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오션 로드, 12사도

호주 멜버른

by 허준성

육아휴직을 하고 호주로 여행지를 결정했을 때는 원래 멜버른은 계획에 없었다. 원래는시드니에서 골드코스트로 넘어가는 것이 원계획이었다. 시드니에서 1주일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언제 또 호주를 오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급작스럽고도 즉흥적으로 멜버른에열흘 정도 들리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가 필립 아일랜드에서 펭귄을 보는 것이었고 또 하나가 그레이드오션 로드(Great Ocean Road)에서 12사도를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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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아일랜드는 초반에 성공적으로 다녀왔고 나머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좋은 날씨에 가려고 벼르고 별렀다. 근데 스마트폰의 일기예보가 바로 다음 날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흐릴거라는 날씨는 오전만 잠시 그랬다가 오후에 좋아지기를 반복하고 온다는 비는 거의 오지 않았다. 지나고보니 초반에 날씨가 좋았던 것인데 예보만 믿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를 미루어 둔 것이 실수였다. 중반을넘고 나서는 오히려 날씨가 좋아질 기미 없이 매일 구름으로 그득했다. 게다가 11월 멜버른의 봄바람은 이방인에게 매섭고 차가웠다. 이제 떠날 날이이틀밖에 남지 않아 날씨와 상관없이 오늘 갈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잔뜩이다. 어쩌겠는가. 그동안 너무 뜸을 들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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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2시간 가량을 달려 먼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시작을 알리는 메모리얼아크(Memorial Arch)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총길이 240km가 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실제 표지판 상의 도로 번호는 B100이다. 멜버른의 옆에 있는 질롱(GeeLong)이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B100번 도로는 토키(Torquay)를 지나면서부터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불린다.

질롱에서시작된 B100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토키 지역을 지나면서도 어디서부터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인지 구별이안 되는데 여기 메모리얼 아크가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시작점 같은 곳이다. 메모리얼아크에 보면 동상이 있는데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만든 건설 노동자를 기리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퇴역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시작된 해안도로는 이제 호주에서 대표하는 관광자원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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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아크에서 30분을 달려 론(Lorne)이라는작은 도시의 인포메이션에 들렸다. 멜버른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이훌쩍 지났기에 차 타느라 고생한 아이들의 몸도 풀 겸 여행정보를 얻으려 했다. 쭈뼛쭈뼛한 우리에게 나이지긋하신 안내원이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와 주었다. 그분의 친절하고도 상세한 설명이 10분이나 이어졌다. 너무 감사해서 뭐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막연하게 12사도만 생각하고 출발한 여행이었는데 덕분에 하루 일정이쉽게 짜였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수정이가 배가 고팠나 보다. 슬슬 짜증을 내며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다. 배고픈 수정이는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미리챙겨 먹이는 수밖에. 이대로 계속 갔다가는 사단이 날 듯하여 가는 길에 있는 케넷 리버(Kennett River)에 있는 가게에 들렸다. “아빠.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간단하게 간식거리를 사고 점원에게저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코알라를 보려고 모인 것이란다. 어디 숲속이라도 들어가야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도로 옆 나무에 코알라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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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나와 사람들 사이로 슬며시 끼어들었다. 야생 앵무새들이 사람들사이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먹고 있고 야트막한 나무에는 코알라가 잠을 자고 있었다. 호주의 명물인 예쁜앵무새들은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사람들의 손이며 어깨에 서슴지 않고 앉아 먹이를 먹었다. 한국에서는앵무새 밥 한번 주려고 비싼 돈 내고 앵무새 학교에 가보곤 했는데 여기서는 길거리에서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라니.주변 분이 나누어 주신 먹이를 손에 올리기가 무섭게 착 와서 앉는다. 부리와 혀로 껍질을까먹는 모습이 신동방통하다. “꺄~” “아빠 앵무새가 물것 같아” “나도 나도 내 손에도 새 오게 해줘” 아이들이너무 신나 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더 있다가는 해가 질 듯하여서 달래고달래 겨우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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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가렸을 때 바다는 도로를 집어삼킬 듯 짙은 회색의 파도를 몰아치다가도 잠시라도 하늘이 열리면 언제 그랬냐는듯 푸른 얼굴로 환하게 웃어준다. 80km 속도의 도로는 본격적으로S자를 그리기 시작한다. 굽어지는 곳마다 제한 속도가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제한 속도가 낮은 곳이면 여지없이 이어지는 절경에 자연스레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푸른 바다 시원함과 도로와 함께 달리는 초록의 언덕 자락이 조화롭게 버무려진다. 먼 시간을 달려야 하지만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 마법의 길이었다. 풍경이부리는 마법에 야생의 날것까지 더해진다. 길을 가다가 보면 야생 코알라가 길을 막기도 하고 왈라비가무심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길은 어느새 Great Otway 국립공원으로 접어들었다. 방금까지도 끝이 없을 듯 이어지던 푸른 바닷길은 녹음이 짙은 원시림으로 바뀌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 해서 바다만 따라 달리는 줄 알았더니 아폴로 베이에서12사도가 있는 Port Campbell 국립공원까지는 거진 숲길이었다. 숲길에서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평소에도도심을 벗어나면 핸드폰 3G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Otway 국립공원을 지날 때는 핸드폰 신호가 거의 잡히지 않는 것이다. 핸드폰에 데이터통신이 안되니 구글맵도 전지전능한 힘을 잃었다. 백업으로 준비했던 오프라인 지도 앱마저도 GPS 신호를 못 잡는다. 게다가 기름도 간당간당했다. 총체적 난국이 숲과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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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00 표지만 따라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안내 표지판도 넓디넓은 길에는 가물에 콩 나듯 보인다. 당최 맞게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마음은 점점 불안해진다. 야생 동물을 조심하라는 표지판만 군데군데보이고 여행자를 위한 도로 표지판 설치에는 인색한 것 같다. 그렇다고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완벽하고 싶은 아빠니깐.


그렇게 한 2~3시간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는데 시계를 보니 딱 30분 지났나 보다. 태연한 척도 이제는 더 못하겠고 어디 사람이라도있으면 물어봐야지 할 때쯤 Lavers Hill이라는 갈림길에서 오랜만에 표지판을 만났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맞게 온것 같다. 근처 휴게소에 설치된 간이 주유기도 있어 고생한 차도 배를 불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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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에 출발해서 거의 5시간이상을 운전한 것 같다. 만약 고속도로를 통해 12사도가있는 포트 캠벨 국립공원으로 바로 왔다면 3시간도 안 걸릴 거리이지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조금은 돌면서느릿느릿 감상하며 가는 것이 맞다. 12사도(TwelveApostles) 비지터 센터에 주차했다. 마음은 이미 바다에 가버렸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둘째는 엄마한테 떠맡기고 윤정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휴~~' ‘아~~’

무슨 말이 필요하랴. 얼마나 보고 싶었던 장면이던가. 바다가 만들어낸 풍경에 취해 우리 가족은 대화도 잊고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을 정도였다. 2만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석회암을 깎아낸 바다. 오늘도 쉬지 않고 바위를 조각하고 있었다. 파도에 깎이고 깎이며 4개는 이미 바다에 누워 쉬는 것을 선택했다. 12개였던 바위는 이제 8개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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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숨 막히는 풍경을 사진에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내 실력도 아쉽고 푸른 하늘을 내어주지 않는 자연도 아쉬웠다. 저녁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근처 숙소를 알아보고 하루를 더 보낼 것인지 고민을 했다. 욕심 같아서는 하루 더 있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윤정아 오늘 차 오래 타서 힘들었지?”

“음. 쪼금.헤헤. 그렇지만 오늘은 아빠가 꼭 보고 싶은 거라 해서 참을 수 있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단한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길도 차 안도 조용해진밤. 운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우리욕심으로만 여행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든다. 모두가 만족하는 하루를 보내기가 쉽지만은않은 것 같다. 이제 곧 따뜻한 북쪽 도시 골드코스트로 간다. 잠시숨을 돌리고 아이들이 눈높이에 맞춰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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