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점점 지치는 것 같았다. 체력을 기를 시간도 마음을 편안하게 할 여유도 부족했다. 글을 쓰면서 다잡으려 해도 쉽게 긍정의 기운이 솟아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잘 지낼 수 있을까? 다시 며칠이나 지났다고.. 너무나 쉽게 침체되었다.
그러다 내 마음을 평정한 상태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우울해질 것 같으면, 설거지가 쌓여있고 집이 더럽더라도 일단 누워서 쉬기로 해본다. 과자를 먹어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으면, 몇 개 정도 먹는다. 밥도 좀 사 먹기로 한다. 아이에게 타요를 한 편을 더 보여줘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제, 남편의 공부 1년 과정이 끝났다. 주역 외우느라 지친 남편. 남편이 수업하는 동안 밖에서 아이와 노는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남편에게 쉬는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남편이 회복해야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무려 30분(인심 쓰듯!)의 쉬는 시간을 주고, 아이와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도 시간을 보냈다. 설거지가 쌓여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이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나도 같이 씻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아이와 30분 정도 물놀이 겸 씻은 후 남편에게 아이 내복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로션까지 챙겨달라고 했다.
"아이 로션 서랍장 위에 있으니까 찾아서 준비해줘~"
남편은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그럴 때 나는 불쑥 화가 나곤 한다. 아... 이놈의 화내는 업(습관)이란!
'내가 30분이나 자유시간을 주고, 아이를 씻기기까지 했는데 로션 하나 못 찾는 거야? 알아서 좀 준비해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이렇게 내가 화를 내봐야 서로에게 좋은 게 없다. 예전에도 한번 비슷한 상황에서 다툰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내가 아이와 씻고 난 후 이제는 알아서 아이 머리도 말리고 좀 챙기라고 했더니 남편은 "그럴 거면 아예 같이 씻기자"며 "생색내는 게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나는 30분 자유시간을 주며 "남편 생각해주는 아내"라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고, 또 나도 아이와 같이 씻어 기분이 좋았으면서도 결국 이렇게 생색을 내다니!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며 로션을 찾지 못하는 남편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거기 거실에 옷 넣는 아이 수납장 위에 있어~!"
결국 남편은 로션을 찾았고 나름 수월하게 내복을 입히고 머리를 말려주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하자 정말 일상이 편안해졌다. 조금이라도 화를 낼 상황을 만들지 않았고, 우울해질 기미가 보이면 기분을 끌어올렸다. 내가 어떤 한 극단적인 상태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작동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하려니 행동 하나하나 선택해야 했다.
'저녁에 카레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냉장고에 있는 새송이 버섯이 곧 상할 것 같은데...', '작은 시누 대신 남편을 계약하는데 보내야 하나? 그럼 아이를 나 혼자 보게 되니 힘들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부산에서 오는 시누도 도와주어야 할 것 같긴 하고...', '지금 커피를 마셔서라도 버텨야 하나? 요즘 커피 별로 안 받는 것 같은데...'
결국 어제 반찬가게에서 5,000 원짜리 잡채를 사 와 저녁을 해결했고, (아마 새송이버섯 하나는 바이 바이 해야 할 것 같다. 참 음식 버리는 게 아깝다ㅜㅜ) 출근시간을 조정해 수요일 오후 하루 남편을 보내주기로 했으며(결국 남편은 안 가도 되었다.), 커피와 과자를 먹으며 오후 시간을 버텼다. 사실 5,000원을 더 쓴다고 커피를 마신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면 안될 것 같았기에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커피를 좀 안 먹어보겠다는 결심을 지키고 싶어서 나는 이제껏 내 몸과 마음을 힘들게 내버려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놓지 않는, 곧 방심(放心)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나하나 섬세하게 내 감정을 살피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오늘 불경을 읽다가 '언제나 한결같이 열심히 정진하며 자신을 독려하는 자'(앙굿따라니까야, 638쪽)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이 또다시 치우치지 않도록, 어떤 당위에 사로잡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잘 지켜봐야겠다. 아 참, 그리고 나를 잘하고 있어~라고 독려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12월 22일(일-월-화), 05:45, 집
그래도 집에서 이것저것 하며 나름 잘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