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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Sep 23. 2020

이런 이번 주

어느 전직 에디터의 일상 - 시작하며


블로그 구독자 수가 며칠 전 6천이 넘은 걸 보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졌다. 그런데 뭘 하지? 


나는 십 년이 조금 넘는 동안 월간지(혹은 그 비슷한 것) 에디터라는 일을 직업 삼아 했다. 매달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중에는 빈 칸을 문자열로 채워야 하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는 원고 작성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창작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글쓰기라고 하는 그런 일들. 그런 일들을 하며 사회인이라는 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8월 어딘가에 소속된 정식 에디터 일을 그만두었다.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기획과 원고 작성과 관련된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다. 나부터도 일을 하면서 이런 직업의 세계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기사 작성, 무기명 기사 작성, 기타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일들, 글 만들기, 말하기, 듣기, 듣고 판단하고 점수 매기기, 이런 일들이 최근 들어왔다. 나는 일을 최대한 가리지 않는다. 해본 건 해본 대로, 안해본 건 안해본 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었는데도 블로그를 할 만한 여력을 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며칠 전 블로그 구독자 수가 6천이 넘은 걸 보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진 것이었다.


어딘가로부터 오더가 와서 원고 만드는 걸 직업 삼아 하다 보니 내 이야기를 적는 게 좀 무안해졌다. 일상 이야기를 적어도 되나…라고 한참 동안 생각하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글 잘 쓰시는 분들도 조용히 자기 일만 하시는데 말야. 그런데 최근에 생각을 바꿨다. 잘 하시는 분들은 조용히 자기 일만 하셔도 본인의 삶을 잘 꾸릴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가 안 된다. 원고 작성하는 사람들끼리의 공전의 히트 퍼슨 이슬아 선생님도 매일 글을 쓰셔서 사람들에게 보내시는 이 판에 나 같은 사람이 가릴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슬아 선생님의 실행과 활동에 이 자리 빌어 무한한 존경 보낸다.


그래서 그냥 그 주의 내 눈에 보인 걸 적어 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엄청 흥미로운 도시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다른 나라의 도시에 많이 가보지 않았을 때는 서울처럼 별 볼 일 없는 대도시가 어디 있나 싶었다. A에는 B와 C도 있고 D도시에는 E와 F도 있는데 서울은 뭐야, 같은 말들을 내가 어릴 때는 많이들 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일 때문에 여기저기 가보기 전에는. 여러 곳을 보고 돌아와보니 세상에는 우열이 없고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다른 곳과 다른가?’ 라는 면에서 서울은 압도적으로 그러한 도시다. 요즘 나는 서울 구경이 정말 재미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도 계기가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던 제이슨 폴란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다. 그는 ‘에브리 퍼슨 인 뉴 욕’이라는 블로그로 유명해졌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계속 그려서 블로그에 올린다. 그뿐이었다. 나는 그 블로그를 처음 봤을 때 뉴욕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뉴욕에 가 보니 내가 본 모든 뉴욕 관련 사진이나 영화보다 더 뉴욕같았던 게 폴란의 그림이었다. 멋있지만 왠지 뭔가 좀 냄새날 것 같고, 그런데도 뭔가 멋있고 그런 느낌. 꼭 해상도가 높다고 모든 게 전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제이슨 폴란이 그린 뉴욕. 뉴욕은 내게도 이렇게 보였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내가 폴란 씨를 처음 알았을 때는 블로그만 운영했는데 어느 순간 이 나오더니 그 책의 한국어판도 나왔고 거기 더해 유니클로 티셔츠에까지 그림을 그렸다. 좋은 걸 꾸준히 만들면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제이슨 폴란은 안타깝게도 올해 세상을 떠났지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데에 성공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세계 최고의 잡지인 유니클로의 무가지 라이프웨어에서도 추모 기사를 냈다(한국어판은 아직 웹 공개가 안 된 것 같다). 


이러저러하고 그러그러한 이유로 나도 그래서 눈에 보이는 걸 적어 보기로 했다. ‘에브리 퍼슨 인 서울’같은 느낌으로. 그런데 꼭 서울 이야기만 적을 필요도 없잖아? 같은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글 모음에 적절할 이름이 생각났다. 그게 이런 이번 주다. 이번 주는 이랬답니다, 이번 주는 이럴 거랍니다, 뭐 이런 이야기들. 


블로그를 하면 내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를 볼 수 있다. 아직도 유입 검색어의 상당 부분이 잡지 에디터에 관련된 내용이다. 아직 이 일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 모양이다. 21세기의 원고 생산자는 친절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알려드려야지. 이 기획을 통해 2010년대-2020년대 서울의 라이프스타일 출판물 에디터가 어떤 일과 고민을 하는지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일은 내 한 주의 큰 일부니까. 


그러저러해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름이 이런 이번 주인 만큼 일주일에 한 번은 올리려 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혹시 에디터의 일에 대해 궁금하신 분, 혹은 박찬용 씨가 이거 좀 대신 보고 와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 이런저런 것들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반영해 게시물 올리겠습니다. 블로그에 답글 달아주시거나 (이름 보이기 싫으신 경우) iaminseoul@gmail.com 으로 메일 보내주시면 열심히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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