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Jan 24. 2020

오늘의 #jojada 1-3

세 번째 책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얼굴이 번들거릴 정도로 뻔뻔해지겠다는 의지.


01: 2020.01.15



1. “여기는 회사가 커서 출간일을 미룰 수가 없네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말했다. “ㅇㅇ까지는 꼭 해주셔야 합니다.” 해야죠. 하고말고요.

2. 세 번째 책이 곧 나온다. 또 에세이집이다.

3.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지난 두 권은 판매가 아주 잘 되지는 않았으나 나는 감사하고 만족했다. 이리저리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작은 회사였고 비용이나 자원 등에 한계가 있었고 내 입장에서도 첫 책이었고 등등. ⠀ ⠀

4. 이제는 댈 핑계가 없다. 어딘지는 당장 못 밝히지만 회사도 크고 담당 편집자의 직전 책도 베스트셀러였고 나도 첫 책이 아니다. 이번 책이 잘 안 되면 그냥 내가 거기까지인 거다. 여기까지라면 다른 책도 못 낼 거고. 못 내면 몇 년 안에 나는 제프리처럼 전국의 벼룩시장을 떠돌며…

5. 아니다. 아직 모를 일이지. 아무튼 책이 몇 권 나오면 마음이 편해지나 싶었는데 이거 원 나올수록 절박하다.

6. 예를 들어 추천사. 책 띠지에 누가 적어준 추천사같은 게 예전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그거 보고 누가 사나 싶기도 하고. 신인상을 받으러 나갔을 때 귓구멍을 긁던 젊은 날의 유재석 씨처럼 건방진 생각이다.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하나 싶다. 띠지에 파파존스 쿠폰이라도 감고 싶다.

7. 그런데 추천사를 받을 유명인 지인이 없네. 받은 분께 또 받기도 그렇고. 내가 보잘것없으니 친한 유명인도 없고.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독촉 전화 받은 날 게시물을 올려 본다.

8. 지난번 책 두 권이 나올 때는 #jojarani 라는 태그를 썼다. 내가 저자라니. 아무리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지고 저자의 문턱이 낮아진 세상이라도 내가 저자라니. 그런데 이제 ‘내가 저자라니…’라고 읊조리기엔 벌써 책이 두 권이나 나와버렸다. 아직도 슈게이징 소년 느낌으로 ‘저자라니…’라고 하는 건 힘써주시는 출판사 분들께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별 수 있나. 내가 저자인데. 나는 뻔뻔해지는 것도 책임감의 표현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새로운 시즌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jojada

9. 담당 편집자님 이거 보시는 거 압니다. 저도 오늘치 할게요. 걱정 마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  

#jojarani 시즌 2 #jojada 의 인사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02: 2020.01.22


오늘의 #jojada - 산토 도밍고와 제목 회의

“모든 뉴요커가 쉣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구. 지구 반대편에서 손님이 와서 내 집 문을 두드리면 열어줘야지. 너도 그렇게 말해도 돼. “안녕? 나 왔어.”라고.” 브루클린에서 로저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왜 나를 도와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로저 덕분에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취재와 촬영을 잘 마쳤다. 2018년 12월이었다.

돌아와서도 로저와 종종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로저가 카카오톡을 쓰는 이유는 로저의 아내 줄리아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로저가 부탁했다. 줄리아의 부모님께 쓴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해줄 수 있겠냐고. 네가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걸 한글로 써서 그분들께 드리겠다고. 열심히 번역해서 보냈다. 그로부터 몇달 후 로저에게 메시지가 왔다. “결혼하는데 올래?”  

산토도밍고에 가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회사 일을 하고 겨우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자다 깨다 하면서 틈틈이 단행본 원고를 손봤다. 단행본 원고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거의 끝난 건 끝난 게 아니다. 원고가 조금 남았을 때의 간지러운 느낌이 태평양을 건너는 내내 남아 있었다.


산토 도밍고에 비행기가 내리면 기내의 승객들이 열렬히 박수를 친다. 이번에도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자마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산토 도밍고의 파일럿 아주 보람 있겠어. 그 박수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산토 도밍고에 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입국장에서는 어디서 본 아저씨가 Chan Yong 이라고 적힌 A4용지를 들고 있었다. 아니 당신은...카카오 농장에 함께 가서 내가 취재하는 동안 과일을 따먹던 택시 기사 아저씨 라몬이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라몬의 토요타 시에나를 타고 산토도밍고로 들어갔다.


산토도밍고의 오래된 집들은 실내가 어둡고 창문이 작고 천장에 남국풍의 선풍기가 돌아간다. 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내가 머무른 호텔방도 그랬다. 산토도밍고에서의 3박 4일 동안 로저의 결혼식과 결혼식 전날 저녁식사를 빼면 거의 그 방 안에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 있다가 한번씩 밖에 나가면 하늘이 파래서 눈이 부셨다.


동굴같은 방에서 계속 작업했다. 이번 책은 후반 작업이 좀 필요했다. 날렵한 담당 편집자가 먼저 열심히 해줘서 일이 수월했지만 내가 봐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내 몫의 확인과 수정을 하고 추가 원고를 만들고 필요한 부분에 각주를 달고 잠깐씩 비타민 보충용 산책을 나갔다.


로저의 결혼식은 오후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하객은 다 합쳐서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식이 끝나고 큰 중정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중정 가장자리에 테이블이, 반대편에 DJ 부스가 있었다. DJ가 조용한 노래를 틀자 로저와 줄리아가 조용히 춤을 추었다. 그 다음 곡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 줄리아와 줄리아의 아버지가 조용히 춤을 추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자 줄리아의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다음부터는 살사에 싸이에 BTS에 아주 그냥. 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은 춤을 아주 잘 췄다. 춤추는 곳에서는 춤을 추는 게 매너다. 매너를 지키다가 적당한 때 나왔다. 씻고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에 원고를 마무리했다.


도미니카공화국 결혼식에 간다고 하자 모두 놀랐다. 나도 놀랐으니까. 나는 착한 사람도 부자도 아니다. 이번 휴가는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무리였다. 하지만 내내 좋았다. 그때의 취재는 여러 모로 내게 의미가 있었다. 친절을 준 사람에게 성의를 돌려주고 싶었다. 감사할 줄 알고, 그 감사를 보여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로저의 결혼 초대에 고민하지 않았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휴가를 낼 수도 있었다. 로저의 결혼식에 함께 해 기뻤다.


도미니카공화국에 갈 때까지도 책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다. 편집자가 몇 개 만들어봤지만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마지막 밤에 갑자기 제목이 생각났다. 그 제목에 맞춰 추가 원고도 완성했다. 담당 편집자에게 허락도 받았다. 그 제목으로 정해질지는 아직 모른다. 오늘 9시에 제목 회의다. 작은 저자의 의견이 큰 회사에 받아들여질 것인가.


03: 2020.01.24


오늘의 #jojada 그래서 뭘 한다는 건데요

지난번 게시물을 올리자 “뭐 대단한 걸 했다고 계속 뭘 한다고 생색내는 건가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내 스스로가 그랬다. 내가 지난 며칠동안 동굴같은 방에서 뭘 한 거지. 정리하는 겸 해서 올려 둔다. 혹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우선 나는 원고를 다듬었다. 이번 책에는 여기저기 냈던 원고들이 모여 있다. 담당 편집자가 원고를 추리고 걸러서 큰 원고 파일로 만들고 거기 요청 사항을 붙여서 나에게 보냈다. “ㅇㅇ일까지 보내주셔야 합니다”라는 답과 함께. 담당 에디터도 재미나고 귀여운 분이다. 알려도 되나 싶어서 아직 안 알리고 있다. 아무튼 그 원고를 다듬었다. 전반적으로 지루하고 티 안 나는데 안 하면 또 안한 티가 나는 일이다. 사포질같은 거랄까.

거기 더해 나는 원고를 크게 고쳤다. 담당 편집자가 A와B를 합쳐 보자거나 C와 F를 합쳐서 보낸 것들이 있다. 아 이거 감탄했다. 이렇게 붙여서 원고를 하나 만들 수도 있구나 싶더라구. 나도 화답(?)하는 느낌으로 큰 폭으로 문단과 문장을 자르고 꿰맸다. 뭐랄까 부츠컷을 스트레이트 핏 바지로 만드는 이대 앞 수선집 선생님의 마음이랄까. 자연스러워 보이면 좋으련만.

그런 걸 하는 틈틈이 나는 원고를 새로 만들었다. 거장이나 게으른 사람들이 책을 낼 경우 예전에 냈던 원고를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거의 조판만 새로 해서 내는 것도 봤다. 나는 저자이기 전에 독자였고 언젠가 저자가 못 되어도 독자로는 계속 남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그런 책 보면 배신감 들더라구. 가수 앨범은 리패키징을 하면 사진이라도 다시 찍고 리믹스 음원이라도 하나 더 넣어 주는데. 만에 하나 박찬용 씨의 원고를 본 분들이 이 책을 본다면 ‘오 이 원고는 이 책에서 처음 보네’ 싶은 원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당 편집자와 으쌰으쌰 주제를 정해서 몇 개를 만들어 넣었다.

이걸 다 하고서는 각주를 넣었다. 지금 보니 나는 원고에 특정 고유 명사를 많이 넣는 편이었다. 출판 편집자나 독자 입장에서는 이게 뭘까 싶은 말들이 있을 것이었다. 담당 편집자가 몇 단어를 골라서 각주를 달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오 아이 앰 각주 러버. 쓸데없는 이야기하는 거 진짜 좋아한다. 신나서 각주를 넣었다.

이 과정에 오기 전까지 미리 해둔 일도 있다. 이 책에 실린 원고 중에는 다른 잡지에 실렸던 것들도 있다. 샘플 클리어 개념으로 해당 편집자와 담당자들께 인사도 드릴 겸 수록 가능 여부를 여쭸다. 다행히 다 문제 없이 허락해주시고 축하도 해 주셨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책 나오면 정식으로 감사의 뜻 전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직 남은 일도 있다. 서문과 후기와 감사의 말이 남았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인지 저 세 개가 있어야 좀 마음이 놓인다. 서문과 맺음말이 소세지 양 끝의 매듭같은 기분이다. 어제는 돌아다니는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후기를 만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데서나 원고를 만들 수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할래.

아직 또 남은 중요한 게 있긴 한데 이건 여기 적어도 되나 모르겠어서 이만 줄인다.

혹시 책 관련해 궁금하신 점 있으면 댓글로 문의 주세요. 문의 주신 분들 5분 뽑아서 새로 나올 책 보내드리고 다음 포스팅에 답 올리겠습니다. 편의상 질문을 모으고 공평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질문 댓글은 인스타그램으로만 받으려 합니다. 인스타그램 @parcchanyong 에 질문 남겨 주시면 답 하겠습니다.


라고 해도 아무도 묻지 않겠지. 실패한 이벤트도 웃기고 좋지 않을까. 웃기면 됐지. 웃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50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