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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19. 2018

어쩐지 일본잡지

일본 잡지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어반리브>의 담당 편집자가 ‘일본 잡지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를 주었다. 좀 넓고 막연한 느낌이 있지만 저 주제어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론적 질문을 다룬다. 일본 잡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본 잡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일본 잡지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질문은 한국의 잡지를 만들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남들 보는 걸 만들고 퍼뜨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일반론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떠올린 일본 잡지의 특징은 이렇다. 지지를 받을 만한 특징을 얻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그 특징은 뭐든 될 수 있다. 어떤 잡지가 다루는 특정 정보는 그 자체로 그 잡지의 특징이다. 낚시잡지가 다루는 낚시터 정보가 좋은 예다. 잡지가 주장하는 철학이나 삶의 자세도 특징이 될 수 있다. 곧이어 설명할 <소년 점프>의 철학이 단적인 경우다. 잡지가 보여주는 카탈로그성 제품 정보, 혹은 물건을 통해 주장하는 '라이프스타일' 역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시 곧 언급할 <뽀빠이>가 이 사례의 좋은 예다. 뭘 보여줘도 특징이 된다. 이건 잡지라는 매체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깔아두고 일본 잡지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과거

우선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한국과 일본 잡지 시장의 가장 큰 차이는 물리적인 발행 부수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한국은 왜 안되냐’ 같은 푸념을 한다. 그렇게 살면 평생 아무 것도 안 된다. 둘은 시장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의 차이가 있다. 


일본은 1억 명 이상의 인구와 세계 2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규모의 경제를 가진 나라다.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연합군과 싸웠던 제 2차 세계 대전의 주요 플레이어 중 하나다. 그 2차 세계 대전 전에 인기가 높았던 잡지는 여성잡지 <주부의 벗>이었다. <주부의 벗>은 그 때 발행부수 180만부를 기록했다. <조선일보>의 2015년 발행부수(한국 ABC 협회 자료 기준)보다 많다. 


왜일까? 일본인이 활자를 좋아해서? 일본인이 잡지를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2차 세계 대전 전이라면 TV가 없을 때, 라디오를 듣기도 쉽지 않았을 때다. 그때나 지금이나 잡지는 방송에 비해서는 제작비가 저렴하다. 당시의 잡지는 대규모 유통이 가능한데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낮았던 플랫폼이었다. 굳이 비교하면 초창기 네이버나 다음 등의 웹툰 플랫폼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에게는 2차 세계 대전이 큰 전환점이다. 2차 세계 대전의 패배는 일본에게 도쿄 폭격이라는 물리적 상처와 핵폭탄을 맞고 덴노(천황)가 항복을 했다는 정신적 상처를 주었다.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인처럼 일본인도 미친 듯이 일했다. 당시의 분위기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매체는 다름아닌 만화잡지였다. 일본인은 노력과 행운이 뒤섞여 패전의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버블이라 불린 초호황기를 맞았다. 그때 토리야마 아키라를 발굴한 <소년 점프>의 전성기 발행부수는 660만부였다. 


왜 만화잡지 이야기를 하고 있냐 싶을 수도 있겠다. 만화잡지는 <어반리브>같은 잡지가 모델로 삼을 패션 잡지와 다른 것 아니냐고? 전혀. 당시의 만화잡지는 단순히 만화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는 만화가 있었다. 재능과 야망을 가진 작가가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편집자도 있었다. 하지만 만화라는 콘텐츠와 작가/편집자라는 플레이어 아래에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세계관이다. 철학이라고 불러도 좋다. 


iOS를 만든 애플과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은 서로 세계관이 다르다. 사람들은 어떤 세계관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특정 디바이스를 고른다. 무형의 세계관은 상품의 한 요소다. 전성기 전부터 200만부씩을 찍던 <소년 점프>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았다. <소년 점프>에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이런 것이다'라는 관점과 주장이 있었다. <소년 점프>의 성공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편집자라면 독자의 표정을 놓쳐서는 안 된다. 머릿속도, 가슴속도, 아니 지갑이나 주머니 안까지 파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년 점프>의 초대 편집장 나가노 타다스는 이 말을 신조로 삼았다. <소년 점프>의 전성기에 편집장이었던 니시무라 시게오가 자서전 <안녕히, 내 청춘의 "소년 점프"(한국어판 제목 <만화 제국의 몰락>)>에서 밝힌 내용이다. 1960년대의 만화잡지라는 아주 대중적인 포맷을 만드는 편집자들마저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소년지의 편집자가 교육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를 키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안녕히, 내 청춘의 “소년 점프”>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독자를 관찰한다. 독자에게 필요한 걸 파악한다.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독자를 키운다. 일본 잡지의 성공은 관찰력과 철학이 있는 편집자들의 방향 설정이 시장과 맞물린 결과다. 우정, 노력, 승리. <소년 점프>의 편집부가 찾아내서 주장하며 확대 재생산한 가치다. 이 가치 역시 조사에서 출발했다. 나가노 타다스는 <소년 점프>의 창간 전 <소년 북>을 만들 때 50개의 단어를 나열한 후 몇 개의 문항에 따라 답을 선택하는 이미지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가장 마음에 다가오는 것: 우정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 노력

가장 기쁜 것: 승리


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소년 점프>의 주제가 된다. 전성기의 <소년 점프>에는 '모든 만화의 주제에는 이 세 단어가 의미하는 요소를 꼭 넣어라. 세 가지를 전부 넣을 수 없다면 하나라도 반드시 넣어라' 가 강력한 편집 방침이 되었다. 이 정책은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소년 점프>의 성공 요인이다. 


<소년 점프>의 성공은 만화의 모습을 한 철학의 전파다. 저 세 가지 가치는 당시의 일본 사회에 흡수되기 좋은 메시지였다. 전쟁과 패배의 기억을 극복해야 했다. 빨리 다시 좋은 시절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려면 우정으로 합심해 노력해서 승리를 거둬야 했다. 여러 요소가 맞물려 일본은 다시 빠르게 성장했다. 그 성장과 함께 일본의 잡지도 엄청나게 커졌다. 1968년 창간호 발행부수가 10만 5천부였던 <소년 점프>는 일본 버블경제의 한복판에서 발행 부수 660만부를 기록했다. <소년 점프> 창간 3년 후인 1971년에 <논노>가 창간했다. <논노>역시 전성기에는 발행부수 180만부를 기록했다. 이 수치를 잘 기억해 두시길 바란다. 


세계관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잡지의 철학이 모두 <소년 점프>처럼 우정, 노력, 승리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저 셋은 너무 직설적이기도 하다. 우정, 노력, 승리라니 왠지 땀냄새가 날 것 같다. 사람은 잘 살 수록 은근한 걸 찾기 시작한다. 일본 경제가 호황기에 들어설 무렵인 1971년(일본 경제에 타격을 준 오일 쇼크 발생 2년 전)에 <논노>가 창간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위대한 잡지는 한 시대를 정의한다. 일본을 아주 좋아하는 미국인 작가 W. 데이비드 막스의 선언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1980년대의 <뿌리깊은 나무> 1990년대의 <씨네 21>이나 <TTL>, 2000년대의 <GQ KOREA>와 <노블레스>, 2010년대의 <매거진 B> 나 <어라운드>같은 잡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막스의 말대로 일본은 시대에 부응하는 특징적인 잡지를 선보이며 꾸준히 시대를 정의하고 상징했다.  1960년대의 <헤이본 펀치>, 1970년대의 <논노>, 1980년대의 <올리브>, 그리고 1976년도의 <뽀빠이> 등.특히 <뽀빠이>는 시작부터가 라이프스타일의 구현이었다. 초기 <뽀빠이> 에디터들은 미국 서부의 여유 있는 삶을 일본에 이식하고자 했다. 서프와 스케이트보드, 대학 로고 스웨트셔츠를 통해서. <뽀빠이>는 라이프스타일을 재현하는 소도구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상품이라는 실물세계의 상품을 사용했다. 부침도 있었지만 뽀빠이는 '물건을 보여주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기조로 40년을 보냈다. 


현재

일본 잡지 시장에는 일본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출판 선진국이다. 일본의 소비자들은 경제규모 2위라는 예산뿐 아니라 불법 복제품을 잘 사지 않는 충성스러운 면모도 있다. 불법 복제같은 방법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깐깐하고 치밀한 생산자도 있다. 덕분에 일본은 종이 잡지 시장이 축소되는 중에도 출판매체의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속도가 늦어졌을 뿐이다. 인터넷과 PC와 스마트폰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출판매체는 없다.

 

여전히 일본의 출판 잡지는 큰 플랫폼이다. 일본에는 아직 3,600여 종의 잡지가 나온다. 각 잡지를 분류하는 카테고리도 100개쯤 된다. 지금의 <소년 점프>는 660만부를 못 찍을 뿐 아직도 190만부는 찍는다. 전성기에 180만 부를 발행하던 <논노>도 아직 18여 만 부를 발행한다. 이 기록은 모두 2017년 1-3월 판매기준이다. 이 기록의 비교를 통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여전히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 잡지 시장이 굉장히 크다는 것. 전성기보다 못하다는 사실 역시 확실하다는 것. 


일본 잡지 시장의 성장이 시대와 맞물린 것처럼 일본 잡지의 상대적 쇠퇴 역시 시대와 맞물린다. <소년 점프>가 성장하던 1960년대는 잡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페이지 수를 늘리거나 컬러 페이지를 넣던 시대였다. 지면을 늘리거나 색을 넣는다는 원시적인 방법을 써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잡지에 만화를 얹기만 해도 기성 매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었다. 그동안 시대는 계속 변했다. TV가 보급됐다. 컬러에서 흑백으로. 뒤이어 PC가 보급됐다. 인터넷을 통해 PC들이 연결됐다.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초소형 PC가 나왔다. 종이 잡지는 영상에 비해 생동감이 떨어진다. 인터넷에 비해서는 느리다. 어느 정도의 쇠퇴는 자연스럽다. 


일본잡지협회는 10년 전인 2007년 <이제 잡지가 팔린다! 잡지 판매 명인이 밝히는 비결 연구>를 출판했다. 서점 매장에서 잡지 판매를 강화하기 위한 사례가 들어 있는 책이다. 일본도 잡지의 판매환경이 어려워지는 환경이 10년 전부터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잡지가 나오면 (입고 물량을 조절하기 위해) 즉시 다음 호 예고를 본다" 처럼 냉정한 사례가 나와 있다. "잡지의 특집 관련 서적과 무크지를 나란히 둔다"처럼 잡지와 도서의 혼합 진열이라는 아이디어도 들어 있다. 인쇄매체 정기간행물이라는 시장의 축소라는 상황 자체는 전 세계가 똑같다. 일본의 잡지업계는 나름의 자구책을 계속 마련하고 있다. 


아주 위대한 잡지는 한 시대를 뛰어넘기도 한다. <뽀빠이>가 단적인 예다. 1970년대의 <뽀빠이>는 시대의 상징이었다. 지금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다나카 야스오는 1980년 소설 <어쩐지 크리스탈>을 썼다. 당시 100만부 이상 판매되었으니 사회적 현상에 가까운 정도의 문제작이다. 이 소설에 '뽀빠이 소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뽀빠이>에 나오는 것처럼 입고 다니는 소년들이라는 뜻이다. 거의 40년 전에 멋있었던 잡지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멋있을 수 있다는 걸 지금의 <뽀빠이>를 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일본 잡지는 단순히 시장이 작아졌다거나 매체 경쟁력을 잃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섰다. 일본 잡지 시장은 여전히 작지 않다. 일본의 대형 잡지 <문예춘추>같은 경우는 아직도 47만부 정도 발행한다. 동시에 지금의 일본 잡지는 양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의 일본 잡지는 특색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거기 실리는 정보가 매력적이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상품을 산다. 


<뽀빠이>는 작년에 40주년을 맞았다. 별책부록으로 <뽀빠이> 1호의 복각판을 주었던 그 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W. 데이비드 막스는 여기 <뽀빠이> 40주년의 의미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지금 일본 잡지의 중요한 경쟁력을 지적한다. 팝적 시선, 즉 좋은 뭔가를 골라서 배열하는 능력이다. W. 데이비드 막스는 이렇게 썼다. "진짜 인터넷은 뽀빠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였다. 우리는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 더, 어떤 문화가 가진 최고의 것에 집중하는 뽀빠이(Popeye)의 “팝적 시선(pop eye)”이 필요하다." 그 결과 <뽀빠이>는 "세계의 문화 안에서 권위 있는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종이라는 매체의 한계나 저성장시대라는 시대적 흐름을 초월한다.


미래

지금까지 잡지는 시대의 메아리 역할을 했다. 지금 뭔가가 뜬다, 지금 뭐가 잘 나간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게 잡지의 일이었다. 지금 시대의 메아리는 인터넷이다. 잡지가 살아남으려면 시대의 메아리를 넘어 주체적인 목소리가 되어야 했다. 지금 어떤 일본 잡지는 그 수준까지 갔다. <콤플렉스> 는 2016년 '슈프림은 왜 메인스트림 잡지와 일하지 않나'라는 기사를 냈다. 슈프림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브랜드다. 로고만 박으면 어떤 물건이든 품절시키는 슈프림이니까 당연히 모든 매체가 이들과 뭔가 하고 싶어한다. 슈프림은 미국의 대형 매체들을 다 마다하는 대신 일본의 <그라인드> <센스> <워프>등과는 긴 화보를 찍는다. 


흥미롭게도 저 세 잡지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잡지가 아니다. 일본잡지협회에 발행부수도 안 낼 정도로 작은 잡지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잡지시장에서 중요한 건 물리적 규모가 아니다. 누가 관심을 갖는지, 그리고 브랜드로의 잡지가 어떤 이미지와 취향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유니온 매거진>은 좋은 예다. <유니온 매거진>은 1년에 두 번 나오는 패션 잡지다. 모토는 "훌륭한 것은 시간을 초월한다" 편집장 겸 아트 디렉터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그래픽 디자이너인 히로유키 쿠보를 비롯한 스텝은 4명이다. 660만부를 찍던 <소년 점프>에 비하면 핵전쟁 이후에 살아남은 인류같은 느낌이다. 


이번 기획을 위해 히로유키 쿠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히로유키 쿠보의 서면 답은 짧았고 모호했고 하나마나한 말이 대부분이었으며 불성실했다.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소통 방식을 별로 배우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유니온 매거진 및 일본 잡지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하나도 답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잡지 편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유니온 매거진>을 수익 모델로 운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잡지의 이익과 운영에 관심이 있지도 않다고 했다. 잡지의 정보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 중 무엇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밝힌 기준과 판단의 여부는 하나뿐이다. 지면의 아름다움. 


히로유키 쿠보처럼 살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은 이미지 시대다. 히로유키 쿠보처럼 자신의 전략을 명석한 언어로 만들지 못해도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신기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히로유키 쿠보는 어느 면접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대답 속에서도 아주 정확한 사실 두 개를 지적했다. SNS는 정보의 확산 속도 면에서 (자신들에게)필요하다. 독창성이 없는 것들은 사라진다.

 

이 둘이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남는 황금률 아닐까. 독창성을 가진 세계관을 전파한다. 그게 독자의 지지를 얻는다면 관심을 얻을 수 있다. 매출이 아니라 관심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관심은 자원이다. 사람들이 특정 매체를 인지하고 그 매체가 만들어낸 것을 보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건 이미 사람들이 관심이라는 자원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관심은 생산자의 솜씨와 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 히로유키 쿠보처럼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는 사람도 그 사실을 동물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히로유키 쿠보는 일본 잡지 업계의 미래를 모른다(뭘 알까 싶지만). 당연히 우리도 잡지의 미래를 알 수 없다. 일본잡지협회의 사람들도, <뽀빠이>의 편집장도, 슈프림과 함께 화보를 찍는 <그라인드>의 촬영 스태프도 모를 것이다. 이 사실은 확실하다. 잘 하는 매체라면 기존의 시장 구분을 넘어서도 살아남는다. 주춤하는 일본 잡지 사이에서 <뽀빠이>는 서울에서만 한 달에 몇백 권씩 팔린다. <유니온>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중에는 한국인 패션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업계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특정 업체의 미래는 알 수 있을 거라고. 잘 하기만 한다면 잘 될 거라고.


어반라이크에서 발행하는 <어반 리브>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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