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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l 23. 2015

좋은 물건과 좋은 오빠

비싼 걸 구경하는 게 제 일입니다. 여행잡지와 시계잡지와 남성잡지를 거쳐 일한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고가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건을 써 봤고, 만드는 곳에 가 봤고, 물건을 팔거나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적도 근처에 있는 호사스러운 풀 빌라의 개인용 해변에서 물고기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시계줄과 버클에도 다이아몬드가 박혀서 해외 토픽에도 종종 나오는 손목시계를 차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나 저희 일가의 소득으로는 손댈 수 없는 물건인 만큼 제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죠. 


솔직히 말하면 제 스스로도 허영이 있습니다. 남들 모르는 좋은 물건을 좋아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분에 넘치는 호사에 바쳤습니다. 사실 그런 물건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꽤 많은 물건을 사서 국제선 화물 편에 날려 보내야 했습니다. 벨기에산 고급 공책과 영국산 고급 편지지와 코도반 지갑과 이집트산 엑스트라 파인 코튼으로 만든 수건과 아무 로고도 없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반팔 티셔츠와 아주 촘촘히 꿰맨 구두 같은 걸 산 적이 있습니다. 혼자 독일 차를 빌려 아우토반을 달려 리히텐슈타인 공국까지 가거나 몰디브에서 스킨 스쿠버 스폿 지도를 기념품이라고 산 적도 있습니다. 적고 나니 머쓱하네요.

 

그런데 좋은 것들에 파묻혀 살다 보니 하나의 관점이 생겨났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구나, 이 중에서 나는 무슨무슨 이유로 이건 좋고 저건 잘 내키지 않는구나, 싶은 생각이 장마철이 끝나면 생겨 있는 물가의 잡초처럼 자라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저는 평소에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들 사이에서 뭔가 골라 페이지를 만들려면 싫어도 그런 식의 논리가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이나 논리는 사적으로도 중요합니다. 홍콩의 후미진 해변에 있는 살풍경한 건물 속의 레인 크로포드 할인 매장 같은 곳에서 70% 세일해서 20만 원인 것과 60% 세일해서 21만 원인 것 중 무엇을 골라야  할지 빨리 정해야 할 때가 한 예입니다. 저는 그 논리를 만드는 데 수 년과 X원을썼습니다. X값이 얼마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물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방금 고백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좋은 물건의 기준을요.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비에 참고가 될 정보를 찾아 알리려 노력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견해입니다. 좋은 물건과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전혀 다릅니다. 좋은 오빠랑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제 관점을 모두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아까 제가 떨었던 호들갑보다 더 좋은 경험을 많이 하신 업계의 선배들과 소비자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어 사견을 드러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소비 관점과 논리를 가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물건은 애초부터 있을 수 없습니다. 크기, 무게, 재료, 원산지, 디자인, 제작자, 브랜드, 인지도, 가격 등 물건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항목은 무한합니다. 수많은 항목 중 어느 부분에 점수를 줘서 내 소중한 비용을 지불하고 어떤 물건을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까지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좋은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뭔가 입고 거리에 나가서 "그래서 이렇게 입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생각만 해도 무안하네요). 그것에 동감해 줄 사람도, '전혀 아닌데' 싶어 자신의 기준을 만들 사람도, '영 별로지만 저 부분은 참고할 수 있겠다'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뭐든 좋습니다.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입니다. 제가 생각해본 좋은 물건의 기준이 이걸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소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니면 제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처럼 보람되는 일은 없겠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도 전부터 부끄럽고 걱정이 됩니다. 악성 댓글도 겁납니다. 제일 걱정되는 건 낮은 조회수지만... 이런 건 나도 쓰겠다 싶을 정도로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 노력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읽으신 글을 적은 박찬용이라고 합니다. 남성지 <루엘>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물건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페이지를 만드는  직업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린다 한들 모르실 분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루에 3천 자씩 썼다는 버트런드 러셀처럼 창작력이 왕성한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 문단만 썼다는 헤밍웨이처럼 문장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랬다면 자기소개를 하기도 더 나았을 텐데. 뭐 그래도 생긴 대로 무리하지 않고 사는 건 나쁘지 않은 일 같습니다. 이건 제가 온갖 것을 사고 만져본 끝에 얻은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썼던 이 문단을 뒤로 뺐습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좋은 물건의 기준, 첫 소재는 좋은 호텔입니다. 휴가철이니까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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