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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Feb 12. 2016

다프트 펑크의 속삭임

크게 말하지 않아도 돼


어떤 말로 사랑을 전할지 고민할 때가 한 번쯤은 있다(여러분도 그럴 거라 믿는다). 내 마음을 네게 알리는 건 언제 어떻게 해도 어렵다. 기술이 변해서 세상이 좋아져도 마찬가지다. 말이든 편지든 인터넷 메시지든 뭘 써도 어렵다는 본질은 똑같다. 네가 좋고 너무 좋고 당신밖에 모르고 이런 건 흔하고 식상하다. 나의 사랑 너의 죽음까지도 감싸 안을거고 47번쯤 다시 태어나도 널 사랑할거야 이런 건 좀 부담스럽다. 옷장을 열어보고 한숨을 쉴 때와 비슷하다. 무엇을 꺼내 봐도 어딘가 모자란다.


나는 그럴 때 다프트 펑크의 ‘썸띵 어바웃 어스’를 떠올린다. 2003년에 나온 간결한 노래다. 아주 유명한 노래는 아니다. 패럴과 만들어서 유명한 ‘겟 럭키’처럼 신나지도 않는다. 가사도 쉽고 간단하다. 단순하고 느리고 양이 적다. 이런 노래가 영어 듣기 평가에 나오면 변별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역으로 증명한다. 예쁘게 잘 짜인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사는 수줍게 시작한다.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적절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난 말하고 싶은 게 있어. 아무튼 우리 사이엔 뭔가 있거든.’ 노래 속의 (아마)소년은 머뭇거린다.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적절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라고 질질 끌다 말을 잇는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뭔가 할 게 있어. 너랑 나랑 나눌 비밀 같은 게.’ 그 비밀이 뭘까.


뭐긴 뭐겠어. 남자는 여자를 많이 좋아한다. 아주 많이. 말주변이 없는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내 삶의 어떤 것보다 네가 필요해. 내 삶의 어떤 것보다 너를 원해. 내 삶의 누구보다도 네가 그리워. 내 삶의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해.’ 그리고 더 붙일 말은 없다는 듯 아름다운 신서사이저 연주가 이어진다. 


썸띵 어바웃 어스는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다. 그러니 이 노래를 듣는 곳은 적막하고 조용할수록 좋을 것 같다. 희미한 별을 보려면 빛이 없는 깊은 산까지 가야 하는 것처럼. 그런 벽촌까지 굳이 찾아간 연인이 있다면 서로 손이라도 잡고 이 노래를 함께 듣는 건 어떨까. 거기서라면 아주 조용한 데서만 나타나는 작고 따뜻한 마음을 볼 지도 모른다. 너와 나의 무엇인가를. 그게 정확히 뭔지는 둘만 알겠지.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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