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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22. 2019

5000

오늘 구독자가 5000명이 되었다


브런치라는 블로그를 안 건 4년 전이었다. 건너건너 어느 경로를 통해 ‘다음에서 브런치라는 블로그를 새로 만드는데 작가로 참여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존재감이란 충무로역 3번 출구 앞에 눈에 띄지 않게 5년째 붙어 있는 껌 자국같은 것이었다. 그런 나같은 사람까지 알아서 제안을 해 주다니, 역시 대기업이 맘 먹고 하면 다르구나, 현대백화점이 김밥집을 입점시키기 위해 전국의 분식집을 다닌 것 같은 건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제안을 받고서는 조금 망설였다. 우선 이름이 좀 그랬다. 느끼하게 브런치가 뭐야.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한때는 감성적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좀 변했다. 잡지는 이미 망해 나가고 있었다. 한때 마주쳤던 감성적인 사람들은 사람들이 이제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를 사람이 되거나 만약 만난다 해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걸 몇 년 겪다 보니 비현실적인 감성 앞에서는 마음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또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보다는 너그러워졌지만 4년 전의 나는 여러 모로 한창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실 이건 핑계다. 마음 더 깊은 곳의 나는 두려웠다. 안 좋은 댓글이 달리면 어쩌지? 내 보잘것없는 바닥이 드러나서 비웃음을 사면 어쩌지? 차라리 그러면 낫지, 뭘 올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요좀 사람들은 글을 안 읽는다는데 나까지 블로그를 해도 될까? 기껏 블로그를 해봤자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닐까?


다행히도 내 상황을 직시하지 못할 만큼 두려움에 굳어 있지는 않았다. 나는 나와 내 주변을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종이 잡지가 유통되는 환경과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종이 잡지는 내가 뭔가를 만들었을 때 반응을 알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디지털은 상대적으로 쉽다. 조회수나 좋아요, 댓글 같은 게 확실한 정보는 아니어도 막연한 신호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런 생각에 브런치를 해 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첫 게시물을 올렸을 때가 기억난다. 혼자 민망하고 노심초사하고 걱정하고 몇 번씩 들여다보고. 교정도 안 거친 글이 올라간 걸 보고 있자니 어딘가 틀리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나 싶고. 그렇게 온라인 게시물 올리기라는 일을 해보기 시작했다. 지금 적고 보니 인터넷을 처음 배우는 사람같은 느낌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 경험이 내 삶을 조금은 바꾼 것 같다. 누적조회수는 이제 230만을 넘었다. 단일 게시물로 조회수 20만을 넘은 것도 있다. 답글도 꽤 달렸다. 놀랍게도 안 좋은 답글이 없었다. 공유도 많이 됐다. 브런치가 공유를 어떻게 세는지는 몰라도 600회 이상 공유된 게시물도 있다. 그리고 오늘 구독자 수가 5000명이 넘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 4년동안 나와 세계 역시 꾸준히 변했다. 나는 직장과 직업을 바꾸었다가 다시 이 직종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일하고 책을 내고 이사를 갔다. 그때 시작한 금연과 저축도 (나에게는 놀랍게도)계속 하고 있다. 속상하고 힘겨운 일도 있었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많았다. 브런치가 나올 때는 아직 세상에 ‘다음'이란 이름이 있었지만 이제 그 이름은 사라지고 카카오 서비스 일부가 되었다. 나 역시 카카오의 자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브런치 팀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글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와 글읽기와 개인의 감수성과 이런저런 재능 사이에 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스마트폰이 있고 몇 만원으로 무제한 요금제를 가입할 수 있다면 동영상을 보는 게 즐겁고 효율적인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집에 TV가 없고 와이파이도 설치하지 않았지만 대신 그래서 영상을 한번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참 작은 시장에 있구나.


여기 있는 원고는 별로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쉽게 원고를 만들려 하지만 아무튼 글은 영상에 비해서는 조금 더 해독이 어렵다. 내 원고가 별로 짧지도 않다. 보통 블로그의 게시물 문법처럼 사진과 캡션의 연속도 아니다. 그냥 문단 몇 개로 이루어진 글일 뿐이다. 맛집이나 OOTD나 퇴사 에세이나 감성이나 여행이나 감성 여행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블로그의 성과(라고 부를 수 있다면)가 놀라웠다. 


그 결과 나는 한국어 독자들을 좀 더 신뢰한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나. 짧지 않은 글을, 맨 앞의 썸네일을 제외하면 이미지도 거의 없는 글을 열심히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괜찮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모자라서. 훌륭한 독자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종 그런 이야기가 들린다.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 문해력이 떨어진다.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내 브런치를 떠올린다. 해킹이라도 당한 걸까.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잡지 에디터라는 일을 해도 결국 직장인일 뿐이다. 직장인이 느낄 법한 여러 가지 고민과 고충은 여기에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끔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 이 블로그가 힘이 된 적이 있다. 뵌 적은 없지만 숫자로 떠올라 있는 여러분 덕분이다. 덕분에 더 노력하고 덕분에 더 긴장한다.


숫자는 숫자일 뿐인 걸 안다. 구독자든 조회수든 저런 숫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고도 생각한다. 적어도 이 일을 하는 나에게 그런 숫자가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감사한 마음만은 무척 많다. 처음에 내게 제안을 해주신 브런치 팀 분들. 그 이후로도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제안해주시거나 게시물이 나왔을 때 메인에 올려주신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관심과 응원을 보여주신 분들.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도 기념할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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