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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Jun 19. 2018

별나라를 찾아서|하코다테

홋카이도 한 달 살기

“아빠. 내가 뭐 찾은 것이 있어. 나 여기 가고 싶어.”


윤정이가 며칠 전부터 홋카이도 여행 서적을 유심히 보더니 가고 싶은 곳을 찾았나 보다. 


“어딘데?”

“여기. 별 모양 보이지. 이 별나라에 가고 싶어.”

“응? 별나라?”



윤정이가 가리킨 곳은 홋카이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 ‘하코다테’였다. 사진에는 정말 별 모양의 지형이 보였다. 하코다테에 있는 ‘고료카쿠(Goryoukaku)’라는 성이었다. 아직 한글이 서툴러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마 모르고 골랐을 테고, 단순히 모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따라 하고 가이드북의 코스대로만 다닐 거면 어쩌면 이미 그건 남의 일상을 따라 하는 것이지 여행이 아닐지 모른다. 정보는 그냥 참고만 할 뿐 우리만의 일상, 일상 같은 여행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 달 살기’라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선을 넘나들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일정을 잘 짜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일정은 항상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동의한 적 없는 일정에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끼워 맞추다가는 정작 아이들은 얻는 것도 없이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빡빡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여행을 왔는데 정작 더욱 바쁜 하루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먼 타국까지 와서 집에서만 멍 때릴 수는 없는 일. 함께하는 가족 모두가 여행을 주도하고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코다테는 꼭 가겠노라고 윤정이와 약속했다.



니세코에서 하코다테는 약 170km 정도로 제법 먼 거리다. 특히나 전체 거리의 절반은 제한 속도 50km의 국도라서 규정 속도 맞추다 보면 3시간도 훨씬 더 걸리는 곳이다. 한번 다녀오기 쉽지 않으니 날씨가 좋을 때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윤정이가 왜 하코다테를 안 가냐고 화를 내던 아침, 다행히 일기예보를 보니 흐렸다가 오후부터 개인다고 했다. 윤정이의 별나라(?) 여행도 중요하지만, 하코다테산에서의 야경을 성공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해서 저녁에 맑아진다는 예보를 믿고 떠났다. 하코다테에서 첫 일정은 당연히 ‘고료카쿠’. 일단 아이의 소원부터 풀어줘야 했다. 아니면 온종일 투덜거릴 테니. 


부지런히 달려 고료카쿠 전망대부터 갔다. 아무래도 전체적인 모습을 둘러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고료카쿠에는 공식 주차장이 없으니 주변에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요금은 30분에 100엔 수준으로 비싸지는 않다. 오후부터 갠다던 하늘은 이미 구름 한 점 없이 눈부시게 빛이 났다. 역시 우리는 여행 운이 좋다니깐.



역시나 아이들은 무료였고 어른 두 명에 1,680엔을 내고 전망대로 들어갔다. 고료카쿠 성은 물론이거니와 하코다테 시내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사진에서 보던 5 각형의 별 모양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사이에 별 모양의 성곽이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 


“왜 성벽을 별 모양으로 지었을까? 보통은 최소한의 투자로 많은 것을 지키려면 둥근 것이 좋을 텐데.”

“아빠. 아니면 우주선이 내려왔다가 못 올라간 게 아닐까? 응?”


1853년, 여러 척의 함대를 이끌고 나타난 미국이 일본에 개국을 요구하였고, 1854년에 일미화친조약을 맺으며 하코다테항을 개항하였다. 이에 하코다테 방어와 통치를 목적으로 고료카쿠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일본도 서구 열강에 굴복한 역사가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고료카쿠 공원으로 들어섰다. 고료카쿠는 봄이 최고 관광하기 좋은 기간이다. 성벽을 따라 100년이 넘은 왕벚나무들이 빼곡히 심겨 있다. 지금은 녹색의 잎만 남은 벚나무 사이를 잠시 산책을 하고 보물 찾기를 시작했다. 지오캐싱 앱상에서 별 모양 다섯 곳 꼭짓점에 모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첫 꼭짓점을 시작으로 5개의 보물을 모두 찾았다. 윤정이가 며칠 전부터 기대하던 보물이라 기쁨이 남달랐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전망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봐 두었던 ‘럭키 피에로’로 향했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하코다테 오면 럭키 피에로의 햄버거는 꼭 먹어봐야 한단다. 평일 점심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역시나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대박은 못해도 중박은 하겠지. 


여기 럭키 피에로가 주목받는 것은 오로지 하코다테에만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식재료는 본사에서 매일 배달하여 주는데 하코다테에서 생산된 식재료만을 고집하고, 신선한 상태로 제공을 해야 한다는 정책 때문에 하코다테 외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점원은 넘버원 세트가 가장 인기라며 어떠냐며 물어본다. 넘버원 세트가 뭐냐고 했더니 상하이 치킨버거가 들어간 세트라고 한다. 하코다테 소고기가 유명해서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치즈버거와 넘버원 세트, 오징어도 하나 추가로 시켰다.


먼저 소문대로 상하이 치킨버거는 평소에 맛보지 못한 스페셜한 맛이었다. 바비큐 맛이 조금 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치즈버거는 신세계의 맛이었다. 육즙이 넘쳐흐르듯 한 두꺼운 고기 패티는 ‘내가 햄버거의 주인공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빵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프랜차이즈 햄버거와는 확연히 달랐다.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 하나 남기지 못했을 정도로. 


맛은 달랐지만 역시 햄버거는 ‘Fast’ 푸드였다. 맛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꼴까닥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5분도 안 되어 식사가 끝났다.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다른 이들을 뒤로하고 하코다테 야경을 즐기기 위해서 로프웨이 타는 곳으로 갔다. 이탈리아 나폴리와 홍콩에 이어 세계 3대 야경에 손꼽히는 하코다테 야경. 그 하코다테 야경을 빼고 홋카이도를 봤다고 하지 말라는 누군가의 자신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윤정아. 아빠하고 먼저 여기 근처 산책하자. 곤돌라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거든”

해가 지는 6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로프웨이 선착장 근처 ‘모토마치 거리’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엄마는? 나는 다 같이 다니는 게 좋은데…”

“수정이가 일어나면 엄마도 올 거야.”


고료카쿠에서 하코다테 산으로 오는 도중 수정이가 잠들었다. 보통은 잠이 들었더라도 차의 시동이 꺼지면 일어나는 편인데 오늘은 영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일본 개항지였던 하코다테의 모토마치 거리는 과거 개항시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인천 근대역사 거리와 아주 흡사했다. 270년이 훌쩍 지난 일본식 고가옥부터 구 공회당, 모토마치의 성당 등 서양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건축물들이 군데군데 남아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고건물이 개별로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느낌으로 모토마치 거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어느새 5시가 넘었다. 우리나라보다 더 동쪽에 있어 6시 정도면 해가 진다(여름 기준). 발걸음을 서둘러 로프웨이 탑승장으로 갔다.


하코다테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로프웨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자동차는 야경이 시작되는 오후 5시(겨울철에는 4시)에는 모두 내려와야 하고 버스는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로프웨이를 이용한다.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백 명이 넘게 타는 대형 로프웨이라서 그런지 한 번에 모두 탑승을 했다. 채 5분이 걸리지 않고 우리는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오전에 봤던 고료카쿠 타워부터 하코다테항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있고 올라온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야경을 보다 보면 저녁이 늦을 것 같아 준비해온 유부초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오빠. 밥을 이따가 먹을 걸 그랬어.”


사람이 별로 없길래 밥 먹고 천천히 움직였는데 한 20~30분 사이 엄청난 인원이 모였다. 10분마다 최대 125명씩 나르는 로프웨이를 신경 쓰지 않은 죗값일까. 전망대의 난간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난간 앞으로 사람들이 2겹씩 빽빽이 줄을 서 있었다. 어른들이야 어찌어찌 보겠는데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라도 난간에 붙어 있을걸.



가을이 훌쩍 다가온 홋카이도의 밤바람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사람들로 둘러싸인 전망대는 아이들과 함께 야경을 즐기기에는 불편했다. 하는 수 없이 엄마와 아이들은 전망대 1층으로 내려갔다. 


해가 지면서 슬슬 도시에 불이 켜졌다. 세계 3대 야경이라고 하더니 사진을 찍는 것도 잊은 체 넋 놓고 야경을 봤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며 하나둘씩 도심에 켜지는 불빛이 정말 미니어처 마냥 반짝였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숨죽여 초 단위로 어두워지는 야경을 연신 눈에 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찾는 야경이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야경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 덕에 구름과 안개로 못 보는 날도 많다고 한다. 오늘 이렇게 깨끗한 야경을 허락한 하코다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속으로 남겼다. 이제 중반을 넘어 한 달 살기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지금.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야경이기도 했다. 야경이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멍하니 눈의 초점을 풀어놓게 만들고,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 주는 듯한 편안함이 좋았다. 


도심의 불빛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고민의 불은 하나씩 꺼졌다. 




Travel Tip. 하코다테 고료카쿠

입장료 : 어른 840엔, 어린이 420엔(만 6세 미만 무료)

영업시간 : 여름철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겨울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차 : 자체 주차장 없음. 주변 주차장 30분 100엔

전화번호 : 0138-51-4785(네비게이션 포인트)


Travel Tip. 하코다테 로프웨이

이용요금 : 왕복 성인 1,280엔, 소인 640엔(6세 미만 무료 - 성인 1명당 한 명까지만)

운영시간 : 4월~10월 오전 10시 ~ 오후 10시(겨울철 오후 9시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

주차 : 주차 불가. 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시간당 100엔, 하루 종일 500엔)

전화번호 : 0138-23-3105(네비게이션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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