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몇 달 잠잠한 것 같더니 일주일 전 확진자가 100명이 넘고 또 300명이 넘고 이제는 급기야 583명이나 되었다. 그래도 지난번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때(아마도 사랑 제일교회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한 번 겪어봤다고 별일 아닌 듯, 평소처럼 지냈는데 갑자기 500명이 넘는 확진자를 보자 다시 심각성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9시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10시 30분에 데리고 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3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기에(낮잠을 자는 2-3시간까지) 우리는 그 1시간 30분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10시 30분에 데리러 간 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간식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3일 그렇게 했을까? 동네 문구점 언니에게 근처 어린이집 원장님과 또 다른 어린이집 원아가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가 턱밑까지 왔구나!
남편과 나는 그다음 날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셋 중 누구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완치될 때까지 병원생활을 하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고(14개월쯤 고열로 병원에서 피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의 작은 혈관에서 채혈하는 것을 보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또 움직이고 싶어 하는 아이를 붙잡고 수액을 (가만히) 맞게 하며 소변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으면 남편과 나의 일은 어떻게 되고 생계 또 그 후의 일은?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변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편이 우리의 온갖 걱정을 덜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것은 엄마&아빠의 자유시간은 더 줄어들고, 집안은 더러워지고,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어야 하고, 놀 거리를 더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더 밀도 있게 움직이고(딴짓하는 걸 줄여야)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그나마 반찬을 조금은 덜 사 먹을 수 있고 집도 나름 정리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아이와도 더 잘 놀아줄 수 있다.
세계가 처음 마주한 바이러스 앞에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달라지고 있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내 한 몸뚱이만 잘 챙기면 된다면, 혹시(그러면 안 되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게 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평소에도 남편과 나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몸이 안 좋으면 다른 한 명이 육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당연히 힘들다. 그래도 아이가 클수록 많이 편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밥을 차려주면 잘 먹도록 챙겨주어야 하고, 양치할 때 위험하지 않게 구석구석 하도록 해주어야 하며 또 퍼즐을 할 때면 옆에서 하는 시늉은 해주어야 한다. 이 사소해 보이는 일을 둘이 같이 했을 때와 혼자 했을 때의 부담은 정말 다르다.
그러니 육아 동지인 우리 중 누구든 절대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과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2-3년 정도 지나야 종식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2-3년은 아니더라도 지금 이 500명대의 확진자수는 언제쯤 30명대 아니 100명대의 확진자가 나오던 때로 돌아갈까? 아이가 마스크를 조금 내려쓰더라도 덜 예민해지고 밖에 나갔다와서 손을 바로 씻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이번 대유행이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남편과 나는 오늘은 또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 고민하며 문구점에서 (아이 몰래) 장난감을 사고 인터넷 서점에서 퍼즐과 스티커북을 주문한다.
11월 27-28일. 07:00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