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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Jun 26. 2018

여행을 끝내면서 또다시 떠남을 기약해 본다|무로란 2

홋카이도 한 달 살기

“짐 미리 싸고 나갈까? 아니면 먼저 마실 다녀와서 밤에 짐 쌀까?” 


그동안 수많은 캠핑을 다니면서도 보통 2박 2일, 길어야 3박 3일이었다.(보통 금요일 밤에 떠나는 편이라 1박이 더해진다.) 제주도 한 달 살기도 간접적으로 경험했었고 가족과 빨리 같이 지냈으면 했기에 그 끝이 반가웠었다. 


내 기준으로 가장 길었던 여행인 홋카이도 한 달 살기가 이제 내일이면 끝이 난다. 

때로는 쉬엄쉬엄, 때로는 바쁘게 보냈던 한 달. 시간은 추억이 되어 차곡차곡 단층처럼 단단하게 쌓였다. 


이제 남은 건 오늘 하루. 나의 물음에 와이프는 일단 나가자는 눈치다. 그래. 짐은 밤에 정리하기로 하고 마지막까지 다시 달려 보기로 했다.   


“오빠. 어디로 가지?” 

“새로운 거 말고 그동안 마주했던 것 중에 한국 돌아가면 가장 생각나고 그리울 것 같은 것을 하자.” 

“오호. 좋은 생각이야. 음… 그럼… 난… 그거!!” 

“혹시… 덮밥?” 

“역시. 통했어. 텐카츠 갔다가 무로란 8경 마저 보면 되겠네.” 



대미는 무로란의 맛집 텐카츠로 정했다. 풍경은 카메라에 담은 사진과 영상으로 되새김하면 되지만 먹을거리는 그리 못하지 않냐는 단순한 생각에서다. 그런 단순함까지 닮아서 우리 부부는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아쉬움도 맛난 음식을 먹으러 달려가는 설렘을 이기지 못했는지 텐카츠로 향하는 내내 들뜬 마음이었다. 주차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름 3번째 방문이었고 친절하시던 주인 할머니께 마지막이라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백발이 곱던 할머니는 안 계시고 동생쯤 되어 보이는 다른 분이 계셨다. 


“아빠. 그때 그 사탕 주시던 할머니 안 계신다. 힝.” 

“그러네. 우리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인사는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 



맛을 기억하려 온 입의 미각에 정신을 집중하며 먹었다. 이제 이 덴동과도 끝이구나. 더 길게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지만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 눈치에 무거웠던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어. 윤정아 그 할머니 오셨네.” 

“우와~ 할머니. 곤니찌와~~. 엄마. 우리 이제 한국 간다고 말해줘. 너무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와이프는 짧게 영어로 인사를 드렸다. 알아들으시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어주신다. 아쉬운 발걸음을 디디며 차에 올랐다. 무로란 8경 중 하나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정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빠. 저기 봐봐. 할머니야. 할머니가 손 흔들어.” 


건물 뒤편 2층 창문으로 할머니가 양손을 크게 흔들고 계셨다. 설마 우리에게 보내는 인사인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려고 가게도 비우고 2층으로 올라오신 모양이다. 창문을 내리고 우리도 화답했다. 각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손만 열심히 흔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저마다 나름의 인사를 나눴다. 내가 차를 몰지 않으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슬슬 속도를 올렸다. 


할머니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셨다. 잠시 스친 인연이었지만 어쩌면 편안한 인상과 미소가 우리를 다시 오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에 잠시 들렸던 ‘금병풍’과 은색 병풍을 펼친 것 같다는 ‘은병풍’ 등 해안을 따라 줄지어 있는 무로란 8경을 차례차례 지나, 하얀 등대가 인상적인 ‘치큐미사키’ 등대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는 구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태평양 바다 끝 수평선이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길게 나눠주지 않았다면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테다. 


망망대해를 보면서 머리를 비우면 마음이 채워지는 묘한 곳이었다. 새하얀 등대와 푸른 바다의 대비가 눈이 시릴 정도로 쨍했다. 이 풍경과 마주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자연으로 배웅 나갔었나 보다. 



‘땅~ 땅~’ 


어디선가 청명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망대 뒤쪽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종을 누군가 울리고 있었다. 행복의 종? 종 아래에 있는 간략한 종의 소개에 따르면, 종을 울리면 행복이 온다는 ‘행복의 종’이라는 것이다. 종을 울려서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이미 여행을 통해 행복을 찾은 후에 치는 종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빠 목말을 타고 종을 치는 윤정이의 웃음소리에는 ‘행복’이라는 숨결이 담겨 있었다. 



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남길 때도 ‘딱 한 입만 더’ 

친한 지인들과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도 ‘딱 한 잔만 더’ 

살을 빼야 한다면서도 달달한 케이크도 ‘딱 한 입만 더’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맺고 끊고 가 정확하지 못해 항상 미련이 남는 편이다. 이제 짐을 싸러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미련병이 아직 치유가 덜 되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해 집과 반대 방향으로 자꾸 ‘딱 한 곳만 더’를 외치며 바다를 따라 움직였다. 이제 진짜 이것만 보고 돌아가자며 차를 멈춘 곳은 ‘톳카리쇼’. 



“오빠. 저기 애들하고 서봐. 오빠 사진이 영 없어. 내가 좀 찍어줄게.” 

아이들 양팔로 하나씩 안고 포즈를 취했다. 


“뭐해? 안 찍고. 애들 무거워 빨리 찍어.” 

“어.. 어.. 오빠 내 핸드폰 못 봤어?” 

“아빠. 엄마 또 핸드폰 못 찾는다. 아빠가 전화 걸어 주든지.” 

전화를 걸어 봤지만 차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다. 


“언제까지 있었지? 아까 등대에서 사진 찍었잖아.” 

“아. 맞다. 등대에서 내려와서 화장실 갔었잖아. 거기 둔 것 같아.” 


여행 시작에도 가방을 잃어버리더니 여행 마지막에는 핸드폰까지. 어휴. 급하게 차를 몰아 다시 치큐미사키로 돌아갔다. 


“있어?” 

“응 다행이다. 허겁지겁 들어가는데 일본 여자분이 나오면서 혹시 이것 찾냐며 주더라.”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한국에 도착 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와이프가 또다시 가방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지하철 차고지까지 가서 찾아왔다. 매번 찾긴 했지만 시작과 끝이 아주 버라이어티 했다. 끈질긴 인연(?)으로 아직 그 가방은 잘 쓰고 있다. 가방을 다시 사고 싶다는 와이프의 바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치 없는 남편은 계속 찾아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톳카리쇼는 무로란 8경 중 개인적으로 가장 풍경이 뛰어난 곳이었다. 마치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12사도 와도 닮은 듯했다. 파도가 조각한 돌기둥, 회색 줄무늬가 선명한 절벽까지. 


모양은 닮았지만 색은 전혀 달랐다. 사막 같은 황량한 느낌의 12사도와는 달리 절벽 위 빼곡히 자리 잡은 ‘조릿대’는 따뜻한 초록의 향연이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녹색과 연녹색의 잎이 주거니 받거니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바람과 풀이 ‘사그락 사그락’ 속삭이는 소리가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짝콩. 기분이 어때?” 


“마지막에 엄청 서운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내일 떠난다고 하니 그냥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또 집이 그립기도 하고 그렇네” 


“나도. 한 달이 참 행복했나 봐. 요기 가슴 안이 꽉 찬 것 같아.” 



“우리 제주도에서 한 달 살면서 마지막 날 해외 한 달 살기를 하자했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졌잖아. 오늘이 홋카이도 마지막인데 다음은 어디 가지? 지금 이야기하면 또 이뤄지는 거 아닐까?” 


“어디든. 우리 가족이 함께라면 그게 바로 여행이고, 그게 일상이지 뭐.” 


“아빠. 일본말로 ‘안녕’은 뭐라고 해?” 


“사. 요. 나. 라.” 


여행을 시작하면서 그 끝을 걱정했지만, 

여행을 끝내면서 다시 떠남을 기약해 본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안녕하세요? 홋카이도 그해 여름 끝자락 저자입니다. 

부족한 글과 사진에 그동안 보내주신 공감과 구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통 연재를 먼저 하고 출간이 되는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과 달리

먼저 출간을 하고 나서 연재를 하는 바람에 전체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

(출판사도 먹고살아야죠..)


챕터 중간중간이 빠지다 보니 전체적으로 맥락이 끊어지는 감이 있긴 하나 책으로 접하시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홋카이도 여행정보, 한 달 살기에 대한 여행 팁까지 모두 연재로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


15주 매주 화요일. 브런치와 다음을 통해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저에게는 다시 못 올 행운이었습니다. 설레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아재 개그라 하나요?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과 돈이 모두 있으면 다리에 힘이 없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시간도 넉넉하고 돈도 여유로운 시절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미 왔을 수도 있고 영영 남의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만든 기준, 그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떠나세요...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먼저 정하고 나서

그 후에 걱정하도록 해요. 


시간은 언제 내고, 돈은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만 하면 

떠남이라는 설렘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34443033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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