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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Oct 29. 2017

세계화한 턱수염

나이키와 포틀랜드 이야기

"사실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아. 점점 마음에 들겠지." 필 나이트, 나이키 창립자. 이 로고를 처음 보고.


나이키가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건 우연이다. 창립자 필 나이트가 포틀랜드가 속해 있는 오레건 사람이다. 그에게는 경영학 학위와 육상선수 경력과 대단한 야심이 있었다. 나이키는 그 셋과 우연의 화학 작용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로고는 필 나이트가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마주친 '가난한 예술가' 캐롤라인 데이비슨이 만들었다. 필은 로고를 보고 “사실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아. 점점 마음에 들겠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로고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10억 명은 될 것이다.


나이키의 본사는 아직도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있다. 정확히는 포틀랜드에서 11km쯤 떨어진, 차가 안 막히면 20분 남짓 걸리는 비버튼에 나이키 월드 헤드쿼터가 있다. 미국인 특유의 고집스러운 연고주의다. 오레곤의 남자 필 나이트는 실제로도 굉장히 고집스럽다. 그는 나이키를 만들어 기어이 성공시켰다. 전 세계에 가난한 예술가가 만든 로고를 채워 넣었다. 동시에 고향의 운명도 바꿨다.


나이키 월드 헤드쿼터, 오레곤 주 비버튼. news.nike.com


나이키와 포틀랜드는 인간이 만든 조직이 그 장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단체를 만든다. 모인 사람들은 또 새로운 일이 만들어낸다. 사람을 모으는 단체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학교는 그 주변에 새로운 문화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월스트리트같은 곳은 고급 구두의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a)인간과 b)단체와 c)그 단체가 자리잡은 공간이 계속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지역 자체를 바꿔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누가 모이느냐에 따라 동네의 운명이 달라진다. 영등포구 대림동은 동북 3성의 중국인과 조선족이 모이면서 이색 음식촌이 된 동시에 부동산 시세가 동결됐다. 시애틀의 고급 레스토랑 수요는 그 지역의 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잉 등의 고급 인력 수요에 기댄다. 오레곤 역시 나이키를 배출(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하며 전과 다른 지역이 되었다. 이른바 포틀랜드 힙은 나이키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나이키가 포틀랜드에 가져다준 효과는 크게 세 가지다. 1)포틀랜드는 나이키로 인해 스니커즈 산업의 허브가 되었다. 2)나이키 출신 직원들이 나와서 차린 포틀랜드 베이스 스타트업이나 신생 브랜드가 생겼다. 3)새로운 재능이라는 신규 인구가 유입되며 동네의 이미지가 변했다.


지금의 포틀랜드는 운동화 산업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다. 비버튼의 나이키 본사는 포틀랜드 스니커 업계의 일부일 뿐이다. 나이키 말고도 콜롬비아 스포츠웨어,  등이 포틀랜드에 본사가 있다. 볼티모어에서 시작한 언더아머도 글로벌 신발 사업부는 포틀랜드로 옮겼다. 심지어 나이키의 맞수 아디다스까지 본사는 포틀랜드에 있다. 아디다스의 원래 본사는 이름을 발음하기도 힘든 독일의 헤르초게아우라흐(Herzogenaurach)에 있었다. 2016년 3월의 <비즈니스 오브 패션, BOF>에 기사를 쓴 카티 치크라토른은 얄미울 정도로 날카롭게 이 사실을 지적한다. 헤르초게아우라흐에서는 글로벌 인재를 데려오기도 힘든 데다 미국 시장의 경향도 읽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의 리 닝 사례가 특히 흥미롭다. 이들의 별명은 중국의 나이키. 별명처럼 나이키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2008년에는 포틀랜드의 펄 디스트릭트에 리 닝 스포츠 USA inc.를 열었다. 리 닝의 디자인 부서다. 폭스콘이 자체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팔로 알토에 디자인 오피스를 낸 것과 비슷하다. 포틀랜드에 디자인 부서를 낸 이유 역시 다른 회사와 같다. 여기 모인 스니커즈 업계의 고급 인력을 쓰기 위해서. 


웨이 오브 웨이드 6.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리 닝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워낙 로고 산업이라 로고가 아주 중요하긴 하지만)리 닝의 신발은 로고를 빼면 운동화의 세계적인 조류와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리 닝은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자체 브랜드 '웨이 오브 웨이드'를 만든다. 벌써 5까지 나왔고 평가도 좋다(2017년 10월 29일 현재 6이 발매됐다). "인재 풀이 어마어마하고, 많은 회사가 그 인재 풀로 들어가려고 포틀랜드에 사무실을 내죠." 상기한 BOF 기사에서 나온 NPD 그룹 대표 맥스 파월의 말이다. 이 말대로 된 셈이다.


나이키의 나비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든 직원은 언젠가 회사를 떠난다. 포틀랜드에서는 직원이 회사를 떠나면 포틀랜드에 비슷한 회사를 차린다. 포틀랜드는 스니커즈 대기업 종사자가 퇴직하고 차린 스타트업의 허브다. 여성용 스포츠 브랜드 와일드팽의 창립자 엠마 메길로이와 줄리아 파슬리는 나이키에서 일하다 만났다. 스콧 햄린은 한정판 물건을 생산하다 남은 재료로 만든 업사이클링 브랜드 룹트웍스를 만들었다. 그의 전 직업은 아디다스 매니징 디렉터다. 스니커즈를 테마로 하는 데드스톡 커피(이름 하고는…)는 나이키 신발 부문에서 일했던 이안 윌리엄스의 스타트업이다.  


인재가 모이고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 동네가 살기 좋아지고 멋있어지면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다. 전염병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경향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미국의 부동산 데이터베이스 회사 리얼터(realtor.com)에 따르면 포틀랜드의 집값은 2000년 평균 148,000$에서 2015년에는 340,000$까지 올랐다. 포틀랜드는 2017년 현재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빨리 오르는 도시다. 포틀랜드는 리얼터가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심한 도시 상위 5선 안에 든다.  


여기서 포틀랜드의 삶은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자서전 <슈 독>에서 오레건 사람들에 대해 몇번이나 비슷한 묘사를 한다. '오레건의 남자들은 구질구질하지 않다' '오레건 출신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적인 자세' 같은 이야기들이다. 포틀랜드가 갖고 있던 원래의 특성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나자 힙한 특징으로 변형된다. 손대는 것마다 금으로 만드는 마이다스의 왕처럼 힙스터들은 손대는 모든 걸 힙으로 바꾼다. 그렇게 포틀랜드 스타일이라는 게 탄생한다. 오리건 남자들의 부스스한 차림새가 왠지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전에 만든 힙 타운 공식이라는 원고에서 세련된 동네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요소를 추정했다. 세련된 사람들이 모인 곳에 괜찮은 가게들이 생긴다면 세련된 동네가 만들어진다. 그런 사람들이 한 동네로 모이면 동네의 이미지가 바뀐다. 포틀랜드도 그랬다. 포틀랜드를 스니커즈의 실리콘밸리라 칭한 미국 <GQ>도 ‘포틀랜드를 패션 도시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이미지가 바뀌는건 순식간이다. 이미지가 바뀌면 실질적 부동산지가 상승이라는 실질적 경제효과가 발생한다. 사람이 동네를 바꾸고 동네가 바뀌면 집값이 오른다.


포틀랜드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속도다. 포틀랜드가 힙한 도시가 된 속도, 포틀랜드가 힙한 도시가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진 속도, 포틀랜드의 부동산 시세가 오른 속도, 이 모든 속도는 다른 세련된 도시가 자리잡고 알려진 속도에 비해 엄청나게 빠르다. 나는 이 결과를 만들어낸 변수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라고 추측한다. 광대역인터넷이 깔리고 초고속인터넷이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세세하게 들어왔다. 그 결과 이미지의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데이터의 용량이 커지면서 확산되는 이미지의 해상도도 향상됐다. 특히 동영상이 발달했다. 시청각이 혼합된 이미지가 전세계로 빠르게 퍼질 수 있게 됐다. 포틀랜드 느낌이라는 게 확산되는 기술적 기반이 생겼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과 속도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덕분에 포틀랜드는 한국에 직항 항공편을 두지 않고도 한국어 포틀랜드 가이드북이 나올 정도로 알려질 수 있었다.  


나이키가 여기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나이키가 포틀랜드를 만들지는 않았다. 황인종의 머리숱보다 풍성한 턱수염을 달고 묵묵히 달리던 오리건 사람들은 옛날부터 있었다. 대신 나이키는 이 지역에 계속 뿌리를 내렸다. 나이키가 포틀랜드에 운동화 디자인 산업의 허브를 만든 덕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나이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신기한 아이러니를 찾아낼 수 있다. 나이키가 포틀랜드 지역색의 일부처럼 보이는 지금과 달리 나이키는 시작부터 로컬과는 아무 상관 없이 성장했다. 나이키와 비슷한 기업은 포틀랜드에 하나도 없다. 비버튼의 나이키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도 약 3000여명에 불과하다. 나이키는 이케아와 더 가깝다. 이케아는 스웨덴으로부터 북유럽의 이미지만 빼온 초거대 대량생산 기업이다. 나이키 역시 오레건의 자연친화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에 기대고 있는 초국제기업이다. 


나이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글로벌 회사다. 나이키의 전신 블루 리본부터가 일본의 스니커즈를 수입해 팔던 무역회사였다. 이들의 첫 나이키도 수입 생산이다. 나이키는 계속 스웨트샵이라 부르는 아시아의 저임금노동 자회사 논란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이키와 포틀랜드의 이미지는 계속 성공적으로 겹쳐진다. 나이키 자체가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인 회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나오미 클라인의 <노 로고>라는 책이 있다. 로고라는 이미지 장치를 앞세워 전 세계를 무대로 겨냥하는 회사를 비판한 책이다. 나이키야말로 <노 로고>같은 책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로고다. 나이키는 늘 최고 스포츠 선수의 정점이라는 최고의 이미지를 팔았다. 육상을 팔고 조던을 팔고 농구를 팔고 축구를 팔다가 이제는 고향을 파는 데까지 간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뭐가 됐든 대단한 회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폴러 스터프 창립자 벤지 바그너다. 그는 포틀랜드 토박이 포토그래퍼 출신으로 일하다 폴러 스터프를 만들었다. 포틀랜드풍 자연친화성에 오레건풍의 반항적 이미지가 느껴지는 아웃도어 캐주얼 브랜드다. 벤지 바그너는 자기 스스로도 인정하는 나이키의 오랜 팬이다. 나이키 SB와 폴러 스터프는 합작해 덩크 하이 콜라보레이션 신발을 낸 적이 있다. 벤지로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을 것이다. 이미지를 만들던 포토그래퍼가 브랜드를 만들어 자기 동네의 최고 브랜드인 나이키와 합작한다. 이거야말로 포틀랜드 스타일 성공 신화다.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오레건 사람들은 턱수염을 많이 기르는 모양이다. 벤지 바그너도 오레건 시그니처라 할 만한 짙은 턱수염을 달고 있다. <슈 독>에서도 필 나이트의 턱수염에 얽힌 추억담이 나온다. 필 나이트는 사업 초창기에는 턱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부랑아처럼 보이면 자금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디서든 스우시 로고를 볼 수 있는 지금으로는 믿기 힘든 이야기다. 40여년이 흘렀다. 나이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용품 회사가 되었다. 그동안 나이키의 고향 포틀랜드에서는 수염을 달고도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나이키 덕분에 턱수염을 기르고도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과장일까. 나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것이다. 나이키도 자신감 때문에 성공했다.



매거진 <B> 포틀랜드 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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