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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Sep 29. 2020

글의 거리감

영상보다는 멀고 상상보다는 가까운

말하자면 이 정도의 거리감이랄까요.


요즘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프리랜서가 되는 바람에 기름값도 없어서…는 아니고, 지금 잠깐 다니는 회사는 주차가 애매하다. 지금 사는 곳에서 내가 다니는 회사까지 운전으로 다니면 교통 정체가 이만저만 아니기도 하고. 겸사겸사 운동 삼아 마스크 귀 끈을 바짝 당기고 버스와 지하철 객실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별 일이 없으면 대중교통에서 종이 책을 보는 편이다.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주와 이번주를 통틀어 내가 지하철에서 본 사람 중 종이 책을 읽던 사람은 나 빼고 한 명뿐이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팔목이 까맣게 탄 중년 남성이었다. 그런 남자가 책을 읽고 있다면 왠지 사연 있어 보이지 않나요. 


종이 책 대신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게임을 하시는 분들이 좀 계신 것 같고 유튜브 등 동영상을 보시는 분도 많은 듯하다. 훔쳐봐서 아는 건 아니다. 그 정도의 막연한 움직임은 훔쳐볼 필요도 없다. 보지 않으려 해도 시야의 안과 밖 사이 어딘가에서 뭔가 잔상 같은 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모르기가 더 힘들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들고 스크린 위에 손을 대고 있다면 게임, 세로로 들고 손을 움직인다면 메신저, 가만히 보고 있다면 동영상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종이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한번 더 생각한다. 흐음 역시 종이 책 같은 건 아무도 보지 않는군. 원고 만드는 에디터 같은 직업을 계속 해도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을 십수 년째 하면서도 여전히 똑같이 살고 있다는 점이 내가 한심한 이유 376가지 중의 하나다. 


내가 종이 책들을 바꿔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읽는 동안 사람들의 디바이스도 점점 변했다. 아이폰 4, 5, 6, 7, 8, 비슷하게 숫자가 커지는 갤럭시, 유선 이어폰에서 무선 이어폰. 종이 쪽도 조금 변하긴 했다. 약 10년 전에는 두꺼운 표지의 양장본 책이 유행이었다. 나처럼 책을 들고 걸어다니는 사람에게는 영 불편해서 나는 늘 난처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김병지 님도 가짜사나이 2에 나온다고 트레이드마크인 뒷머리를 잘랐다. 두꺼운 책 표지 풍조도 많이 사라졌다. 대신 그만큼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은 많이 줄었고. 


동영상 보시는 분들은 주로 유튜브를 많이 보시는 것 같다. 유튜브 콘텐츠가 다양한 거야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문자 읽는 걸 좋아하지만 유튜브 보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콘텐츠(글이냐 영상이냐)와 디바이스(종이 뭉치냐 소형 컴퓨터냐)에 따라 엄연한 장단점이 있을 수는 있다. 장단점이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상 쪽의 생생함과 현장감과 몰입도를 텍스트는 영원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요즘 구인공고를 보면 에디터를 구한다 해도 거의 영상 에디터를 뽑는 추세다. 나라도 그러겠다.


다만 궁금하긴 하다. 영상 속 사람들이 청취자에게 너무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요즘은 인기 유튜버도 많으신데, 대부분의 인기 유튜버는 본인의 얼굴과 육성을 그대로 노출한다.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으로 영상을 본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이다. 


어우, 원고를 작성해온 사람으로는 좀 흠칫하게 되는 일이다. 글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여러분이 플레이어다. 이 글에서는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내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상상하겠지. 여러분들이 여러분 각각의 버전으로 이 원고를 재생해서 뭔가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이미지든 목소리든 냄새든(?), 뭐가 됐든 간에. 나를 직접 본 사람이 아닌 이상 내 글이 불러내는 목소리나 얼굴은 진짜 내 얼굴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 나를 직접 본 사람이라도 이 글에서 100% 내 목소리를 불러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영상 속 아무개 씨와 글 속 아무개 씨는 필연적으로 거리감이 생기는 셈이다. 


나는 글이 만들어주는 그 거리감이 싫지 않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해상도가 떨어지는 곳으로부터 나오는 상상도 있기 마련이다. 거기 더해 나는 (아직은)그렇게 사교적이거나 용기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잇님 안녕하세요~” 라고 넉살 좋게 말하기도, “구독 좋아요 눌러주세요!” 라고 말하며 렌즈를 바라볼 배포도 아직은 없다. 할 수 있으면 진작 했겠지. 팟캐스트에 참여해본 적도, 팟캐스트를 해볼까 싶었던 적도 있지만 왠지 생각을 결심으로 옮기지 못했다. 겁난다. 잘 못할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잘 되는 것도 그것대로 겁나는 일이다. 


타인 앞에서 자기를 노출하는 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노출이 많이 될수록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지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TV에서 오래 봤다고 오랜 지인인 양 착각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뉴욕을 걷다가 ‘어 저 사람 아는데’싶었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영화에서 본 잭 니콜슨이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야말로 현대사회의 마법이자 저주다.


그래서 나는 유명 유튜버나 방송인이 부와 명성을 얻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영상은 많이 나올수록, 재방이 많이 걸릴수록, 다시보기를 많이 할수록 인기를 얻는다. 그럴수록 본 적 없는 영상 속 저 사람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은 사상 초유의 쌍방향 의사소통 시대다. 말 같지도 않은 비난부터 맞는 말로 가득한 비판까지가 터치스크린 속 모두의 타임라인에서 번쩍인다. 비난은 비난이니까 짜증이 나고 맞는 말은 맞는 말이니까 더 화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숲 속에 숨어 입으로 불어 독침을 쏘는 열대부족의 스나이퍼처럼 독이 될 메시지들을 사람들에게 뿌린다. 그걸 감수하고도 활동을 하시는 분들 중 성공하신 소수라면 충분히 그 과실을 누릴 자격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둥 마는 둥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릴 역이다.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역 밖으로 나와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들고 있는 손등에 느껴지는 바람이 그새 좀 차가워졌다는 걸 느낀다. 곧 또 장갑을 끼고 책을 읽으며 궁시렁거리게 되겠지. 그나마 장갑을 꼈을 때는 책을 보는 게 더 편하다. 터치스크린 지원 장갑이 아니라면 장갑으로는 스마트폰 조작을 못 하니까. 




헤더 이미지를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다. 아무 이미지나 넣긴 싫고 자급자족 개념으로 내가 찍은 사진이라도 넣어야 하나 싶은데 그러기도 또 딱히 내키지 않고. 생각 끝에 무료 이미지를 찾다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포하는 이미지를 찾았다. 5월에 배경 화면 용도로 쓰라고 한 번, 최근 '상식의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용' 하라고 한 번 배포했다. 블로그 헤더 이미지 정도라면 상식의 범위겠지. 당분간 이쪽 이미지를 쓰려 한다. 혹시 좋은 이미지 사이트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오늘 쓴 헤더 이미지는 1993년작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장면. 


+각종 사연이나 질문에도 늘 열려 있다. iaminseoul@gmail.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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