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과 헬륨 풍선

by 민들레


12월 31일. 아버님의 70번째 생신이셨다. 원래는 가족들끼리 1박 2일로 펜션을 잡아 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가 심해진 탓에 취소. 우리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칠순잔치를 대신하기로 했다. 아버님께서 오시기 전날, 집을 좀 치우고 싶어 졌다. 베란다 구석에 있는 중고로 사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1년 정도 된 퍼즐매트가 눈에 띄었다. 당근마켓 앱을 깔고 글을 올렸다. 마침 사고 싶은 사람이 등장했다. 38,000원인데 조금 깎아달라고 하길래 쿨하게 35,000원만 받기로 했다. 저녁에는 퍼즐매트를 가지러 오기로 하셨고, 그동안 아버님께 드릴 반찬을 조금 만들기로 했다. 메뉴는 콩자반! 유튜브를 보며 만드는 법을 숙지하고 압력솥을 꺼내 콩을 삶았다. 요리 유튜버 (윤이련) 할머니께서는 콩은 삶으면 거품이 많이 올라오니 양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콩자반을 처음 하다 보니 어느 정도가 적당한 양인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도 드리고 우리도 먹으려면 조금 많아야 할 것 같아서 엄마가 준 콩의 1/3 정도 넣었더니 콩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압력솥 추 위로 거품이 계속 나왔다. 콩자반 하느라 아이 보는 일은 온통 남편이 전담. 나는 매번 이렇게 일을 저지르고 나서 후회한다. 남편은 아버님 반찬을 해드린다고 애쓰고 있는 내게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콩자반과 씨름하는 도중에 퍼즐매트를 가지러 오셨다. 가족 모두 내려가 전해드리고 다시 콩자반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요리할 때는 뭔가 금방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시간을 보면 엄청나게 흘러가 있다. 한참 요리하고 있을 때 당근마켓으로 연락이 온다. "남편이 받아보니 머리카락이 있다며..." 나는 순간, '새 제품이지만 중고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럴 거였으면 새 거를 사셨어야지...'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래서 조금 확실하게 하고자 내가 예전에 구입한 내역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철석같이 새 물건을 구매한 줄 알았는데 내가 사용하던 물품을 구매한 것이었다! 아... 이런 기억의 오류가ㅜㅜ 얼른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10,000원 정도만 받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드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새 제품이라고 올리고 팔아놓고 10,000원이나 5,000원을 받고 파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었다. 굳이 그 금액이 없어도 지금 사는데 큰 문제는 없고, 또 우리 집 앞까지 와주신 게 감사해서 그냥 받은 돈 전부를 돌려드리기로 했다. 오히려 가져가신 분께 그 퍼즐매트가 짐이 될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분도 괜찮다고 하셨고, 몇 분 뒤 스타벅스 당근케이크 기프티콘이 도착했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돈은 조금 쓰더라도 신경을 덜 쓰는 게 이득이라는 걸 매번 경험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집안의 물건을 처분할 때면 당근마켓을 깔고 몇 천 원이라도 받으려 물건을 판다. 왠지 중고로 물건을 팔아 생긴 돈은 공돈이라는 느낌 때문일까? 겉에서 보면 집도 치우고 돈도 벌고 이렇게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퍼즐매트를 팔았던 것처럼 내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한다면 35,000원을 벌게 되더라도 어떤 게 이득인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그냥 누군가에게 주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버님이 오셨다. 여러 (대부분 사온^^)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그 전날 콩자반과 퍼즐 매트로 마음고생한 것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예전부터 눈여겨 둔 풍선 가게로 향했다. 아버님 칠순인데 뭐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가게를 둘러보다 풍선을 세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풍선은 8,000원이었다. 그런데 뒤에는 똑같은 풍선인데 28,000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왜 금액이 다르지? 헬륨을 넣으면 그렇게 된단다. 이미 사장님과 그래도 파티 용품 중 가장 저렴해 보이는 "풍선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에 "나는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커다란 HAPPY BIRTHDAY 헬륨 풍선을 사 왔다. 나는 아버님 생신이라서, 잔치를 크게 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들며 내 욕망을 채웠다. 풍선 하나 사는 게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계획에도 없는 28,000원의 지출을 하고 하루 사용하고 방치된 풍선을 보자니 나도 참 당황스러웠다. 반찬 하나 살 때는 그렇게 아까워하면서도 처음 들어가 본 풍선 가게에서 28,000원이나 쓰다니! 당근 마켓으로 공돈 벌겠다고 아등바등한 게 얼마 전이었는데, 기분에 따라 너무나 쉽게 소비하는 나를 보니 돈을 쓰는데 어떤 기준을 정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작정 통자의 액수만 채우면 되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 또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가계부를 다시 점검해보아야겠다.




할부지 생신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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