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 2016년 9월호에 ‘뜨는 동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원고를 냈다. 직설적인 제목처럼 서울에 있는 일군의 유명한 동네들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원고였다. 이 원고를 만들기 위해 나는 몇 가게를 취재하고 서울시 통계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데이터를 참고해 몇 가지 요소를 추출한 후 가설을 만들어 그 가설에 입각해 앞으로 부상할 동네를 예상했다.
그 원고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아낙네’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이버 블로거의 무단전제 및 배포가 시작이었다. 그는 내가 봐도 정성스러울 정도로 그 글을 무단 편집한 후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 몽골에서 불법 방영해 시청률이 80%를 넘겼다는 <아내의 유혹>처럼 내 원고는 나와 아무 상관없이 엄청나게 확산됐다. 내 친구의 페이스북 피드에 무단전제한 내 원고의 링크가 올라왔다.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에게도 기사 잘 봤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무튼 그 원고에 말이 되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뜨는 동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내가 붙인 제목이 아니었다. 더 직설적이고 좋은 제목이지만 내가 표현하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처음 생각한 이 기획의 이름은 ‘힙 타운 공식’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구도심 재부상 과정에 어떤 공식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요소를 추출하기 위해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세련된 곳으로 손꼽혔던 동네의 이름을 쭉 적어보았다. 홍대, 삼청동, 이태원, 한남동, 경리단, 해방촌, 상수동, 후암동, 서울숲, 성수동, 연남동, 합정동, 서촌, 익선동, 을지로3가, 우사단로, 망원동. 17개 동네였다. 편의상 나는 이 동네에 ‘힙 17’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힙 17의 위치를 지도 위에 올리자 몇 가지 특징이 보였다. 1)구시가지권 2)기존 대형 상권 배후지 3)2개 이상의 종합대학 근처 4)훌륭한(혹은 개선된) 교통 접근성. 보통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뜨는 동네’의 지리적 공통점이었다. 나는 각각의 공통점이 좀 더 강하게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힙 17은 서울시의 특정 구획 안에 자리한다. 아랫변이 한강, 성산대교 북단과 영동대교 북단이 각각 좌우측 양변, 삼청터널이 최북단이다. 상기한 17개의 동네는 모두 이 오각형 안에 위치한다. 나는 여기에 ‘힙 펜타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힙 펜타곤은 서울시의 시가화 역사와 맞물린다. 여기는 모두 최소 1979년 이전부터 시가화가 진행된 곳이었다. 서울시가 공개한 ‘위성 영상을 이용한 시가화 지역 분석도’가 그 근거다. 1979년과 1988년의 위성영상 시가화 지역 분석도를 보면 9년 만에 강남이라는 멀끔한 신도시가 생긴 걸 확인할 수 있다. 구시가지라는 지역 조건이 힙 타운의 토양인 셈이다.
상권 배후, 대학 근처, 교통 접근성 역시 동네가 뜨는 데에 각자의 역할을 차지한다. 서울의 힙 타운은 기존의 대형 상권 배후지에서 출발한다. 지금이야 완전히 역전됐지만 홍대는 신촌의 배후지역으로 출발했다. 삼청동도 인사동의 배후지역이었다. 세상에는 어디에나 최대공약수적 대중성에 반감을 느끼는 일부가 있다. 그 일부가 배후지역으로 들어가며 힙 타운이 발아하기 시작한다.
뭐든 키워본 사람들은 알 텐데 새로 뭔가가 태어나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보통 이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서울의 힙 타운에서 보통 이상의 관심을 담당하는 건 대학생이다. 힙 타운은 단순히 비싼 게 잘 팔리는 동네가 아니다. 이 점에서 청담동이나 서래마을 등의 동네와 구분된다. 힙 타운이 소비하는 건 고가품보다는 세련됨,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도쿄나 뉴욕, 런던 등 세계적인 유행을 이끄는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의 구체적 이식종이다.
그러므로 힙 타운이 원하는 소비자는 단순한 부자 이상의 특정 계층이다. 그들은 젊은 흐름에 예민하고, 해외의 흐름을 반영한 전위적인 가게에 익숙할 만큼의 문화적 소양이나 속물성이 있고, 특정한 가게나 동네의 단골이 될 만큼 시간도 많으며, 이런저런 문화적 상품에 돈을 쓸 만큼의 예산도 있다. 서울 시내의 대학은 이런 소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도로와 대중교통망은 대학생들이 다져둔 힙 타운의 토양과 묘목을 밀림으로 키우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다. 힙 17은 일제히 서울시내와의 간선도로 접근성이 좋다. 특히 한남동으로 대표되는 용산구 일대의 힙 타운과 성수동은 강남 상권의 배후 지역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한남대교, 반포대교, 성수대교 북단의 구시가지 지역은 강남권과 분당권 소비자들에게 큰 덕을 보고 있다. 범 홍대 권역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넓어진 망원-상수-홍대-연남 구간 역시 목동과 가양동 등 거대 아파트단지를 근처에 끼고 있다. 대중교통도 중요하다. 특히 힙 세븐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망원-합정-홍대-상수/해방촌-경리단길-이태원-한남동은 모두 서울지하철 6호선과 겹친다.
그런데 어떤 동네가 ‘뜬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이야기를 할 때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다.
매거진 B 50호 서울편에 실린 글입니다. 분량이 길어 나누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