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체력과 집중력
다비치의 두사랑은 제목처럼 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다비치가 두 사람을 사랑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하면 뭐가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뭔가를 확실하게 떠올리게 한다는 건 프로 아티스트로서는 대단한 장점이다. 더 대단한 점은 두사랑이라는 미묘한 소재를 썼다는 점이다. 이러면 '두사랑'이란 말만 생각해도 확실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토요일 오후의 커피숍같은 곳에서 친구 둘이 과일소주 마시러 가기 전에 하는 말들. "아니 어떻게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어머어머 미친 거 아니야?"
이 노래의 가사는 정확히 저런 경악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한다. '미쳤다고 하겠지 내 지금 사랑이 어떤 건지 듣는 사람들은/사랑이란 반드시 한 사람과 하는 거라면서 나를 욕하겠지' 글자로 보면 아침드라마처럼 독하다. 이어지는 말은 더하다. '하지만 난 한 사람을 가볍게 사랑하지 않아 이해 못하겠지/두 사람을 미친 듯이 온 마음 다 바쳐서 사랑해 나도 내 맘을 모르겠어' '미쳤다고', '욕', '미친 듯이'처럼 강한 표현이 많은데도 이 노래는 부드럽다. 다비치는 이렇게 가시박힌 말도 중화시키는 뛰어난 보컬임을 알 수 있다. 뒤이어 이 노래에 심어둔 회심의 펀치라인이 이어진다.
'내 두 사랑은 한 사랑보다 깊어/난 두 사람 중 한 사람도 곁에서' 이 짧은 줄 안에 노래를 강조하는 요소가 세 개나 들어가 있다. 이 줄은 노래의 주제를 보여주는 동시에 듣기도 부르기도 좋은 리듬감까지 살아 있다. 노래 제목이 후렴구 첫 부분에 들어가면서 노래의 존재까지 한번 더 알린다. '두사랑'이라는 말은 심지어 소리내어 발음했을 때 입에도 잘 붙는다(한번 따라해 봅시다). 아까 과일소주 마시러 갔던 친구들이 노래방으로 넘어가 "야 나 다비치의 두사랑 찾아줘. 그거 부를 거야"라고 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입에 쉽게 붙는 말을 만드는 것도 보통 재능이 아니다.
가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뛰어나게 잘 쓰였다는 말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다비치도 매드클라운도 두사랑 해도 괜찮다는데 여기 대고 훈계같은 걸 하기도 우습고, 기본적으로 사랑은 남이 옆에서 판정을 내려주는 게 아니다(그러므로 남자와 싸울 때 "내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다 오빠가 이상하대"같은 말은 상황을 진화시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기왕 두사랑 하실 거라면 난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죄 많은 삶을 살다 보니 한 번에 두 명을 좋아해본 적도 있고 두사랑하는 여자를 좋아해본 적도 있다. 당시엔 안 그랬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 보니 마음 아프고 죄짓는 것 같은 기분보다 진하게 남는 건 육체피로였다. 순수한 몸의 피로. 두 명을 좋아하는 것도, 두 명을 좋아하는 사람의 1/n이 되는 것도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두사랑을 하다 보면 뻔뻔해져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속여야 할 때도 있는데 어느 상황이든 체력과 집중력은 꼭 필요하다. 집중력 역시 체력에서 오기 때문에 결론은 무조건 체력이다.
다비치의 가사처럼 '두 사람을 미친 듯이 온 마음 다 바쳐서 사랑'하려면 하루에 10km쯤은 뛰어야 한다. 그런 목적의 달리기라면 다비치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들으시면 된다. 달리기 좋은 리듬이다.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주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안 늦을게요.
++이 시리즈의 노래에 동영상 링크를 추가했습니다. 노래 제목을 누르시면 링크로 이동합니다.
++이 원고를 올리고 부정적인 댓글을 몇 개 받았습니다. '윤리도 없이 참 편하게 사시네요' 같은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게요. 옛날 일이나 이런 반응 모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