사람들을 까고 있었다고, 남편 쪽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슈퍼챗으로 후원금을 보냈는데 송금 빈도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 십만 원씩 큰 금액을 보내기도 했다고, 그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세월호 사건 직후에도 인터넷상에 노란 리본을 폄훼하는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벌금을 문 적도 있다고 했다. 때로는 거래처 사람과 정치논쟁을 벌이다가 다투기도 했고, 단톡방에서 정치 얘기 도중 강퇴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L은 저러다 남편의 거래처가 끊기면 어쩔까, 거래처 사람이 남편의 유튜브 채널을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날 이후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L을 지켜보았다. 가끔 그녀에게 힘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뿐 딱히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했다. 그녀는 처음엔 남편을 달래보기도 하고 정 힘들 때는 술에 의지하기도 하더니만 결국엔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남편과 갈라섰다. 그녀는 칠 년이 지난 지금도 혼자 살고 있다.

탄핵 사태 이후 첫 추석 명절을 맞아 본가에 갔을 때였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랫동안 골드미스로 지내온 손아래 시누이의 파혼 소식에 놀랐는데, 파혼 이유가 가관이었다. 6·25 참전 용사이신 시아버지는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 될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진보란 이유로,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었단 이유로 결혼을 단칼에 물렸다고 했다. 연휴 내내 시누는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았고 시부모님 얼굴은 죽상이었다.

시아버지는 차례상을 물리자마자 산소도 가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알고 보니 아버님은 남대문 경찰서로 집회 신고 릴레이 봉사를 나가시는 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릴레이 봉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정말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일이다. 말하자면 자칭 애국 보수라 일컫는 자원봉사자들이 집회 신고를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24시간 당번을 서는 것이다.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단 1분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집회 장소를 반대편, 즉 좌익에게 뺏긴다고, 한 번 빼앗기면 영원히 다시 찾을 수 없다고,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 집회 장소를 뺏기지 않으려면 인간 방패를 쳐야 한다고 했다. 식구들은 집안 어르신이 수저를 놓자마자 나가시니 마음이 불편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추석 명절 몇 달 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3월에 탄핵이 되었고 그로부터 두 달 후에 바로 후임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중절모를 쓴 아버님이 갑자기 남편에게 지난 대선 때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6·25 참전 용사의 아들답지 않게 내 남편의 정치 성향은 아버님과 반대편이다. 그런 데다 남편의 성격은 당돌하기까지 하다. 그냥 아버님 듣기 좋게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사실대로 말해버렸는데 그만 아버님이 화를 참지 못하고 거실에 놓인 차례상을 발로 걷어차 버리셨다. 왕년에 군인이셔서 그런지 아직도 예전의 혈기가 남아있었다. 차례상에서 나가떨어진 접시 하나가 베란다까지 굴러가 와장창 깨졌고, 가족들 모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버님은 남편에게 네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 눈이 충혈되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누구는 가정이 깨졌고, 누구는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고, 누구는 부자지간에 원수가 되었다. 때로는 오래 사귄 친구들이, 심지어 단짝 친구가 절교하기도 하고,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들이 헤어지기도 했다.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는 대화를 나누기도,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문제로 직장이나 일터에서 사람들이 각자 생각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일도 다반사다. 괜히 내 생각을 말했다가는 싸움으로 번지거나 좌우로 편이 갈리기 때문이다. 한번 그렇게 편이 갈리면 그 꼬리표는 영원히 떼어버릴 수 없는 낙인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꼭 관계가 단절되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었는데 어디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마다 국민통합을 외쳐도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사람들이 다시 거리에 나왔다. 역시나 추운 겨울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눈이 많이 내렸다. 그때도 분명 눈에 쓰러진 나무들이 있었을 것이다.

퇴근길에 L과 나는 함께 광장에 나갔다. 역시나 우린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고, 그저 사람 구경을 하러 간 거였다. L이 말했다. 저딴 게 뭐라고 추위에 이 난리냐고. 내 가족 내 이웃도 못 지키는데 대통령이 뭐라 하든, 누가 하든 뭔 상관이냐고.

전과 마찬가지로 국민은 두 부류로 나뉘어 한쪽은 대통령을 지키겠다 하고, 한쪽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외쳤다. 양쪽의 분위기는 살벌했고, 반대편을 증오하고 혐오했다. 몇 시간 집회 끝에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쪽에서는 국민이 이겼다며 축제 분위기로 들어갔다. 그들은 북과 징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신명을 냈다. 다른 한쪽에선 불법 탄핵이라고 분노하며 감정이 격앙되었다. 그들은 여당에서 나온 열두 명의 변절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나라가 어찌 되려고 하냐며 걱정하면서 돌아갔다. 역시나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역 화장실과 역사 내 곳곳에선 예전의 진풍경과 유사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미래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폭설에 쓰러진 나무들은 여전히 아프다고, 아파 죽겠다고 허공에 대고 외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부러진 모가지와 꺾인 허리에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는데 봄은 너무 더디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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