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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Nov 13. 2020

불경기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로저 드뷔 CEO 장 마크 폰트로이와의 이야기

2017년 토쿄에서 만났을 때. 시계 관계자들은 무조건 시계가 보이는 포즈를 잡느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CEO가 된 지 5년이 됐다. 무엇이 바뀌었나?

우선 엑스칼리버 라인업. 우리의 투자, 연구개발, 신제품, 제품 라인업, 모두 엑스칼리버에 집중했다. 둘째, 확장. 6년 전 한국에 처음 점포를 열었는데 지금은 세 개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 고급 백화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 다음 주에는 파리에 문을 연다. LA 로데오 드라이브에도 매장을 연다. 런던 해로즈에도 문을 열었다. 작은 쇼케이스가 아니라 진짜 매장이다. 셋째, 테일러메이드 서비스. 손님들이 제네바로 와서 자기 취향에 맞는 시계를 만든다. 앞으로 10% 이상이 테일러메이드가 될 것이다. 그동안 직원이 두 배로 늘었다.


두 배나?

성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한국 시장이 30% 성장한다면 나는 40% 넘게 성장할 때만 행복하다. 반면 한국 시장이 20% 침체된다면 난 10% 떨어지는 건 신경 안 쓴다. 시장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의 주인공인 피렐리와의 합작 시계는 어떻게 만들었나?

우선 돈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이 업계의 합작은 보통 돈 때문에 하는 거지. 내 아이디어는 소비자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주자는 것이었다. 이 시계를 산 손님은 F1 그랑프리에 초대받는다. 피렐리 엔지니어와 함께 피렐리 백스테이지를 48시간 동안 구경할 수 있다. 모나코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느 팀이든, 16개 그랑프리의 팀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아주 한정적인 콘셉트다. 딱 8개만 만들었다. 딱 8명만 느낄 수 있다. F1 팬이라면 최고의 경험이겠지.


굉장히 재미있는 프로모션이다.

물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품에 고객 경험을 포함시켜야지. 나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만드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쓴다.


당신이 생각할 때 로저 드뷔는 무엇이 다른가?

뭐든 특허를 받고 새로운 걸 한다. 아무나 만드는 리미티드 에디션이 다가 아니다. 로저 드뷔에 투자하는 고객들에게 새롭게 개발한 물건이 있다고 보증하는 것이다. 거기 더해 스토리텔링을 개발한다. 무브먼트나 고급 소재를 넘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를 정당화시킨다.


로저 드뷔처럼 남다른 시계는 어떻게 만드나?

달라야 한다. 남과 비슷한 건 안 한다. 별 모양 무브먼트, 플라잉 투르비용. 우리는 화려해야 한다. 제한도 없다. 모터스포츠와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계 산업을 벤치마킹하지 않는다. 모터스포츠, 개인용 비행기, 의학 등을 벤치마킹한다.


로저 드뷔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이 있다. 그 디렉터는 무슨 일을 하나?

제품, 매장 인테리어, 브랜드 이미지에 모두 관여한다. 당신이 받은 내 명함도 그가 만들었다.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매장 안에 있는 테이블 하나도 화려해야 한다. 그는 로저 드뷔를 더 화려하고 극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창의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우려낸다. 그는 광고업계에 있었다. 광고는 복싱처럼 제한된 시간 안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하나의 키 메시지. 우리가 지금 쓰는 슬로건인 ‘과감하게 희귀하게(dare to be rare)’도 그가 만들었다. 그 전에 우리 메시지는 ‘오롤로지 제네바’였다. 아무도 몰랐지. 바꾸고 나자 콘셉트를 표현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로저 드뷔를 좋아하나?

모험적인 성향의 25~40세 남녀. 일찍 성공했고, 자신을 남달라 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를 찾는 사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사람.


‘다름’은 로저 드뷔에 아주 중요한 모양이다.

맞다. 우리 손님은 람보르기니 고객과 비슷하다. 람보르기니는 보통 브랜드가 아니다. 그걸 사는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 젊고 모험적이고, 남다른 성격을 가졌다. 람보르기니와 로저 드뷔엔 비슷한 면이 있다. 오렌지색에, 스포츠 시트에, 의자는 둘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그런 차를 탈 것인지, 그게 당신인지. 그런 이라면 로저 드뷔를 가질 만하다. 우리 콘셉트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과 다른 게 로저 드뷔다. 받아들인다면, 리스크를 감당한다면, 갖는 거다.


로저 드뷔는 비싸다. 불경기 걱정은 안 되나?

나는 유럽에서 태어났다. 유럽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불경기였다. 오케이? 불경기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로저 드뷔의 마음속엔 불경기가 없다. 우리는 점포를 열었다. 많이 열었지. 마카오, 런던, 뉴욕, 도쿄, 서울에. 늘 리스크를 생각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 불경기를 믿으면 3억2000만원짜리 시계나 5억원짜리 차는 팔 수 없다. 그냥 일 그만해야지. 나는 우리가 감성을 창조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로저 드뷔 시계와 함께 사랑과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발명했다. 사랑과 선물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위기를 맞아도, 비가 와도 사랑을 한다. 당신이 한 질문은 시장이 아니라 멘탈에 대한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다. 불경기는 남들 이야기다. 저 앞에 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언제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 않다. 그냥 한다.


당신이 보기에도 너무 과하다 싶은 로저 드뷔 시계도 있나?

전혀. 우리는 절대 과하지 않다. 2년 후쯤 정말 대담한 시계가 나올 거다. 요즘 시계는 너무 보수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뭔가 다른 걸 원한다.


그 기운을 느끼나?

물론. 아니라면 로저 드뷔가 몇 년째 계속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없겠지. 런던 해로즈에 들어가지도 못했겠지. 거기는 세계에서 가장 입점하기 힘든 백화점이니까.




2017년 여름 에스콰이어에서 일할 때 진행한 인터뷰다. 짧은 문장으로 간단하고 힘 있게 말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폰트로이 사장님은 한국 시장에서도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고 손님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기서 실적을 인정받았는지 장 마크 폰트로이는 2018년부터 그룹 내 다른 회사인 파네라이의 CEO가 되어 아직까지 그 자리에 있다. 이건 파네라이 CEO가 된 후의 사진. 역시 시계가 잘 보이는 포즈다. 시계인들은 사진을 찍을 때 무조건 시계가 잘 보이는 포즈를 취한다. 그것도 그것대로 고달파 보이기도 하고. 먹고 사는 일 쉬운 것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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