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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Oct 28. 2017

옷 이야기_03

작고 빠르고 영리하고 복잡한 최신형 비즈니스



영국 소형 고급 의류 협동조합

킹스맨 영화와 의류 브랜드를 이끄는 큰 축은 영국 그 자체다. 영화 <킹스맨>의 사무실은 영국의 양복 거리에 있다. <킹스맨>의 차는 런던 택시 블랙 캡이다. <킹스맨>의 사상적 기반 역시 영국식 신사도다. 의류 브랜드 킹스맨을 이끄는 축도 영국이다. 브랜드로서 킹스맨은 영국의 소형 고급 브랜드의 협동조합 같은 느낌을 준다. 턴불 앤 아서, 조지 클레벌리, 브레몽, 매킨토시, 체흐 앤드 스피크 등이 킹스맨 브랜드에 물건을 납품한다. 일본의 의류 유통 브랜드에서 출발한 더블 네임 전략이다. 킹스맨 X 커틀러앤그로스 안경 같은 식이다. 확실한 브랜드 가치가 있는 두 브랜드가 만나 서로의 색을 반반씩 넣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매튜 본과 아리앤 필립스와 미스터포터(의 토비 베이트먼)가 킹스맨 영화와 브랜드를 이끄는 세 가지 축이었지만 실질적인 제품을 만들어 납품한 이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의 19개 브랜드에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미국 브랜드에도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킹스맨 2>에 '킹스맨의 미국 사촌'인 '스테이츠맨'이 나오면서 미국 의류 브랜드도 나왔기 때문이다. 19개 브랜드 중 7개 브랜드가 답을 보내왔다. 영국의 셔츠 메이커 턴불 앤 아서, 안경 브랜드 커틀러앤그로스, 구두 브랜드 조지 클레벌리, 그루밍용품 브랜드 체흐 앤드 스피크, 미국의 오리털 점퍼 브랜드 로키 마운틴 페더베드, 바시티 재킷(야구 점퍼) 전문 브랜드 골든 베어,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미스터 프리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영화 의상 기반 브랜드라는 기상천외한 체험에 참여한 이야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들려주었다.


의류 브랜드 킹스맨과 그의 서브브랜드인 스테이츠맨에 참여한 브랜드의 규모와 장르는 다양하다. 이번에 나오는 만년필을 만든 콘웨이 앤드 스튜어트는 홈페이지도 없다. 조지 클레벌리와 미스터 프리덤과 브레몽은 간단한 서면 인터뷰였는데 대표가 직접 답안을 작성해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이들에게 미스터포터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한 노출 기회는 보통 좋은 기회가 아니었다. 처음에 미스터포터 측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나마나했다. 모두 너무 좋았다고 답했다. 


영화감독과 의상감독과 쇼핑몰 구매총괄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콘셉트를 현실화시킨다는 건 생각만 해도 복잡한 일이다. 각 브랜드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잡한지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커틀러앤그로스 담당자는 콜린 퍼스의 안경테를 만들기 위해 그를 만나러 프랑스까지 날아가야 했다. "다른 프로젝트와 가장 달랐던 건 동시에 여러 다른 장인과 일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슈트 제작자와 신발 제작자와 함께 가장 믿음직스럽고 순수한 맞춤 안경, 구두, 신발을 만들었죠." 


각 브랜드는 한결같이 매튜 본과 아리앤 필립스의 의상에 대한 이해도를 칭찬했다. "아리앤과 매슈는 모두 정통파 맞춤 장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요. 둘 다 지식도 엄청 뛰어납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커틀러앤그로스 담당자가 회상했다. 턴불 앤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턴불 앤 아서는 <킹스맨 2>에서 (영국 셔츠 브랜드임에도) 카우보이 셔츠를 비롯해 셔츠 102벌을 만들었다. "우리는 <킹스맨 1>에서 콜린 퍼스가 입었던 실크 드레싱 로브도 만들었어요. 매튜 본의 아빠가 갖고 있던 빈티지 턴불 앤 아서 드레싱 로브를 보고요." 


"우리는 아직 작은 브랜드라 아직 영화에 우리 물건을 노출시킬 만큼 큰 예산이 없어요." 영국산 고가 시계 브랜드 브레몽의 공동대표 자일스 잉글리시는 솔직했다. "<킹스맨 1>을 만들 때, 매튜 본은 영국 스파이가 나오는 영화였으니 영국산 시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핑크색 초침 등 필요한 디자인 요소에 대해 논의했어요. 물건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가 군대와 일하는 과정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손톱깎이 세트를 만든 체흐 앤드 스피크 역시 "미스터포터와 킹스맨과 함께 디자인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작은 브랜드와 일일이 시간을 잡고 만나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21세기의 브랜드 비즈니스란 이렇게 점차 세밀해지고 있다. 


고가품 브랜드 입장에서도 영화에 들어가는 소품을 만드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핸드메이드입니다." 조지 클레벌리 CEO 조지 클레벌리는 이렇게 답을 보내왔다.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이 걸릴 만한 가치가 있는 절차를 거쳐 구두를 만들어요. 하지만 영화와 일을 하다 보면 우리의 자원에 압박을 가하는 마감일이 있습니다. 거기 더해 우리가 기존에 받고 있던 신규 고객이나 기존 고객도 있죠. 저는 배우와 엑스트라에게 제공된 모든 신발을 마감일에 맞춰서 잘 만들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아리앤 필립스는 서부극인 <3:10 투 유마>의 의상감독도 맡은 적이 있다. 미스터 프리덤의 크리스토퍼 로이론은 아리앤 필립스를 만난 적도 있었다. "아리앤은 몇 년 동안 미스터 프리덤에서 옷을 사 갔어요. 미스터 프리덤 데님 피코트를 사서 톰 포드에게 입히기도 했어요." 의류업체가 캐릭터에 관여하는 정도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캐릭터를 위해 가죽 재킷을 만들었어요. 아마 악역일 거라 생각해요.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미스터 프리덤의 베스트셀러인 캠퍼스 재킷을 조금 변형했어요." 등에 '포피'라고 쓰인 베이스볼 점퍼를 만든 골든 베어와 패딩 베스트를 만든 로키 마운틴 페더베드 등 새로 합류한 미국 브랜드도 킹스맨과의 협업을 만족스러워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킹스맨 브랜드와 미스터포터 사이에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고정비용이 없다. 킹스맨은 컬렉션이지만 패션 위크에 나가거나 쇼를 하지는 않는다. 영화 자체가 최고의 패션쇼다. 이미지에 더해 스토리까지 제공하고,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두 번 세 번씩도 찾아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패션쇼라 해도 결국은 업계 내 이벤트라는 점에서 영화를 쇼 삼고 추가 비용을 안 쓰는 이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킹스맨은 유명인에게 비싼 돈을 주고 광고 모델로 기용하지도 않는다. 큰돈이 나갈 일이 줄어든다. 


미스터포터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고정적으로 돈이 든다. 매장은 부동산 산업과 연결된다. 부동산에 쓴 돈은 원론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매몰 비용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관리하는 데에도 인건비나 건물 관리비, VMD 같은 다양한 부대 비용이 든다. 온라인에서 쇼핑몰을 전개한다면 그런 비용을 들일 일이 없다. 


대신 그 예산으로 다른 걸 한다. 킹스맨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의상 디자이너와 쇼핑몰 관계자를 만난다. 아리앤 필립스는 영화 촬영 시작 3개월 전부터 <킹스맨 2>에 관련된 미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십 개의 브랜드를 영화에 맞춰서 조금씩 수정한다. 그 브랜드가 '코스튬 투 컬렉션'이 되어 '보고, 산다'라는 콘셉트의 현실화된 쇼핑 모델이 된다. 매튜 본은 두 파트너와 함께 <킹스맨> 시리즈를 일종의 쇼 필름처럼 만들었다. 미스터포터는 자체 매체를 만들다가 이제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영화와 함께. 


세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하다못해 아리앤 필립스가 만든 영국 정장의 모양도 바뀌었다. 그녀는 본인이 바꾼 새빌 로 스타일을 정리했다. "새빌 로 스타일 정장의 어깨 모양은 남겨뒀지만 재킷 길이는 조금 짧게 만들었어요." <킹스맨>의 콜린 퍼스가 <스펙터>의 대니얼 크레이그보다 한층 자연스러워 보였던 이유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현재 상황에 맞춰 조금씩 업데이트한다. 세련된 시선으로, 너무 과하지 않게. 그렇게 하면 킹스맨이 된다. 


세상의 변화는 반드시 실패자를 낳는다. 영화 산업과 의류 유통 산업은 둘 다 인터넷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맞았다. 디지털을 받아들인 영화와 온라인 쇼핑을 받아들인 의류 유통업은 둘 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떤 감독은 바뀐 시대를 견디지 못했다. 수많은 의류 유통 기업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고전하다 사라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변화에서 기회를 찾았다. 킹스맨처럼. 양복을 입은 영웅이 영화 속에서 멋있는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이 입은 걸 멋있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접속한 인터넷에서 그 옷을 바로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판매 활동은 물건에 어떻게 정당성을 담아넣느냐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좋은 이야기는 물건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에어 조던이, 잡스의 아이폰이, '갓뚜기' 오뚜기 라면이 그렇게 팔려나간다. 영화는 사람들을 어두운 극장에 몰아넣고 평균 2시간 정도 사람들에게 영상과 음성이 혼합된 이야기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집중도가 높은 선전활동이다. 


찰리 채플린도 말했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이고, 로맨스 영화는 사랑에 대한 프로파간다이며 자신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민주주의 프로파간다라고. 영화 <킹스맨> 역시 프로파간다다. 신사됨에 대한 프로파간다, 21세기풍 새빌 로 정장에 대한 프로파간다, 그걸 쇼핑몰에서 파는 미스터포터의 고가 신사복 브랜드에 대한 프로파간다. 그러면 그 선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두 달쯤 전 통화한 매튜 본 감독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스토리라인이 첫 번째, 옷이 두 번째입니다”라고 답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언제나 가장 중요합니다. 스토리가 좋고 캐릭터가 좋아야 그들이 입는 옷이 좋아 보이는 겁니다.” 그가 만든 스토리와 캐릭터와 옷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는 곧 확인할 수 있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9월 27일에 개봉했다.




<에스콰이어> 에 올린 원고입니다. 마감 안에 맞춰 내느라 어색했던 부분들을 조금씩 고쳤습니다. 속편은 내일 올릴 생각입니다. 빨리 보시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더 일찍 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분이 계실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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