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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Oct 20. 2020

사소하고 무해한 수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귀한 것


자기 전에, 아니면 출근 준비를 하며 샤워를 할 때 출근길에 읽을 책을 생각한다. 별 게 아닌데 은근히 생각할 구석이 많다. 읽던 책은 늘 있다. 자기 전에 읽던 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읽어버린다. 다 읽은 책은 짐인데. 마찬가지로 너무 쉽게 읽히는 책도 출근길 가방에 넣기에는 낭비다. 실제로 어제 출근길에 가져간 어느 책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지만 출근길에 다 읽어버려서 퇴근길엔 읽을 게 없었다. 그 전에 읽은 다른 책은 진짜 좋았지만 출퇴근길에 읽기엔 조금 무거웠다. 매번 참 사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고민을 멈추지 못한다. 


오늘은 쌓여 있던 책 중 <맨 앤 스타일>을 골랐다. 제목과 같이 남자의 옷입기와 꾸미기에 대한 책이다. 작가 데이비드 코긴스 씨는 미국인 남성 작가다. 여러 매체에 남자의 취향과 태도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한다. 'ㅇㅇ는 aa 해야 한다' 류의, 조금은 철 지난 듯한 남성 가이드북같은 글이다. 요즘은 '~해야 한다'도, '남성용 가이드' 라는 것도 왠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니까. 나 역시 6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사서 볼 만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성지 에디터를 동경해 이 일까지 하게 됐는데 도서관에 있던 이 책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별 기대 않고 페이지를 폈는데 묘하게 보면 볼수록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게 저자의 저력이겠지. 취재(남들의 말)와 경험(자기 사례)으로부터 나온 교훈(평이하다 해도)이 있었다. 그 교훈의 깊이와 심오함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적당한 생각의 흐름을 보여주기만 해도 '그렇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가 세상에는 있다. <맨 앤 스타일>에도 그렇게 귀엽고 자세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저자와 그의 친구들이 무슨 옷을 왜 좋아하는지. 그걸 얻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자기의 옷차림에는 무슨 원칙이 있으며 그 원칙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나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나마나하니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일-러 동시통역사 요네하라 마리가 책에 쓴 말이다. 원고를 적을 때마다 저 말이 생각 속 어딘가에 현수막처럼 걸려 있다. 다만 이런 자리도 정해져 있다. 이건 외교 회담 혹은 진지한 원고쯤 되어야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나마나하니까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는 하나마나한 말들로만 채워져야 하는 시간도 있지 않을까. 외교 회담이 끝난 후의 야회같은 곳에서는 하나마나한 이야기 이상의 이야기가 더 곤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별 인간이 뼈라면 사소하고 무해한 이야기는 연골같은 것이다. 그 이야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뼈와 뼈가 긁히듯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 정치화한 종교와 종교화한 정치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주식 이야기, 부동산화한 주식과 주식화한 부동산 이야기. 나는 이런 이야기에 문외한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왜 나는 태슬 로퍼를 신지 않는가' '내가 입을 수 있는 중고 의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이야기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건 알 수 있다. 


내 지인 중 하나는 금융상품을 만든다. 우연히 알게 되어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와 하는 이야기가 거의 무해하고 사소한 이야기다. 자전거 이야기, 내 취미 이야기. 어차피 나는 주식 계좌도 없고 글로벌 경제에도 무지하니 그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없고, 그도 나와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고 만나는 건 아닐 것이다. 한창 한반도의 모두가 주식 이야기를 나눌 때 나도 무심코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주식을 샀는지, 뭘 샀는지. 그는 아주 젊잖게 대답했다.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니에요. 프로는 내 포지션을 말하지 않아요." 


바로 이런 이야기에서 사소하지만 무해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실생활에 쓸모는 없어도 심오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있다면)드러난다. 10분만 들어도 저사람의 자산 규모를 모두 짐작할 수 있는 투자 이야기는 듣다 보면 괜히 더 머쓱해지기도 한다. 보통 가족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지 않듯, 적어도 내게는 자산 역시 수다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배부른 소리지. 이런 이야기를 적는 것부터가 누군가에게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종종 지금이 21세기의 기근인가 싶다. 농생산성이 좋아지고 국제물류가 발달한 지금의 기근은 농산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돈이 없는 것이고, 돈을 벌만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코비드-19로 인해 시장에서 뒤틀려가덥 부분이 훨씬 더 빠르게 뒤틀려가고 있고, 이 현상은 분명 사회의 불리한 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무해하고 사소한 수다'같은 소리는 크게 혼나도 시원찮을 소리다. 


그러니 취향 같은 말도 좀 생각해보고 할 일이다. 사소하고 무해한 수다라는 건 결국 그 인간이 가진 개별 개성과 기호를 보여준다. 개별 개성과 기호는 드레스 코드같은 거라서 그날의 그 방 안에서는 중요할지 몰라도 그 방 밖 더 넓은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사소하고 무해한 수다를 나누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동시에 그런 수다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저러니 해도 요즘같은 세상에 배부른 말이지만 나도 한번쯤은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사소하고 무해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소하고 무해한 영화를 보고, 적당히 좋은 식당에 가서 적당히 좋은 술을 곁들이는 그런 자리. 이런 날엔 너무 좋은 게 있으면 안 된다. 부담스러우니까. 어디까지나 적당히 좋고 적당히 조용한 곳에서 적당한 술을 적당히 천천히 마시며 적당히 사소하고 무해한 수다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어떤 모양의 벨트 버클을 좋아하는지, 다음에 사고 싶은 시계는 어떤 것이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든 게 좋았는데 칼라 끝이 조금 닳아 있는 셔츠를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런 정말 하나마나한 이야기들 말이죠. 




어제는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았다. 젊은 남자가 정세랑 작가님의 <목소리를 드릴게요> 를 읽고 있었다. 괜히 반가웠습니다. 혹시 이걸 보는 분 중 퇴근시간 9호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저씨를 본다면 반갑게 인사같은 건 하지 마시고 그냥 못 본 척 하고 지나쳐 주시길.




+사연과 질문 늘 열려 있습니다. iamin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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