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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20. 2018

하필 그것을

페티시 이야기




“긴 양말에 페티시가 있는 남자가 있었어요.” 강성은 씨가 말했다. “무릎보다 긴 양말 있잖아요. 미국 영화 보면 치어리더가 신고 나오는.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힘들 텐데 그걸 잘 구해 오더라고요. 그걸 입어달라고.” 강성은 씨는 니하이 삭스를 입고 즐거운 사랑을 나눴다. “상대방의 만족이 바로 느껴지니까 좋던데요.” 페티시의 좋은 예다.


“어쩌지? 난 그런 경험은 없어.” 김예리 씨는 페티시 경험을 묻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김예리 씨는 최근 팟캐스트 섭외까지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도 한마디 해야 하는 게 유명인의 숙명이다. 그녀는 의무에 충실했다. “해달라면야 뭐든 해줄 수 있죠. 뭐 입는 건 쉽잖아.”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 아시죠?” 이혜진 씨는 인터넷 중고 거래 게시판에서 본 기억을 떠올렸다. “발 냄새 나는 양말을 찾는다는 거예요.” 소문으로만 들었던 냄새 페티시 남자였다. “아니, 그런데 너무 체계적인 거예요. 1점부터 5점까지 있고, 자기는 4점과 5점만 찾는다면서요. 댓글도 달려 있었어요. ‘이 미친놈 또 왔구만.’ 그녀는 냄새 수집가의 게시물에 대한 4년 전 인터넷 기사를 찾아주었다. 이색적이지만 기사화까지 될 일인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 널리 알리면 냄새 나는 양말을 찾기 더 힘들어진다. 실제로 그 남자는 더 이상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페티시가 뭘까? 인격체가 아닌 것에서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거나 느끼려 하는 걸 페티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작은 조각에서부터 시작해 성적인 이야기를 부풀려나가는 거랄까. 페티시의 소재가 되는 그 무엇인가가 마음속의 성적 흥분감을 꺼내는 열쇠가 된다. 시각 등 특정 감각에 반응하는 남자에게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여성적인 남자가 있을 수 있듯 남성적 성향이 남자만의 것도 아니다. 세계는 넓고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페티시가 남자에게 더 많다는 건 하나의 경향일 뿐이다. 이혜진 씨의 친구는 수수깡 안경에서 약간의 성적인 긴장감을 느낀다고 했다. 송인애 씨에게는 확실한 페티시가 있었다. ‘남자 손을 좋아해요. 페티시가 남성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손이 예쁜 남자 10’ 같은 인터넷 게시물도 있고요.”


여자의 생각은 좀 더 로맨틱하지 않을까? 손을 잡아준다거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거나. 송인애 씨는 모텔에서 뽀로로를 틀어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거기를 만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장기하의 그 뮤직비디오는 너무 선정적이었어요. 그게 어떻게 방송이 됐나 몰라.” ‘그렇고 그런 사이’? “맞아요, 저는 너무 야해서 못 보겠어요.”


페티시적 상상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없는 야한 이야기를 지어낸 후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흥분하는 것이다. 송인애 씨는 자기 친구의 옛날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걔도 손을 되게 좋아했대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네일 아트 하는 사람이나 손 모델 하는 사람들한테 댓글을 달고 다녔대요. “‘손이 예쁘시네요’라고”. 송인애 씨의 친구는 그걸 알고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제 친구도 손이 예뻤어요. 게다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기도를 자주 했대요. 그 남자애는 그 기도하는 손으로 자기랑 야한 걸 한다는 생각에 더 흥분했던 것 같기도 해요. 금기를 건드리는 느낌?”


지금까지의 경우처럼 페티시는 이야기가 있어야 작동한다. 예를 들어 할머니 포르노가 유행하는 나라가 따로 있다고 한다. 영국이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에 이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페티시는 인간에게 성적 기능이 생기는 2차 성징 초반에 생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영국에는 유서 깊은 사립학교 문화가 있고, 그 사립학교에는 할머니 사감이 있다. 새들이 알에서 나와 처음 본 걸 엄마로 여기듯 어떤 사람들은 성적으로 눈을 뜰 때 처음 본 걸 성적 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이런 문화적 상황 때문에 영국이 할머니 포르노의 주 시장이라는 주장이 있다.


“지역별로 페티시가 있는 모양이에요.” 박선영 씨도 자신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 남자는 남미 사람이었는데, 아 이거 말해도 되나….” 나는 기다렸다. “방귀 페티시가 있다는 거예요.” 방귀라고? 박선영 씨는 덤덤했다. “네.” 방귀는 니하이 삭스와는 다르다.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우선 100% 내 의도대로 조절할 수 없다. “맞아요. 맘대로 안 되지. 그래서 그 남자가 나한테 콜라랑 콩을 사 가지고 왔어요. 그걸 먹으라고.” 박선영 씨는 착한 사람이다. 그녀는 정말 그걸 먹었다고 했다. “그랬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나도 황당해서 찾아봤어요. 검색을 해보니 남미 쪽에서 방귀 포르노가 인기 있다고 하더라고요.” 타코와 부리토의 대륙의 페티시일까.


“겨드랑이 털을 길러달라는 남자가 있었어.” 서지민 씨는 사랑을 했다. “다 기르려면 두 달은 걸려. 실질적으로 불편한 것도 있지. 때밀이 아줌마가 내 털을 이상하게 본다거나. 하지만 남자가 만족했으니까. 그 정도 페티시는 너무 귀엽지.” 그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면도를 했을까? “헤어지기 전에 깎지. 결심을 보여줘야 하니까. 헤어져야겠다고 마음먹고 깎고, 남자가 그걸 보고 상처를 입고, 좀 싸우다 헤어지…”까지 듣는 동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서지민 씨는 웃지 않았다. “우리 슬픈 사랑이 장난이니?”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남의 취향 앞에서는 존중만이 정답이다. 


페티시의 종류


구체적

옷은 페티시의 대표적인 스위치다. 블라우스, 펜슬 라인 스커트, 군복, 간호사복, 유니폼 등등. 그걸 입은 상대와 야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구체적인 페티시라고 볼 수 있다.


추상적

연어 페티시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연어의 분홍색 살에서 뭔가 섹시한 게 떠오르는 모양이다. 이해하려 노력하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좀 추상적이다.


개념적

메카노필리아라는 게 있다. 기차나 자동차, 헬기처럼 교통수단인 기계에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차야 어떻게든 산다 쳐도 기차로 성욕을 해결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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