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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Oct 18. 2018

신간

그런데 그 책이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사진가 김참 님께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30대 들어 가장 난처한 순간 4위 안에 들 것 같았습니다. 


1. 전 직장에서 2년 동안 신간 담당이었다. 특별한 건 없고 <에스콰이어>로 오는 신간에 내 이름이 붙는 정도였다. 그때 세상에 신간이라는 게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2. 신간 담당이 되고 약 1년 후부터 이걸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제목, 작가, 출판사, 출간일, 장르, 담당자(보도자료에 쓰여 있다)항목을 만들었다. 2017년 5월 8일부터 퇴사 직전인 2018년 7월 13일까지 목록을 채웠다. 그동안 <에스콰이어>에는 632권의 신간이 배달됐다. 


3. 동아일보의 북 섹션을 RSS 피드로 구독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1) 일간지 북 섹션 중에는 동아일보가 가장 좋다. 여기서도 신간을 소개한다. <에스콰이어>와 안 겹치는 신간이 더 많다. 


4. 한 달에 한두 번씩 대형 서점에 간다. 광화문 교보-종각 영풍-유니클로-감촌 순두부-스타벅스를 거치면 주말 한 나절이 지난다. 그때도 늘 신간에 압도된다. 신간 담당인데도 처음 보는 신간이 꽤 많다. 대체 신간이 얼마나 많은 거야? 


5.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평대에 놓인 신간도 다르다. 왜인지 모르겠는데(2) 영풍 쪽 신간이 더 풍성하다. 소규모 출판사 신간도 많이 놓이고. 존 르 카레 <우리들의 반역자>가 나오자마자 사러 간 적이 있다. 분명 신간인데 평대가 아니라 입서가에 있었다. 이러면 이 책이 팔릴 확률은 거의 없다. 왠지 이상해서 교보에서 안 사고 영풍에 가 보았다. 평대에 놓여 있었다. 그 이후로 교보문고에서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6. 신간 담당이 되면 신간이 담긴 종이봉투가 몇 개씩 온다. 그걸 일일이 뜯어서 책상 한 쪽에 쌓아 놓고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기분이 든다. 그냥 봐도 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미간을 찌푸리게 될 정도로 나와 안 맞는 책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책을 만드느라 인력과 펄프를 썼구나 싶을 정도로 조악한 책도 있다. 


7. 아무튼 세상엔 신간이 너무 많다. 그 사이에서 어떤 한 권의 책이 잘 되는 건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깝다는 걸, 신간 담당을 하며 알게 됐다.


8. 그런데 내 신간이 나온다. 곤란한 기분이다. 이 책을 만든 HB 프레스는 1인 출판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출판사 홍시에서 오래 일한 조용범 실장이 회사를 나오고 차렸다. 만나보니 털을 깎은 알파카처럼 갸냘프고 선이 고운 남자였다. 일해보니 역시 꼼꼼하고 유능한 편집자였다. 하지만 ‘너는 선생이고 나는 학생이야’ 처럼, HB 프레스는 1인 출판사고 나는 무명 저자다. 그런 회사의 첫 책이 내 책이고 나는 저자 노릇이 처음이다. 어쩌자고 이러셨나…싶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9. 내가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갸냘픈 알파카 조실장님의 출판사업에 누를 끼치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글을 적는다. 


10. 책이 나온다. 브랜드에 대한 책이다. 매체에 실린 글에 몇 가지 단독 원고를 더했다. 텀블벅 홍보도 시작했다. 텀블벅 링크를 올리려니 이건 그냥 구매 링크잖아 싶어서, 왜 구매 링크를 올리는지에 대한 변명을 몇 자 적어 본다.

 

-책은 11월 2일에 나옵니다. 출판, 매체, 독립서점 등 관계자 여러분의 어떤 관심이든 환영합니다. 페이스북 댓글이나 메신저, 혹은 iaminseoul@gmail.com 으로 메일 주시면 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머리말과 감사의 글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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