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나 보다.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여보 힘들구나?
오늘 하루만 안 보내는 거면 괜찮은데... 또 얼마나 기다려야 아이를 편하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때가 올까? 막막했다.
결국, 우리는 그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남편이 도맡아 아이를 가정 보육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를 집에서 봐준다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해야 하는 공부를 못하고 아이를 챙기느라 남편이 지칠까 걱정되었다.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2시 30분쯤 집에 들어갔다. 집은 난장판이었으나 의외로 남편은 괜찮아 보였다.
아들이 나름 밥도 잘 먹고 잘 지냈단다. 그 시간을 잘 보내준 남편과 아들이 대견(?)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는다고 결심(큰 결심!)했을 때 나는 우선적으로 '아이와 어떻게 하루를 보낼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지난번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때 그랬다. 남편이 출장 가서 1박 2일 동안 없는 날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엄마표 놀이"를 열심히 찾아본 후, 여러 가지 아이템을 준비했다. 스케치북에 칸을 색깔별로 그려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마트 전단지 잘라 시장놀이를 준비하고, 휴지심을 잘라 물고기 만들기 등등 냉장고에 순서를 적은 종이를 붙여 아이가 지겨워하는 게 보이면 바로 다음 스텝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내가 준비한 놀이에 관심을 보이긴 했으니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을 들인 아이템이 천대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걸 넌 안 가지고 놀아?!" 가지고 놀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아이와의 놀 것을 준비할 때면 남편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어차피 아이는 의식의 흐름대로, 그날그날 꽂히는 대로 논다고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요즘에는 퍼즐에 꽂혀 공룡 퍼즐, 세계지도퍼즐, 우리나라 퍼즐 한 세트를 다 하고 나면 거의 40분이 흐른다. 조용해서 가보면 며칠 안 보던 책을 들추고 있거나 갑자기 타요 집을 만들어준다며 블록을 쌓고 있다. 의외로 이것저것 하고 나면 시간은 잘 흘렀고 금방 잠이 들 때가 되었다.
이제 보니 '아이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나...'라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하루가 무겁게 느껴진다. 매사에 계획적으로 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와 노는 것에도 정해진 시간표대로, 내가 준비하려는 무언가로 놀이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뭐 아이가 기계인가. 매일 컨디션이 다르고 놀고 싶어 하는 것도 다르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는 건가?
아니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그래도 엄마&아빠가 힘들 때 잠깐 동안이나마 아이의 흥미를 끌어줄 아이템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 아이템을 준비하는데 나의 힘과 기대가 너무 들어가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집 옷방 한구석에는 새로운 클레이 만들기가 있고 곧 타요 퍼즐이 올 예정이다. 아이가 새 아이템을 가지고 노는 동안 숨을 고르고 다시 아이와 놀 준비를 한다.
장난감 없는 육아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난다. 물론 언제까지 장난감을 사줄 수도 없고 아이가 스스로 놀게 하는 법을 배우는 면에서는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데 '장난감 없이 육아할 거야!'라고 선언하는 순간 부담으로 느껴진다. 나는 이미 이유식을 만들며 배웠다. 유기농, 좋은 것들로만 하려고 고집했을 때 나 자신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장난감을 어느 정도 사주어도 괜찮다'라고 상황을 열어두었더니 내가 한결 편해졌다.
아,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는 것 이외에 준비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이전처럼,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갔을 때처럼 생활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바깥 음식을 조금 사 먹고, 아이가 기저귀에 쉬를 해도, 집이 조금은 더러워도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전처럼 살아온, 살아가려고 하는 '틀'이 있어서 음식 하나 사 먹는데도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굳이 돈을 안 써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앞서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이런 위중한(!) 시기에 모아둔 돈을 조금 더 쓰고 내 에너지를 보존하자!'라는 생각으로 그저께는 칼국수를 그리고 어제는 김밥과 만두를 샀다. (비싼 음식을 사 먹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고민이 된다.) 아이 목욕도 3-4일에 한번 씻기기로 했다. (지난번에 무리하게 목욕을 시키고 나서 둘 다 힘들었는지 남편과 괜한 일로 다툰 적이 있었다.) 또 밥상을 잘 차려먹겠다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김치에 밥만 있어도 맛있게 먹겠다고 다짐한다. 코로나 시기에 그저 우리 가족의 '평안한 생존'을 목표로 이제껏 쌓아온 틀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본다.
육아가 힘들다고 느껴질 땐 독박 육아하시는 분들이나,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큰 시누 생각을 한다. 어떨 때는 전쟁지역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남편과 함께 육아하며, 집에 먹을 쌀도 있고, 나갈 직장이 있다.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 시대의 극한 육아가 우리를 언젠가 더 성장시킬 거라 믿는다.
11월 29일-30일. 07:00.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