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커 있었다

골드코스트 스프링브룩 마운틴

by 허준성


주말을 같이 보낸 친구가 물어봤다. 월요일에는 어디 갈 거냐고. 뭐 아침에 일어나 보고 찾아봐야지 하고 생각 없이 말했더니 친구가 걱정되었나 보다. 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고 새로운 나날들인데 친구는 뭔가 알려주고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나 보다. 이것저것 들려주는데 '스프링브룩(SpringBrook)'이라는 산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 그럼 월요일 투어는 스프링 브룩으로 낙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여행 서적에는 정보가 없는 곳이라 구글맵에 '스프링브룩'만 찍고 길을 나섰다. 골드 코스트에서 99번 국도를 따라 50분가량을 달렸다. 좁은 차도는 스프링 브룩 마운틴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다. 자칫 잘못하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곳이라 핸들을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달려 무인 비지터 센터가 나왔다. 간략한 지도 한 장 챙겨 윤정이한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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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아 오늘 어디 가면 좋을지 네가 골라봐”

“아 뭐야. 난 영어 못 읽어. 사진도 없는 지도를 보고 어떻게 골라”

“아빠 엄마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야. 아빠가 고른 곳이 별로이면 윤정이가 툴툴거리잖아. 크크 농담이고. 어차피 정보가 없는 곳이니 윤정이가 여행을 한번 짜 볼래?”


좀 고민하는가 싶더니 Purling Brook Falls Lookout을 골랐다. 어차피 우리도 모르는 곳이라 윤정에게 여행을 주도하게 맡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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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지도를 보니깐 녹색과 주황색 코스는 먼 것 같아. 수정이가 어리니깐 가장 짧아 보이는 보라색 코스로 가자” 오호. 동생을 고려해서 코스를 정하다니. 제법인데?


윤정이는 또래와 놀 때도 주도하길 원한다. 놀이를 정하고 룰도 정하고 분위기를 이끌고 싶어 하는 ‘리더형 아이’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가장 큰 키의 친구와 윤정이가 머리 하나 차이 날만큼 키가 작은 편이다 보니 대부분 아이들은 가장 덩치 큰 친구의 지시를 따른다. 윤정이 마음의 키와 보이는 키가 달라 의기소침할 때가 많았다. 가족과 함께하는데 좀 돌아가면 어떻고 좀 멋지지 않으면 어떠하리. 윤정이가 만든 여행이고 딸아이가 만든 일상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도를 보며 앞장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훨씬 큰 키의 윤정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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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ok Falls(계곡 폭포)로 하길래 작은 폭포 일 줄 알았는데 절벽 높이가 상당했다. 지난번 블루마운틴 시닉 월드에서 보았던 폭포와 비슷한 높인 인 것 같은데 여기는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어서 그런지 깊이 감이 더했다. 수량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떨어지는 계곡물은 얇고 넓게 퍼지며 기다란 도화지가 되었다. 해는 그 도화지에 옅은 무지갯빛을 그려 넣어 주었다. 비가 안 오면 수량이 부족해서 폭포를 못 볼 수도 있다던데 우리 여행 운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수정아 저게 폭포야. 멋지지? 언니가 골랐어. 무지개도 보여?”

“어~. 포보가 시~ 해요. 미모메X*&%&T” 두 살짜리 수정이의 영혼 없는 딴소리에도 윤정이는 신이 났다.

“아빠 폭포 뒤편에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저기도 가보자”

“그래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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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아니 방금 봤던 폭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폭포는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같은 자연의 모습도 이렇게 보는 각도와 시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폭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트래킹 코스를 통해서 내려갔으리라. 우리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려가 볼 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의 긴 여행이 윤정이와 수정이가 있으니 이만큼이라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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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윤정이가 고른 곳은 이름이 ‘Best of All Lookout’ 란다. 얼마나 좋으면 모든 Lookout에서도 가장 좋을까. 주차하고 나가려는데 수정이가 잠이 들었다. 두 번째 낮잠을 잘 자야 밤에 더 잘 자기도 하고 이제 곧 집을 향해 먼 길을 돌아가야 해서 깨우면 안 될 것 같다. 일단 엄마와 수정이는 차에 두고 윤정이랑 길을 나섰다.

Lookout으로 향하는 길. 원시림의 산책로가 너무 좋아 내가 다녀온 후 와이프도 혼자 다녀오라 해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아빠. 나랑 다녀오고 나서 아빠는 차에서 수정이 보고 있어. 내가 엄마랑 다시 볼게” “왜 윤정이는 봤으니 엄마만 가라고 하면 되잖아”


“으이구~ 엄마는 길을 잘 못 찾잖아. 그러니깐 내가 같이 가줘야지~”


원래 이렇게 어른스러웠었는지 아니면 오늘 여행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윤정이가 훌쩍 큰 것 같다. 어째 10년 가까이 산 아빠보다 딸내미가 엄마를 더 잘 챙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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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지막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시원 풍경이 가슴속을 뻥 뚫리게 만들어 주었다. 타국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소리치면 안 되는데 아무도 없던 전망대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사랑한다~ 우리 가족~~”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659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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