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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Feb 12. 2018

서점의 미래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제네바, 2018년 1월.


2017년 1월 3일 출판도매상 송인서적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송인서적은 한국 2위의 출판 도매 업체다. 반면 독립 서점은 2017년 2월 현재 서울에만 40개가 넘는다. 상반되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계와 서점계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의 양대 서점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지금 엄청난 기세로 사세를 확장하는 중이다. 교보와 영풍 모두 요 몇 년간 전국적으로 지방에 지점을 내고 있다. 이들이 동네 서점을 위협한다는 여론이 생길까 봐 우려할 정도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동네 서점의 경쟁력 저하와 대형 서점의 증가 사이엔 별 연관 관계가 없다. 대형 서점의 매출이나 수익률도 정체 혹은 하락 상태인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들은 사람들이 책을 안 사는 이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보문고는 서점을 찾는 사람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려면 공간 자체를 콘텐츠화해야 한다. 교보문고가 서가를 줄이면서까지 사람들의 앉을 자리를 넓힌 이유다. 교보문고에는 은근히 광고가 많다. 하나의 책이 통로 가운데 많이 쌓여 있는 건 광고 서적이라고 봐도 된다(실제로도 한쪽 귀퉁이에 ‘광고서적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광고 단가를 위해 고객 체류시간을 늘리도록 공간을 짰을까? “어차피 광고 매출은 교보문고의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고객 여러분들이 더 오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지난번 리뉴얼의 핵심입니다.” 교보문고 진영균 대리의 말이다.


고객 체류시간이 늘어나면 인당 매출이 증가할 수는 있다. 실제로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책 이외에도 다양한 물건을 판다. 핫트랙스에서는 음반과 문구를 판다. 디지털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몽블랑처럼 외부 업체가 입점한 경우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무르게 한다. 취향을 보여주는 상품으로의 책을 강조한다. 일정 부분은 일본 츠타야의 모델을 참고한 면이 있다. 


츠타야는 지금 한국 서점계의 롤 모델처럼 보인다. 이들은 일본의 서점 체인 중 하나다. 처음에는 도서와 음반, DVD 대여로 시작했다가 서점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들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다시 정의했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서지 분류를 달리 했다. 커피 안내서와 함께 모카포트를 판매하는 등 취향에 따른 VMD를 강조했다. 얼핏 봐도 좋아 보이는 시도다. 츠타야가 한국에 던진 화두는 취향이다. 취향에 따른 큐레이션이 사람들의 새로운 소비를 이끈다는 이야기다. 


츠타야가 한국에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 B>의 츠타야 편이다. 해당 호는 다 품절되어 지금은 구할 수도 없다. 츠타야 유행을 불러온 당사자들은 츠타야의 유행을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 취재를 다녀오고 해당 호를 진행한 매거진 B 박은성 디렉터는 말했다. “츠타야의 본질은 서점이 아니에요. 데이터에 입각한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한 것, 멋진 공간을 만든 게 츠타야의 핵심이에요. 츠타야는 스스로를 서점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에서도 유명한 다이칸야마 T-사이트에 가 보면 묘한 점이 있어요. 그 서점에는 인문, 사회, 정치 등의 딱딱한 책은 없어요. 대신 자동차, 디자인 등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책이 있죠. 잡지 코너도 엄청나게 키워서 앞에 부각시켜 뒀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있다. 어렵고 지적인 책도 있고 쉽게 넘어가는 책도 있다. 지식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책 자체가 일종의 액세서리가 되기도 한다. 츠타야는 책이 가진 액세서리로의 특징을 키운 곳이다. 박은성은 그걸 ‘책의 패션화’라고 불렀다. “츠타야는 책의 패션화를 극대화시킨 곳이에요. 츠타야의 시작은 음반과 도서 대여 사업이에요. 그 일을 하면서 생긴 고객 데이터가 츠타야의 주력 데이터베이스고요. 츠타야가 서점 비즈니스 이후 진출한 분야가 가전이에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파고드는 거죠. 저는 그게 츠타야식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봐요.” 어떤 한국 사람들은 츠타야가 서점의 미래, 혹은 일본 서점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츠타야는 일본 서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일본에는 서가밖에 없는 정통 서점이 아직 아주 많이 있다. 


서점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은 츠타야에 대해 몇 가지를 착각하고 있다. 

하나. 취향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로도 50년에 가까운 호황을 누렸다. 취향은 잉여 시간과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전 사회적인 취향의 풀이 생기려면 전 사회적인 호황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 일본 같은 시장은 전 세계에 일본뿐이다. 일본은 아직도 정보를 얻으려면 출판물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튼튼한 나라다. 스마트폰의 네이버 앱만 누르면 웬만한 정보를 다 얻을 수 있는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셋. 츠타야는 서점이라는 공간도 패션화시켰다. 츠타야는 자리만 차지하는 딱딱한 책이 없다. 이들은 소비를 촉진시키는 카탈로그 같은 책만 판다. 서점이지만 책 이외의 각종 상품을 갖고 싶을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낸다. 서점이라는 공간과 책이라는 상품을 한없이 팬시하게 만들어 파는 게 츠타야 스타일이다. 츠타야 같은 서점이 하나 있으면 신선하다. 하지만 모든 서점이 츠타야처럼 되면 곤란하다.


영풍문고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교보문고가 리뉴얼할 때쯤 영풍문고도 리뉴얼을 거쳤다.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둔 교보문고와 달리 영풍문고는 손님들이 책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요즘의 대형서점은 책 판매 공간을 줄이고 그 자리에 다른 상업시설을 배치하는 추세지만 영풍 종각 본점은 오히려 책을 파는 공간을 넓혔다. 만화책 팬 같은 사람들의 특징을 고려해 그 사람들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서가도 새로 꾸렸다. 새로 만든 영풍문고의 슬로건은 ‘서점다운 서점’이다. 본질에 충실한 듯 보이나 시류를 거스르는 듯 보이기도 하는 이런 움직임은 창업주의 뜻과 관련이 있다. “회장님도 요즘 기류를 아세요. 츠타야가 유행하는 것도요. 그런데 “우리까지 그럴 필요 있느냐. 모두가 똑같으면 어떡하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풍문고 김현정 팀장의 말이다. 


그런데 잠깐. 수익률이 낮은 걸 좋아할 회사도 있을까? 바로 이 점에 한국 대형 서점의 근본적 특징이 있다. 일본의 츠타야와 한국의 대형 서점의 결정적인 차이는 취향도 고객 성향도 아니고 입지다. 한국의 대형 서점은 모두 지하에 있다. 밖에선 간판 말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심각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내 중심 공간의 지하에 있다는 게 한국 서점 시장의 특수성을 상징한다. 서점의 수익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영풍문고가 밝힌 스스로의 수익률은 1%대다. 그럼에도 도심지의 지하에 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이유는 교보와 영풍 양사 오너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이 의지는 현명하다. 교보는 광화문 교보문고 운영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보는 편이다 교보빌딩 전면에 그럴싸한 글귀도 달고 ‘노른자위 땅을 통 크게 서점으로 쓴다’는 논조의 언론 기사도 많이 낸다. 영풍도 교보만큼의 공간을 시내에 서점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근처의 다른 대형 건물과 비교했을 때 이게 꼭 자선사업만은 아니다. 책이 돈이 되진 않아도 사람을 모을 순 있다. 즉 한국의 대형 서점은 창업주의 명예 사업이다. 부자들의 세계로 넘어가면 얼마를 버느냐보다 얼마나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점을 운용하며 교보와 영풍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영풍빌딩 옆 건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교보와 영풍빌딩 지하에 서점이 아니라면 그 근처의 다른 건물들처럼 맛도 없는 식당이나 맞춤 셔츠집 정도만 있는 상가 말고는 굴릴 게 없다. 이들은 서점을 유치하고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와 모객을 얻었다. 


명예와 모객. 서점 비즈니스의 본질이자 미래다. 독립 서점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0개가 넘는 독립 서점 중 1세대에 속하는 더북소사이어티의 임경용 대표에게서도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2008년에 아트선재 안에서 ‘더북스’라는 예술서적 서점을 운영하다 2010년에 더 북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개최하는 유어 마인드가 인터넷 서점으로만 있었다. 한국 시장은 정말 역동적이다. 임경용은 더북소사이어티를 운영하며 서점 비즈니스의 본질은 취향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는 계속 서점 공간을 이용한 행사를 개최했다. 낭독회, 퍼포먼스, 독자와 작가가 만날 수 있는 기회,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오프라인 공간에서 일관적이고 세련된 취향이 계속 발신되면 그에 수신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더북소사이어티에겐 훌륭한 취향이 있었다. 그들의 취향에 반응한 사람들은 편집 디자이너였다. 문을 열고 7년이 지난 지금 임 대표는 더북소사이어티를 거쳐간 편집 디자이너들이 약 100명쯤 될 거라 추산한다.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데이터가 아주 값진 자료가 될 수 있다. 어디서든 고객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 수순을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예쁘장한 대형 서점 츠타야든 서울의 작은 독립 서점 더 북 소사이어티든 마찬가지다. 더 북 소사이어티는 지금까지 해온 서점 운영에 더해 출판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려 한다. 임경용은 “서점보다는 출판이 그나마 마진이 나은 것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들에게도 지금까지 쌓은 취향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있다. 브랜드 가치가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확장성이 넓어진다. 지금은 작은 서점도 영리한 브랜드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 


서점이 사람을 끌어 모은다는 사실만은 모두 안다. 서점과 큰 상관 없어 보이는 대형 유통사와 건설사까지도. 요즘 많이 생기는 복합 쇼핑몰의 상점 구성에는 꼭 대형 서점이 들어간다. 거기서 더 나아가 대형 서점은 복합 쇼핑몰의 구심점이 되려 한다. 합정역 바로 앞에 생기는 딜라이트 스퀘어는 비어 있는 지하 2층 전체를 교보문고에게 임대한다. 시행사인 대우건설이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다. “연세대, 홍익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의 젊은 층을 집객하고 마포, 여의도, 강남권, 상암DMC로 출최근하는 직장인 등 배후수요가 풍부하며 젊은 수요층으로 이루어진 홍대상권이 합성, 상수, 연남에 이어 망원동까지 확대되는 추세로(중략) 문화컨텐츠 수혜 상권의 중심으로 거듭날 예정(<글로벌경제>)”이라는 게 서점 유치의 배경이다. 


독립 서점이 늘어나면서 SNS에 이런 말이 돈 적이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줄어드는데 책을 파는 사람만 늘어나려 한다.” 유통이 생산을 압도하고 연구개발비보다 당기순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시장의 특징이 문화산업과 서점에도 드러난다. 서점 경영이 주는 명예와 종이 책이라는 콘텐츠가 주는 모객 효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한국 서점 시장의 수준이라고 봐도 되겠다. 하지만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작게나마 계속 시도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형 서점 시장의 21세기가 스스로의 색을 띠고 있다. 



<에스콰이어> 2017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것 말고도 'ㅇㅇ의 미래'를 몇개 더 해서 큰 시리즈로 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됐네요. 제가 늘 그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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