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산타처럼 엄마가 오셨다. 떡, 사골국, 닭, 딸기, 감자, 콩 등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말이다. 엄마가 오시기 며칠 전에 말했다.
"냉동고 비워둬~"
그동안 엄마가 오시지 않아 서운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것저것 해 먹다 보니 계속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생각보다 쉴 틈이 없었다. 역시나 아이는 오랜만에 오신 할머니와 신나게 놀았다. 엄마는 우리의 냉장고를 꽉꽉 채워주셨고 거의 버릴 뻔했던 잼과 김치를 재탄생시켜주시고 떠나셨다. 엄마가 와주셔서 잘 먹고 바쁘게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리듬대로 생활하지 못해 힘든 부분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저녁. 우리는 조각 케이크를 사 와 나름의 파티를 하려고 했다. 겨우 호두파이로 대신하고 저녁을 먹고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호두파이 한 조각에 초를 꽂고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노래를 불렀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남편은 와인 한잔씩, 아이에게는 보리차를 주었다. 잔을 부딪치며 '짠~'하고 놀다 보니 어느새 아이가 자야 할 시간이 지나버렸다. 보통 아이는 졸리거나 배고플 때 이상한 행동을 하곤 한다. 그날도 동물 피겨를 입에 물고 다니며 뱉으라고 해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시장에서 산 석류가 나중에 생각나 아이 잘 때쯤 먹으려고 했더니 맛이 없었는지 석류를 여기저기 흩뿌리고 내복에는 빨간 물이 들고 난장판이었다. 하... 자야 할 시간이 겨우 몇 십분 정도 늦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상황이 힘들어지다니!
사실 아이가 힘들게 한 게 아니고, 아이의 리듬을 제때 맞추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졸린 아이를 데리고 멀리까지 나갔을 때, 브런치 글을 무리해서 마무리하려 했을 때, 저녁에 와인 한잔 하고 싶어서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 때, 약간의 욕심 때문에 아이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아 결국에는 우리가 더 힘들어진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계획은 언제나 수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도 괜찮다.) 반찬이 하나일 뿐이라도 하루 세끼 챙겨 먹고 지내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아이의 리듬에 맞춰 생활했을 때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제껏 쌓아온 습관은 메인 요리를 챙겨 먹고, 유튜브 드라마 클립을 둘러보고, 요리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가끔은 아무 방해받지 않고 집을 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육아하며 나의 이 욕망들은 강제로 멈추게 된다. 그런데... 이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내 욕망을 살펴보면 주로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재밌는 걸 보고 싶다 등인데 살면서 먹는 것 그리고 보는 즐거움에만 탐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참 아찔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계속 맛있는 걸 찾게 되고 드라마 영상 하나를 보면 다른 것도 더 보고 싶어 졌다. 집을 치우고 싶은 것도 그렇다. 한번 꽂히면 쉽게 멈출 수가 없다. 오늘도 아이의 리듬에 맞춰 적당히 적당히 지내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 못하게 되는 지금의 일상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