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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24. 2017

힙 타운 공식_02


힙 타운 공식_01에서 이어집니다.


동네가 뜬다는 의미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뻗는다. 세련된 동네가 된다는 건 문화의 영역인 동시에 부동산의 영역이기도 하며, 이는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정신과 물질이 동시에 엮여 있다는 뜻이다. 문화/정신적인 영역에서 동네가 뜬다는 건 멋진 공간들이 생김을 의미한다. 을지로 3가의 신도시나 합정동의 앤트러사이트, 필운동의 바버샵 같은 곳은 각자의 주제의식이 명확한 세련된 공간이다. 부동산/물질의 영역에서 동네가 뜬다는 건 그 동네가 유명해져 유동인구가 늘어나서 건물의 매매시세/월세/권리금 등이 올라감을 말한다. 연남동의 어느 커피숍이 세들어 있는 건물은 6년 사이에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 경리단길은 1년 만에 권리금이 몇 배나 올랐다.


문화/정신적 영역과 부동산/물질 영역은 잘 섞이지 않는다. 보통 문화/정신적으로 앞선 사람들은 부동산/물질 영역의 자원이 부족하고 부동산/물질 영역의 자원이 풍부한 사람들이 문화/정신적으로도 풍족할 확률 역시 낮다. 흔히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 안에서의 충돌은 문화 세입자와 물질 건물주의 충돌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문화/정신적으로도 앞서 있으면서 부동산/물질 영역으로도 풍족한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너저분한 꼴을 볼 일이 아예 없는 성북동, 동부이촌동, 평창동 등의 동네에 각자의 성채 같은 공간을 차려두고 있다. 


힙 17이라는 토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씨앗이다. 나는 이들을 힙 프로메테우스라는 말로 설명하는 걸 좋아한다. 서울의 힙 타운이 태동하는 과정에서는 각각의 힙 프로메테우스들이 불꽃을 들고 서울로 내려왔다. 홍대에는 음악인이 있었다. 90년대 후반의 아주 전위적 음악이었던 일렉트로닉, 하드코어, 힙합의 공연장이 홍대 곳곳에 산재했다. 대형 호프집 혹은 고학생 분위기의 촌스러운 술집이 있던 신촌 및 이대 지역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삼청동에는 출사족과 와인 애호가들이 있었다. 삼청동이 각광받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은 디지털 카메라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던, 디씨인사이드가 그 이름대로 기능하던 때다. 그때 사람들은 출사라는 기묘한 취미를 만들어서 옛 동네의 모습이 남아 있는 삼청동을 줄지어 다녔다. 삼청동은 와인이 대중화되기 전 와인바 밀집률이 가장 높은 장소이기도 했다. 낮의 출사족과 밤의 와인 애호가들이 지금의 삼청동을 있게 했다.  


한남동 등 용산구 일대의 힙 프로메테우스는 외국인과 게이였다. 이국적인 느낌은 서울 힙 타운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데 이태원은 태생부터가 이국이었다. 거기 더해 이태원은 뿌리깊은 게이 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서구권 국가에서 게이는 이미 검증된 일류 창작자 겸 소비자다.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쉬리처럼 게이는 힙 쉬리라 불러도 될 정도로 새로운 곳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어떤 ‘신 스타터’역할을 하며 서울의 뜨는 동네를 만들어왔다.


구시가지, 대형상권 배후, 대학, 강남 접근성 중 3개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뜨다 만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곳이 문래동이다. 문래동 역시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와 예술인들의 이주로 몇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동네의 이미지가 바뀔 정도까지는 가지 못했다. 앞 가설에 대입하면 문래동엔 대학이 없고 강남 접근성이 떨어진다. 요즘 ‘샤로수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고 노력하는 서울대 입구에는 주변 대학이 서울대학교 하나뿐이고 역시 강남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 동네들이 별로라는 게 아니다. ‘힙 타운’으로 세간에 오르내리기의 조건이 비교적 부족하다는 뜻일 뿐이다.


서울의 인구와 가처분소득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예전에 떴지만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 곳도 있다. 가장 극적인 낙폭을 보인 곳이 신촌과 이대다. 시세와 권리금 기준으로 서울시내 5대 상권에 들어가던 신촌 권역은 홍대 권역이 커진 이후로 5대에서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개성 있는 가게가 많던 이대역 부근은 무분별한 대형 쇼핑몰 개발과 시대착오적으로 높은 임대시세 등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만 이곳의 특징이었던 풍부한 대학생층과 교통 접근성 자체는 그대로인 만큼, 임대시세만 바뀐다면 이곳이 다시 세련된 동네가 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가설은 강남권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 가설로는 방배동 카페골목이 엄청나게 번화했다가 완전히 식은 이유를, 압구정 로데오 일대의 교통 접근성이 딱히 좋지 않았음에도 엄청나게 인기가 좋았던 이유를, 택시 아저씨들이 쉬어갈 정도로 한산했던 가로수길이 강남의 명동이 된 이유가 전혀 밝혀지지 않는다. 강남권의 세련된 동네들은 이 가설과는 완전히 다른 조건과 리듬으로 움직인다. 강남의 신 스타터가 추정되지 않아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강남은 원체 비싸고 세련된 곳이라 저자본 힙 프로메테우스들이 신 스타터 역할을 할 수 없긴 했다는 정도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서울의 힙 타운이 말해주는 가장 큰 요소는 축적된 시간이라는 정신적/비물질적 가치가 실제 세계의 고부가가치로 전환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힙 17이 위치한 서울의 구시가지 중에는 해방촌처럼 주택시세가 낮은 곳도 꽤 있었다. 대신 이곳에는 시간이 쌓여 형성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낮은 주택들이 있다. 구시가지의 도시적 요소들은 사람들을 더 움직이게 한다. 길가의 가게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쉽게 길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면 사람들의 상호 이동성 역시 높아진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호 이동이 가능한 동네를 돈 주고 바로 만들 수는 없다. 12년 된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서는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어떤 동네가 각광받으면 거의 필연적으로 원주민이 소외된다. 흔히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묘사되는 사람들은 급등한 시세 때문에 쫓겨나는 문화-저자본 세입자다. 하지만 사실 진짜 피해자는 평생 살아온 동네가 남의 손에 바뀌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저자본 원주민이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곳은 세탁소와 철물점 등 원주민 생활밀착 점포였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동네를 통째로 아파트단지화시키는 건설회사와 원래 잘 있던 동네를 ‘재발견했다’고 으스대는 젊은 힙스터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정든 동네가 망가지는 건 똑같으니까.


매거진 B 50호 서울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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